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오롯이 사람을 위하여🌾 – 이광수 파친님
노을이 물드는 가을🍂입니다.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그 속으로 오늘이 흘러갑니다. 하루가 어떠했는지, 잘 보냈는지.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내일의 다짐으로 새기고 나면 어느덧 밤도 마냥 어둡지 않습니다. 저 어딘가의 부엉이가 해 질 녘에야 날개를 편 까닭이겠지요. 부산에도 이제 날아오르려는 한 분🦉이 있습니다. 10월의 파친님은 이광수 교수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십니까! 부산외국어대 교수, 이광수입니다. 고향은 광주인데 부산에서 35년 동안 살아온 전라도-부산 사람이고요, 외유내강과 거리가 먼 외강내유형 인간입니다. 열을 잘 받는(외강) 체제 거부형, 뒤끝이 무른(내유) 용두사미형 인간😅입니다. 성격이 깐깐하고 좋아하는 게 있으면 파고들어서 어렸을 때부터 교수밖에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은 못 했고 법이나 경제는 싫어하여 한국외대로 갔습니다. 중국, 러시아 같은 큰 나라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두 나라는 공산국가라 인도🐘를 선택했습니다. 옳음과 그름은 하나이며 삶이 죽음이고 죽어야 사는 것이라는, 일원론을 믿는 사람입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90년에 교수가 되어 부산으로 왔는데, 96년에 정귀순 이사장이 ‘외국인노동자를위한인권모임’을 준비하면서 아시아 전문가로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이래로, 그가 하라는 일에 대해선 단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파랑도 그 연장선에 있고요. 제가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파랑과 함께 명절선물나눔, 건강돌봄 지원사업을 하면서 파랑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3. “저희에게는 여전히 낯선 나라, 파친님의 인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어쩌면 우연히 시작한 인도 연구는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깨닫는 필연의 과정이었습니다. 낯선 세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을 제대로 존중하는 거잖아요. 우연이라고 했지만, 왜 우리는 불교라는 엄청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인데 정작 인도에 관심을 갖지 않지?🤔 라는 문제의식도 있었습니다. 인도사를 배워서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요즘 말로 종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랄까요? 그런데 선행연구가 없어서 인도의 고대사부터 인도 지역연구, 인도 사진사를 비롯하여 인도에 관한 모든 주제를 차근차근 공부하게 됐어요. 그 때문에 제가 역사학자라기보다 인도 전문가로 더 자주 소개되는데, 아무튼 제게 인도는 편견과 왜곡을 극복하고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르쳐준 나라예요.
#4. “그 태도를 사회에서도 실현하고자 애쓰고 계시지요.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말고도 많은 직책을 맡고 있다고 들었어요!”
80년 5월을 겪은 후 친구들은 데모하고 감방 끌려갈 때, 저는 교수하겠다고 유학을 갔어요. 평생 그 부채감🕯️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매사에 비판적인 제 성격 탓도 있지만, 대학이 일부 교수와 재단에 놀아나는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싸우다가 얼떨결에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고요. 부산외대 민주교수노조는 후배 교수들의 열악한 교권과 노동권을 위해, 제가 재직하고 있을 때 뭔가 조직이라도 구축해야 선배로서 최소 밥값은 하는 게 아니겠냐는 생각에 만들었어요. 만원의연대는 형식적으로 ‘장長’ 역할만 하는 중인데, 부산에서 제 뒤를 이을 선수가 안 나와 해산할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시아평화인권연대는 우리에게 아들/남편을 보낸 아시아의 여러 나라 가운데 전쟁으로 황폐해진 나라에 그 빚을 좀 갚자는 취지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등이 대상이었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상황이 안 좋아 지속하지 못했고, 스리랑카는 저희 여력이 안 되어서 시작도 못 했습니다. 더 절실한 곳이 팔레스타인인데, 감히 엄두도 못 냅니다. 이런 걸 보면, 벌여놓고 뭐 하나 잘한 게 없는 것 같아요..😢
#5. “함께 해야 할 일을 벌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와중에 정년이 다가오네요. 어릴 때부터 품은 외길(교수)을 갈무리하는 요즘, 어떠셔요?”
새롭게 살고자 해요. 연구는 안 하고, 사회 활동도 좀 접고, 음(악)미(술)체(육)의 삶을 살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저를 소개하는 말 중에 ‘사진비평가’가 있는데요, 2002년인가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와 사진전을 열었어요. 근데 제 사진은 모두 흔들려서 한 장도 못 걸었어요. 그때부터 사진 공부📷를 했는데, 이게 중요한 사료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사진을 사료로 삼아 역사를 재구성하는 연구를 하면서 비평도 하게 됐어요. 잘 찍고 못 찍고 라는 건 의미 없고 사진 또한 사람을 위해 찍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시각 이미지를 대표하는 두 가지가 사진과 그림인데, 은퇴하면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려고요. 현재 힌두교-불교의 세계관 십여 개를 구상하는 중입니다. 자기 성찰에 그림만 한 게 없더라고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6. “마지막으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우리 사회가 점점 주체성🌳을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나서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나서지 않는 교수들은 물론,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 또한 화합하지 못하고 본인의 정체성 혹은 PC주의를 앞세우는 일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존중도 없고 실존도 없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자기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이 틈에 ‘사람이 남지 않는 운동에 미래가 없다’는 모토로 태어난 파랑이 반가울 뿐입니다. 파랑이 하는 일을 끝까지 ‘지고격찬’(지지고무격려찬양🙏)합니다. 고맙습니다.
인도 전통에 아슈라마ashrama라는 개념이 있다고 해요. 어려서는 공부하고, 나이 먹으면 가정을 꾸리고, 더 나이 들면 은퇴하고 마지막에 맞는 죽음까지 인생의 네 단계를 말하는데, 파친님은 이 아슈라마의 핵심을, 때가 되면 은퇴하라!🎉 라고 생각한대요. 그래서 앞으로 괜찮은 후배들 만나면 술 사주고 ‘지고격찬’ 하며 살 거라는 다짐을 저 노을에 새기시네요. 날아오른 부엉이에게 보이는 건 여전히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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