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42화] 내 가슴에 남은 것⭐ – 손석주 파친님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도 어느덧 한 주 남짓 남았습니다. 어딘가에서는 12월을 침묵하는 달🌙이라고 한다는데요. 유독 탈 많았던 한 해를 갈무리하는 여기에서 고요한 침묵은 아무래도 멀고, 오히려 우리 곁에 강요된 침묵은 없는지 살피게 됩니다. 오랜 침묵에 저항한 이야기를🔔 12월의 파친님,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 손석주님께 들어보겠습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손석주라고 합니다. 영화숙·재생원은 1950~1960년대 부산지역에 있던 가장 규모가 큰 집단 수용시설🧱이에요. 아마 형제복지원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은 많을 텐데, 간단히 말하면 영화숙·재생원은 형제복지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례에서부터 운영, 통솔 방식, 체계 등 영화숙·재생원을 모방해 설립한 것이 형제복지원이거든요. 저는 9살에 거리에서 신문을 팔다가 처음 잡혀갔어요. 그때는 두 달 만에 도망쳤는데, 11살에 구두를 닦다가 또 잡혔을 때는 1년 가까이 있었어요.
한참 세월이 지나서 어느 날 테레비를 보는데, 선감학원에 대한 조사가 보도되는 걸 보고 나도 똑같은 일을 당했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억울함을 풀어보려고 이리저리 무작정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협의회를 만들고 ‘대표’가 되었지만, 피해생존자 중 1963년생🐣 막내예요. 같은 일을 겪은 형님들 누님들을 만나면 속상하면서도 반갑고, 남은 생을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기 위해 진상조사가 잘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2023년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부산 5대 인권 뉴스’ 발표🎤 기자회견에서 파랑의 정귀순 이사장님을 처음 만났어요. 부산의 인권활동가 100명이 투표를 통해 선정한 5대 인권 뉴스에 ‘영화숙·재생원 인권침해사건, 진실화해위 직권조사 결정’이 포함되었거든요.
파랑의 선생님들은 저를 인권활동가로 대해 주셨어요. 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인권의 이응도 모르고 활동도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제게 활동가 대상인 건강돌봄 지원사업🏥의 치과진료를 받게 해주셨어요. 제가 이가 몇 개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안 씹고 넘길 수 있는 국수만 먹었어요. 그런데 임플란트 13개를 박고 나서 지금은 고기가 가장 먹고 싶어요. 올해는 건강검진도 받았고요. 또 오늘의인권 공모사업에 협의회의 ‘수용시설 국가폭력 피해자 전국 연대 구축’이 선정되어 사업비 지원도 받았어요. 명절마다 선물도🎁 받고 있고요.
파랑에서 다양한 활동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나만 억울한 게 아니었구나, 느껴요. 나를 잘 챙기고 시야를 넓히면서 인권이란 것을 조금씩 배우는 것 같아요. 이번에 파랑에서 하시는 ‘아프지 않고, 오래 함께’ 모금을 계기로 정식으로(!) 파랑의 친구💙가 되었답니다!
#3. “반갑고 귀한 파친님!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를 어떻게 만들었고,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듣고 싶어요.”
제가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양산 물금에 살았는데요. 2022년 10월에 양산시청 기자실을 찾아가 영화숙·재생원의 피해 사실을 처음 알렸습니다. 운영 시기, 수용인원 등 제가 아는 내용을 모두 전달했고, 2022년 10월 31일에 국제신문에서 첫 기사📰가 나오자마자 두 번째 피해자가 기자에게 연락했어요. 두 번째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두 번째 기사가 나왔고, 기사가 나올 때마다 연락해 오는 피해자들이 한 명씩 늘어나면서 기획 기사가 이어졌어요. 그렇게 4명의 피해자가 모인 것을 계기로 2022년 12월 15일에 협의회가 만들어졌어요.
이후 피해자를 찾으러 전국을🏃🏻 다녔어요. 피해자 한 명을 찾으면 그 피해자와 연결된 또 다른 피해자들을 소개받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모았는데, 현재 부산시에 등록된 인원만 180여 명에 달합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는 영화숙·재생원의 피해자를 7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어릴 적 이름, 생년월일과 현재의 인적 사항이 일치하지 않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2023년 8월에 협의회를 부산시 비영리단체로 등록했고, 현재 회원은 220명이에요.
