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빛을 전하는 사람⭐ – 주문홍 파친님
작년 연말에 벌어진 내란사태가 종식되지 않아 아직도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 듯 어수선합니다. 순식간에 후퇴하는 정국을 보며, 그것이 계획된 반복임을 나날이 확인하며, 퇴보의 마지노선은 잘못을 바로잡은 적 없던 우리의 역사🙏임을 아프게 깨닫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횃불이 촛불로, 다시 응원봉으로 유쾌한 변화의 주체가 늘 빛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 상흔을 삶으로 걸러내어 희망🌱을 퍼뜨리는, 2025년 1월의 파친님은 일본에 계신 주문홍 목사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 후쿠오카현 북규슈시에 살고있는 1955년생, 주문홍(朱文洪)입니다. 재일대한기독교회 고쿠라교회⛪ 목회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곳은 마산 소방서 관사이고 자란 곳은 서울입니다. 부모님은 함경도 북청과 함흥에서 고향을 등진 이산가족 1세대이고,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전근이 잦아서 7형제가 태어난 곳이 제각기 다릅니다.
할머니가 28세에 과부가 된 후 세 살 난 아들을 키우면서 신학 과정을 거쳐 성결교회 전도사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자립한 여성, 주체적인 삶, 끝까지 소명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았겠지요. 20대 후반에 고베한인교회와 인연이 닿아 일본으로 간 지 4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재일동포 제1세대로 살아온 셈입니다. 오사카 출신의 2세 파트너를 만났고, 지금은 모두 자립하여 가정을 이룬 세 자녀가 2.5세대가 되겠네요.
파랑의 여러분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지금 봉사하는 고쿠라교회와 서남한국기독교회관이 북규슈지역에 있는데, 부산까지 현해탄을 넘어 200km 정도로 가까운 곳입니다. 야하다제철소, 고쿠라탄광, 군수공장 등으로 발전한 도시이지요. 식민지조선인의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 역사의 흔적⚒️이 깃들어 있습니다.
2005년부터 부산•양산•김해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자기 발전과 재충전을 위한 ‘민들레기금 연수🌼’가 시작되었지요. 2013년까지 해마다 5~7명, 30~50대의 젊은 활동가들이 일본을 찾아왔습니다. 이들과 7박 8일 동안 재일동포 고난의 현장 방문, 천황제 학습 노숙자지원 연수, 현지 활동가들과의 교류, 나가사키 원폭자료관과 석탄박물관 답사 그리고 온천을 즐기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민들레기금의 상임이사인 정귀순님이 파랑의 창립 소식을 알려주었어요. 100인의 추진위원으로 손을 들었지만 별로 도움이 못 되어 송구할 뿐입니다.
#3. “일본으로 이주를 결심하신 동기와 재일동포로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인생의 길👣은 우연이 필연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저의 경우, 학교와 군복무를 마친 후 고베개혁파(神戸改革派) 신학교 유학 기회가 있었어요. 고베한인교회 봉사도 겸해서요. 일본으로 가서 재일동포의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과 모순적인 삶을 강요하는 일본 사회의 냉혹함에 눈이 떠져 그대로 주저앉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주민이 되고 보니, 그동안 제가 영주자•참정권자•가부장•기득권자•다수자 등으로서 누려온 특혜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재일동포 1세대를 천국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망국의 백성이 종주국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살아왔는가🌾, 보았습니다. 지금은 3세대가 주류이군요. 재일동포는 원치 않는 이주로 고향 상실, 가정 붕괴, 가정과 사회폭력, 성차별, 민족차별을 일상적으로 살아낸 분들입니다. 그들의 증언 흔적은 살아있는 한일간의 역사입니다. 100년이 지나도 영주권 참정권 사회복지권을 주장하지 못 하는 현실은 일본의 부끄러운 민낯이지요. 재일동포의 모순이 한국에서 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4. “일본 연수를 다녀온 활동가들 중 파친님의 팬😄이 많다고 들었어요. 파친님의 일상과 활동을 듣고 싶어요.”
😌저는 목회자이고, 주일예배를 축으로 생활이 전개됩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 받고 지친 사람,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삶에 의문을 가진 사람, 사회와 인생의 부조리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예배를 준비합니다. 과연 그러한 열매를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마음으로 41년을 목회 활동을 해왔습니다.
