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파친코 38화 / 테스

지금 파랑은

[파친코 38화]  with love and respect💕 – 테스 파친님

“테스, 같이 갈 수 있어?” “Of course!😃” 한 달 전 한국노동대상을 받은 정귀순 이사장님이 시상식에 꼭 함께하고픈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주민과 이주노동자의 권리 향상’이 선정 이유인 만큼, 그동안의 벗들과 함께 받는 마음으로 다녀온 서울 수상길💐은 정겨운 소풍 같았습니다. 눈물과 웃음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며 파친님으로 콕 찍어둔 사람, 8월에는 테스님을 모십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산타 테레시타 벨라데 마낭안(Santa Teresita Velarde Manangan)인데요, 다들 저를 ‘테스’라고 부릅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대학 시절 우연히 영어 과외를 한 한국 남성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기 위해, 제가 스물네 살이던 1993년에 한국으로 왔어요. 그렇게 지금의 남편과 아들이랑 부산에 살고 있습니다. 필리핀보다 한국에 더 오래 살았네요.

저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병원과 기관, 주로 <이주민과 함께>와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통역을 해요. 초중등학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다문화 수업을 진행하고, 돌봄센터와 노인복지관에서 영어 수업👩🏼‍🏫도 하고요. 주말에 시간이 나면 필리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필리핀 공동체 SAPINAKO(SAmahan ng mga PIlipinong NAgkakaisa sa KOrea)와 FCC(Filipino Community Center)에서도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제가 지금 파랑의 정귀순 이사장님, Ms. Jeong😄을 만난 1997년으로 거슬러 가는데요. Ms. Jeong은 제가 일하던 영어 학원의 학생이었어요. 그 학생이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저에게 자신이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현재 <이주민과 함께>) 사무실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당시 저는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갔는데, 그게 이후 30년 가까운 역사의 시작💙이었어요. 가보니 그곳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이주노동자를 위한 영어 뉴스레터(Asian Workers’ News) 초판 교정부터 제가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네요. 한 ‘학생’ 덕분에 제가 이주민 활동가로서 성장하고 발전할 기회를 얻은 셈이죠.

#3. “이주를 결심하고, 이주 후 적응하는 과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사실 이주는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게 가장 중요했던 건 사랑🥰이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 꼭 가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오히려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셨는데, 공항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저를 배웅하시며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어요.

한국에 온 첫 느낌은 ‘춥다☃️’예요. 11월 26일이니, 초겨울이었죠. 그래도 부산은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저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한국 반찬은 나물이 많아서 제가 꼭 풀 먹는 말이 된 것 같았어요. (시어머니가 가끔 고기를 사주셨어요~🤣) 그리고 “안녕하세요”라는 말만 알고 왔으니, 당연히 언어가 어려웠고요. 또 은근한 남녀차별을 느끼고 답답해서 운 적이 있는데, 곁에서 남편의 도움과 위로로 이런 어려움은 쉽게 극복할 수 있었어요. 제가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그리움이었어요. 아버지를 울리면서 떠나왔지만😅, 필리핀의 음식과 두고 온 친구들, 살던 마을, 특히 가족이 보고 싶었어요.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었거든요. 가족들은 제 전화를 받으려면 전화기가 있는 이웃집에 가야 했는데, 전화기가 너무 비싸서 서로 편지만 주고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저는 이곳 생활에 적응해 왔습니다. 가족과 공동체의 든든한 지지를 받은 덕분이고, 그건 지금도 제가 이곳에서 살아가는 큰 힘🌱이에요. 이제는 필리핀에 가 있을 때 한국이 그립기도 해요.

#4. “필리핀 공동체 ‘SAPINAKO’와 ‘FCC’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세요?”

SAPINAKO는 부산지역에 연고를 둔 필리핀인 연합 공동체고요, 2004년에 설립되었어요. 한때 200명이 넘는 많은 회원이 있었지만, 대부분 취업 비자가 만료되어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리더들이 남아 있는 한 SAPINAKO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저희는 항상 이야기해요. 해마다 필리핀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가방과 학용품을 나눠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여름 캠프를 열고, 추석 무렵에는 창립 기념 행사를 하는데 올해 10월 4일은 창립 21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에요. 필리핀 음식과 음악으로 가득한 저녁, 누구든 환영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도 함께 모여 축하를 나누어요.

FCC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필리핀 공동체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2017년에 설립되었어요. 저희의 가장 큰 행사는 6월에 열리는 필리핀 독립기념일 행사입니다. 올해는 양산 서창 필리핀 공동체가 주최했고, 21개의 공동체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요.

저는 1년에 한 번 필리핀에 가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학생들에게 가방과 학용품을 나눠주는 일정에 맞춰 보통 6월 개학 전 5월에 갑니다. 프로젝트 실무🎒를 챙길 수 있고, 또 필리핀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5. “부산에 와서 활동가로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의 꿈을 듣고 싶어요!”

처음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에 갔을 때 저는 20대였고 경험이 없었지만, 필리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싶어서 그곳에 남았어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죽은 형제의 시신을 확인한 다른 형제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 때, 통역하러 간 경찰서에서 저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호흡 곤란을 겪는 분을 병원 심장내과에 데려갔다가, 당장 시술이 필요한 상태여서 시술받도록 결정하게끔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경험이 쌓였어요. 내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사람들의 문제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이 기뻤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 사랑과 존중을 담고 싶었어요. <이주민과 함께>는 제게 지식과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면서 제가 ‘따뜻하고🐶 자신감 넘치는🐬’ 이주민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곳이에요.

제가 요즘 즐기는 일상이 있어요. 매주 금요일 아침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이인경 센터장님과 네팔 이주민 활동가 두루가 씨와 함께하는 “걷고 이야기 나누기🌞” 인데요. 해 뜨기 전 새벽에 만나 삼락생태공원을 두 시간 정도 산책하는데, 벌써 1년 반 넘게 해왔어요. 내년 <이주민과 함께> 30주년 행사까지 10kg 감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제가 꼭 바라는 것은,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얻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것입니다. SAPINAKO 회원 중 일부는 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주로 공장에서 일해 왔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기술과 지식을 습득했지만,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경험과 기술에 걸맞은 급여, 직위,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한국인 동료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6.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이주민과 함께>나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 그리고 지금의 파랑은 이주민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에요. 덕분에 저도 부산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에 더해, 활동할 수 있었거든요. (가끔 이제는 활동을 내려놓고 그냥 ‘아줌마’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금도 무언가 성취할 때면 여전히 보람 있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부산이 제게는 제2의 고향이에요. 저는 Ms. Jeong의 오랜 팬으로서, 그와 그의 동료들이 파랑에서 건강하게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Can I write my answers in English?” 사상 첫 영어 인터뷰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지만, 파친님이 말하고픈 뉘앙스를 잘 담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어지는 추가 질문에 언제나 “Got it!” “OK!”로 답하는 파친님은 그 옛날 “같이 갈래?” 묻는 한 ‘학생’을 흔쾌히 따라나서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이주민을 향한 관심이 한편 의심스러운 것은, 파친님이 꾸준히 지녀온 태도가 없는 까닭이 아닐까요.

“It is very fulfilling when I am able to contribute my time and effort with love and respect to solving a fellow country man’s problem or dilemma.” – T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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