협의회를 만든 지 꼭 3년이 되었는데요, 30년은 지난 것 같아요. 피해자 발굴뿐 아니라 기자회견이다 뭐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서울 다녀오고 또 난생처음 해외에도 가봤어요. 2024년 7월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합(UN) 산하 고문방지위원회 심의에서 고문 피해를 증언했는데, 제6차 최종 견해에서 “시설수용 및 과거사 피해자의 구제 보장, 고문 범죄화 및 시효 배제, 구금 초기 단계부터의 변호인 조력권의 보장, 정신 보건 시설 강제 입원 및 입소 방지”라는 권고를 얻어낼 수 있었어요.👏 외국에서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이 비교되어 씁쓸했어요. 그리고 올해 2월 26일에 진화위에서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181명(신청인 10명, 직권조사 대상자 171명)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습니다.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에 대한 최초 직권 결정 조사 사건이지요.
정말 무식하게 시작했는데, 3년 동안 이만큼 해올 수 있었던 건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 덕분이에요. 처음에는 저 혼자였는데 지금은 운영위원으로 함께 고민을 나눌 형님들이 있고, 컴퓨터를 못 하는 저 대신 온갖 사무와 살림을 챙겨주시는 실장님이 계셔서 든든해요. 집도 절도 없이 다니다가 작년에 부산역 맞은편에 사랑방 같은 우리 사무실도 구했어요. 지나는 길에 언제든 오세요, 환영합니다!🎊
#4. “스위스 다녀오시면서 파랑에 선물도 사다 주셨잖아요. 잘 간직하고 있어요! 30년 같은 3년 이전에 파친님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궁금해요. 들려주실 수 있어요?”
구구절절 다 들려드릴 수는 없지만, 제 인생에 자양분이 된 기억🌱을 나누고 싶어요.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4살 때 계주였던 어머니가 일이 틀어졌는지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뱃일을 나가셨어요. 그러면서 양산의 고모 손에 자랐어요. 7살에 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육성회비는 밀리고 시골에서 부모 없는 건 저뿐이라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산으로 와서 신문을 팔다가 처음으로 잡혀간 거예요. 그때 아버지 성함과 주소도 다 말했는데 안 보내주더라고요. 두 달여 만에 산속으로 도망쳐 나왔어요. 양산으로 와보니 어른들도 그냥 가출했다 왔나 보다, 저도 혼날까 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4학년 때 아버지가 뱃일 마치고 오셔서 육성회비는 해결했는데, 술을 많이 드시더라구요. 술 드시는 아버지랑 사는 게 싫어서 5학년 때 다시 부산으로 가서 구두를 닦았어요. 이미 터를 잡은 형들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매질을 못 견뎌서 도둑기차 탔다가 두 번째로 잡혀갔지요. 1년 가까이 붙잡혀 있다가 겨우 도망쳐서 양산으로 갔는데, 그때가 열세 살이었어요. 역에서 우물쭈물, 겁이 나서 선뜻 집에 못 가고 역 맞은편에 김 오르는 팥죽을 보고 있는데 제 앞에 누가 딱 서더라고요. 아버지였어요. 누가 저 닮은 애가 역 앞에 있더라고 아버지께 전했나 봐요. 그때 아버지가 사주신 팥죽이 지금까지 먹어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죽이었어요. 이 기억이 선명하고요.
