모리와 함께한 7월🏖️ – 김수환 파친님
올여름은 장마도 없이 지나가는구나 싶었는데, 느닷없는 큰비 피해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디 신속한 복구를 소망하며, 비 그치고 드리울 무지개🌈를 품어봅니다. 파랑의 곳곳에는 빛깔마다 고운 무지개 깃발들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을 꿈꾸며 꽂혀 있답니다. 그리고 부산에는 어여쁜 ‘무지개집(虹霓堂)’이 하나 있습니다. 7월에는 홍예당 활동가 모리😃 김수환님을 파친님으로 모십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의 상근자이자 작년 파랑의 연구사업 <2024 부산울산경남지역 퀴어 단체 및 커뮤니티 현황조사>에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모리, 김수환입니다. ‘모리’라는 닉네임은 일본어로 ‘숲🌲’이라는 뜻인데, 별생각 없이 지었다가 계속 쓰고 있습니다. 에니어그램은 1번! MBTI는 INTJ! 이고요, 북구 금곡동에 혼자 살면서 열대식물🌴을 제법 키우고 있어요. <안경>이나 <카모메 식당> 같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홍예당이 2023년에 협동조합으로 재출범하면서 파랑에 자문회의를 요청드린 것이 계기였어요. 부산에서 퀴어활동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활발했는데, 그 후로 정체되어 어떻게 해야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고, 그중에 일단 파랑과 연결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때까지 저희끼리만 고민해왔는데, 무엇이든 여쭤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에 안심이 됐고요. 그 후에도 부산지역 인권단체 활동가 네트워킹 모임에 계속 불러주셔서, 쭈뼛쭈뼛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하면서도 갔더니 다른 단체 활동가분들과 안면도 트고 점점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작년에 파랑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조명되지 못한 퀴어운동을 한 번 정리해보자고 제안하고 재원을 마련해주셔서 부울경 지역의 이제까지의 퀴어운동을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3. “파친님이 활동하는 홍예당은 어떤 곳인가요?”
홍예당(虹霓堂)이라는 이름에는 퀴어들이 마음 놓고 문화를 꽃피우는 집(堂), 그리고 퀴어와 사회를 연결해주는 문이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어요. 홍예당은 2020년 부산지역 퀴어와 엘라이(퀴어가 아니지만 퀴어의 인권을 지지하는 모두)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체가 되어 즐길 수 있는 모임과 행사🎉를 만들면서 활동을 시작했고요. 2023년에 ‘퀴어 커뮤니티 서점 홍예당’을 오픈하면서 부산 최초의 ‘낮에도 문을 여는 퀴어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에 저랑 QIP(Queer In Pusan)에서 활동하던 세 분이 함께 시작했는데요, 지속가능한(활동가가 소진되지 않는) 활동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기여서 ‘인권단체’라는 형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공간도 생기고 커뮤니티도 운영하면서 처음보다는 조금 더 시민단체 같은 성격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명실공히😉 비수도권에서 가장 탄탄한 퀴어‘단체’가 되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서울까지 포함하더라도 가장 선도적으로 활동해나가고 있는 영역도 있어요. ‘퀴어코미디스터디’ 같은 신기한(!) 모임을 하는 생활·문화예술 밀착형 커뮤니티라는 점, 사회적 경제 영역에 대한 노하우, 퀴어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서비스와 공간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아직은 작은 서점만 운영하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지역퀴어운동의 모델을 연구하고 검증해나가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당.