사회적 활동으로는 동포교회를 축으로 일본기독교인, 헌법9조를 지키는 평화운동단체, 위안부 조기 해결을 위한 수요데모, 외국인출입국관리 법안을 생각하는 전국운영위원회, 북규슈한글변론대회, 공생문화도라지학원, 최창화기념 북규슈인권집회, 임진왜란을 반성하는 시민모임, 인종차별 혐오발언 항의집회 등에 연대해 왔습니다. 본국의 신학대학원생, 목회자, 평화순례 단체를 맞이하여 안내와 연수를 함께 해왔어요.
인상에 남는 일은 세월호🎗️ 유족회와 인연이 닿아 부모님, 형제들을 각기 맞이하여 탄광희생자 납골당 무덤 기념비 등 역사에서 잊히고 버려진 사람을 기리는 여행이었습니다. 어둠은 더 짙은 어둠으로, 모순은 더 깊은 모순으로 대화가 가능하겠지요. 재일동포 고난의 현장을 바라보는 유족들이 제게는 삶의 무게를 무언으로 전하는 전도자伝道者로 보였어요.
#5. “지금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새해를 맞아 계획하신 바가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해외동포는 본국의 움직임에 민감합니다. 민주화운동이나 인권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부채의식도 있어요. 이번 권력자의 횡포에 많이 놀랐지만, 한밤중 국회의사당으로 뛰어가 계엄군과 장갑차를 저지한 시민들, 그들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격려한 또 다른 시민들, 상관의 명령에 소극저항을 한 군인과 공직자들의 모습이 더욱 놀라웠어요. 정의와 상식을 요구하는 민중의 행동🏳️이 존경스럽고 감동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감각으로 남북한 평화공존의 봇물도 터질 거라고 예감합니다.
다가오는 봄에 정년은퇴를 합니다. 해야 할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채우고 싶습니다. 매주 주보에 게재한 칼럼이 700회쯤 됩니다. 생활 속에서 희로애락을 기록한 명상록인데, 저 자신에게 주는 꽃으로 정리하여 바치고 싶군요. 그리고 제가 만나온 모든 이웃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글을 남기고 싶어요. 망각에서 기억으로 보존되길 바라며, 소설 속 인물들로 재현해볼까📝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를 길러준 고향을 너무 모르고 있어요. 한국에서 향토순례길을 걸어보려 해요.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의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출발하여 휴전선 따라 동해안까지, 동해안을 따라 남해안 서해안으로 한 바퀴 돌고, 국도 1호선과 제주도를 일주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각 지역의 사람 언어 역사 음식(막걸리) 등을 체험하고 제가 한국인임이 재확인되길 바라고 있어요. 올해 장마철 이후로 생각 중이고, 1인 향토순례이지만 일부 구간 동행을 환영👐합니다!
#6. “마지막으로,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황석영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가 “사회운동단체 몇 군데는 적극 연대하라! 깨어있는 시민이 많아지면 진정한 민주사회🌳가 된다”라고 했어요. 구약성서에 예언 활동이 있는데, 사회의 부패를 지적하고 권력자의 위법을 고발하고 부자들의 교만을 질책합니다. 소외된 자 억울한 자의 편에서 활동합니다. 그들은 배척과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활동가와 작은 단체를 존중하는 파랑의 친구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파랑 식구들은 예언자들의 삶과 죽음의 영을 묵상하면 매일의 힘을 얻겠지요.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분들은 멋쟁이입니다. 만년청춘💙입니다!
온 삶을 바치는 존재는 그 자신이 아니라 주변을 밝힙니다. 저를 태우는 초🕯️처럼. 그가 사그라져도 이미 나눈 빛으로 주변은 여전히 밝습니다. 그렇게 제 몫을 혹은 소명을 다할 뿐입니다. 빛을 나누어 받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올해 향토순례길에 함께하심이 어떨지요? 수줍게 건넨 파친님의 연락처를 공유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연락처 kokuraju@gmail.com 전화/카톡 +81-90-2516-5169 주문홍)
희망 가득한 설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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