그런데 그 후로 양산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1년을 학교에 안 갔으니 퇴학 처리됐고, 동네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님이 나랑 놀지 말랬다고 지금 말로 왕따였어요. 머리도 컸겠다, 그때부터 부산과 양산을 들락날락하면서 살았지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신문 팔고 구두 닦는 건데 길거리에서 하다가 또 잡혀갈까 무서워서 ‘어디를 가야 안전할 수 있을까.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고민 끝에 ‘학교 선생님들 구두를 닦자!💡’ 번뜩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제리 계성여상에 갔어요. 제가 어릴 때 예뻤거든요. 선생님들이 맡긴 구두를 닦고 있으면 누나들이 매점에서 뭐 사주고, 그렇게 7~8개 닦으면 저녁 밥값도 벌고 당시 하룻밤 하숙비 50원도 낼 수 있었어요. 근데 선생님들이 매일 구두를 닦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른 학교를 뚫었어요. 사대부고로 갔지요. 그랬더니 이제는 형들이 어찌나 귀여워하던지요. 집에 데리고 가서 재워주기도 하고 소풍도 데려갔어요. 일주일에 2번은 계성여상, 2번은 사대부고를 다니면서 한동안 신나게 지냈는데 그만 방학이 와버린 거예요! ‘아,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하게 서 있는데, 사대부고 뒷문에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저긴 어디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부산대래요. 그래서 그때부터 부산대를 휩쓸면서 구두 닦고 이번에는 대학생 형들한테 이쁨🥰받으면서 지냈어요. 이 기간이 한 1년 반쯤 되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시절이 저한테 전성기였어요. 가족에게서 받지 못했던 사랑을 형, 누나들에게 받으면서 이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저도 모르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후로 저는 평생 구두 닦아서 돈을 모았어요. 잠깐씩 이런저런 일도 하고 전국 여기저기서도 살다가, 마지막에 양산으로 돌아와서 중국집 배달을🛵 6년 동안 했어요. 그러다가 협의회 일 시작하면서 도저히 병행할 수 없어서 그만두었고요. 앞으로는 쭈욱 협의회 일에만 매진해야겠지요. 제가 별 얘기를 다 하네요~
#5. “곡절의 시간 중 반짝이는 기억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파친님이 매진할 협의회의 목표와 계획, 그리고 파친님의 꿈을 듣고 싶어요!”
대부분의 피해자가 어릴 적 폭력의 경험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신체적인 학대뿐 아니라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고통받은 피해자들, 지속적으로 비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피폐해졌는지를 조명하고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꼭 받고🙏 싶어요. 그러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하잖아요. 현재 협의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산지부 등이 국가와 부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에요. 지난 11월에 원고 185명 중 4명이 법정에 출석해 당시의 구타, 가혹행위, 성폭행 등을 증언했어요. 12월 24일 한 차례 더 진행한 뒤 선고할 예정이라고 해요. 그리고 집단수용시설 사건을 진실규명 대상으로 명확히 포함하는 내용이 담긴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했는데요. 2026년에 제3기 진화위 출범을 위해 더 힘을💪 내야겠어요.
협의회에서 해마다 피해자 위령제🕯️를 지내는데요. 협의회가 지금은 비영리단체이지만 이후에는 재단법인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재단법인을 설립해 저희가 다 죽고 없어져도 추모 사업과 위령제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영화숙·재생원 말고도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대전아동보호소, 대구희망원에도 몇 달씩 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수용시설 피해생존자들이 하나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이 저희보다 앞장서 길을 닦아주었기 때문에 저희가 조금 수월하게 직권조사 결정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밖에도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국에 강제 수용시설들이 많았잖아요. 형제복지원, 선감원, 덕성원 등 각각 따로 싸우는 게 아니라 전국수용시설연합을 만들어서 수용시설의 피해자들이 힘을 모아 함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6. “꿈마저 반짝이는 파친님! 마지막으로,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저는 제 돈과 시간을 들여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피해자 분들을 발굴하는 건 얼마든지 잘할 수 있거든요. 근데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는 건 뭐 하나 쉽지가 않더라고요.😅 천 원도 예산에 없으면 쓰면 안 되고, 갖춰야 할 서류도 많고요. 이번에 파랑 공모사업 진행하면서 우리 실장님이랑 공부 많이 했습니다. 파랑이 든든한 선배로서, 협의회가 가는 길에 쭉 동행해주시면 좋겠어요~
이 글을 다듬던 중에 우리 파친님이 실장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손에는 파랑 식구들에게 나누어줄 장갑🧤 세 켤레를 들고서. 파친님은 늘 이렇게 찾아오십니다. 아무 기척 없이, 두 손을 흔들흔들 반갑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이런 ‘문득’이 일상이 되면, 왠지 이번 주에 파친님이 오실 것 같다는 느낌 또한 정기적인데, 이것이 실현되면 남몰래 더욱 반갑습니다.
오랜 침묵을 깬 이야기는 뜻밖에 다사롭기만❤️ 하지요. 파친님의 마지막 꿈은 뜻 맞는 형님들과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입니다. 명절에는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날씨 좋은 계절에는 여행도 가면서 남은 생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고요. 파친님을 보면서 오늘을 만드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하는 과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때로는 협의회 대표로서 거침없이 싸우고, 과거의 기억에 기대어 때로는 협의회 막내로서 재롱을 떨고,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우리 파친님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가슴에는 무엇을⭐ 남길까요?
탈 많은 한 해를 살아내시느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부디 다사로운 연말 보내시고, 새해 또 새롭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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