(홍예당을 더 알고 싶다면! https://hydbusan.com/36)
#4. “‘고민 많은’ 퀴어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2012년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회원으로 활동을 처음 시작했어요. 저의 첫 데뷔🐣였는데(제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표현하는 게 아니고 ‘데뷔’라는 게 퀴어들이 커뮤니티에 처음 나오는 것을 뜻하는 퀴어 용어에요), 24살까지 퀴어 커뮤니티에 나오지 못하고 내내 고립되어 있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어!’라며 고른 곳이 그냥 노는 모임이 아니라 빡세게 활동하는 인권단체🏳️🌈였던 것이죠. “잘못된 선택이었다”라고 다른 퀴어 활동가들과 농담(진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저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저의 첫 ‘선택한 가족’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처음 행성인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세상을 ‘빨리’ 바꾸고 싶다는 조급함이 앞섰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퀴어이지만 흠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저희 큰 누나가 29살에 결혼했는데, 저도 그 나이에 동성결혼도 하고 입양도 하고 그런 삶을 살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죠. 그러려면 5년밖에 시간이 없으니 얼마나 마음이 급했겠어요. 그래서 퀴어 웹진도 만들고, 성소수자부모모임 인큐베이팅에 참여하기도 하고,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 청소년 트랜스젠더 생애사 연구에도 참여하면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말 그대로 소진되더라고요. 활동가 소진이 운동의 구조적인 문제이면서 여러 다른 문제들의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들과 함께 ‘비폭력 트레이닝’이라는 운동방법론에 대해 공부하고 컨설팅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2018년에 결국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어 활동을 다 접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2020년부터 홍예당에서 다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네요.
#5. “파친님이 다시 소진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겠는데요.”
올해 홍예당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조합원 참여 강화💪’여서, 운영위원·상근자·평회원이 단체 운영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책임/역할/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활동가 소진과 구성원 간 갈등, 회원의 성장 체계 같은 부분들은 물론이고 단체의 비전과 미션 같은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요약하자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것인데, 다행히 파랑에서 하는 ‘내일의 리더’와 ‘부산인권운동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조언도 받고 인사이트도 많이 얻고 있어요.
밀려드는 책임들로부터 좀 자유로워지면, 홍예당에서 ‘카페&바 창업 스터디 모임’도 해보고 싶고, 퀴어잡지를 만드는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엄청난 아이디어💡가 있는데 시작을 못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요즘 협동조합과 관련한 책들도 찾아서 조금씩 공부해보고 있습니다. 시민운동과 경제&경영 분야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홍예당을 운영하면서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을 글로 써서 책으로 묶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홍예당이 잘 커서, 퀴어들이 취미/문화예술, 활동/정치, 창업/비즈니스를 마음껏 시도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됐으면 좋겠어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되어서 1년 정도 유급휴가를 받아 ‘오키나와 1년 살기’를 실현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아!
#6. “그냥 놀지 못하는 파친님, 마지막으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지금 비수도권에서 활동하는 퀴어단체 중에 풀타임 상근자가 있는 단체가 하나도 없거든요. 저희가 유일하게 2023년에 반상근 1인 인건비가 나가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파랑 덕분에 반상근 1인을 더 둘 수 있게 됐는데, 그런 초기단체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파랑 같은 ‘플랫폼’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정말 소중한 것 같아요. 무료로 대관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고,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여쭤볼 수 있고, 후원 캠페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고, 혼자 고립되지 않고 다른 활동가들과도 연결될 수 있어서, 저에게 파랑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소중하기만 한 곳이에요.
파랑의 슬로건이 “여럿이 함께, 더 힘차게,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인권운동🌊”인데요, 가끔은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 방식 자체가 활동가들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파랑은 그런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세상이 금방 바뀌는 게 아니라면, 운동이 오래 지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챙기면서 가야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오히려 힘이 되는지(!) 그런 원칙 속에서 부산의 인권운동 전체를 지원하는 곳이 파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파랑 활동가분들이 건강하시고 즐겁고 재밌게 활동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고 싶은 걸 묻는데 자꾸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심지어 하고 싶은 것조차 ‘일’투성이🐜인 파친님께 그의 마지막 말(즐겁고 재밌게)을 그대로 반사하고 싶어요. 고군분투하는 파친님이 지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도 한편, 그런 파친님의 존재가 아직 ‘데뷔’하지 못한 나의 친구들에게 뭉근한 영감을 주고 있다는 걸 파친님은 혹시 알런지. 뭐, 알건 모르건 올여름엔 파친님이 좋아한다는 ‘바다 위 둥둥 떠 있기🏝️’만큼은 꼭 누릴 수 있길 파랑도 바랄 뿐😉입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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