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친구 코너 <파.친.코.> 2화
[파친코] ‘즐거운 일을 네가 다 한다’ 남원철 파친님

부산교통공사에서 노동조합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남원철 파친님!
파친코의 두번째 인터뷰이는 바로 남원철 파친님이에요! ?
원철 파친님은 부산지하철노조에서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시고, 파랑의 이사님이시기도 한데요. (이사회 코너에서 활짝 웃고 계신 바로 그 분!) 파랑의 후원회원이자 비공식 청소부장님까지 도맡고 계시답니다! 원철 파친님을 만나러 1호선 종점인 노포역 너머에 있는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사무실에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남원철 파친님!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
네, 저는 이제 부산교통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역무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노동조합의 전임자거든요. 다른 업무를 안 하고 노동조합 활동만 하면 노조 전임자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노조에서 직책은 수석 부위원장이고요. 노동조합 안에서 하는 일은 부산도시철도운영서비스 소속 운영서비스지부의 일을 총괄하고 있어요. 그리고 대외 업무도 많이 맡고 있는데요. 주로 부산지하철과 연관된 현안을 공론회하고 체계화해서 정책을 생산하면서, 이를 매개로 다양한 단체들과 연대하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에서 함께 활동하기도 하고요. 지역노동사회연구소 창립멤버로 여기서도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지역의 노동과 시민운동의 접점을 만들고자 설립한 부산공공성연대 집행위원을 맡고 있고, 그밖에도 다양한 단체들과 일상적으로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회비를 내는 단체만해도 스물 네 곳이 되네요.
그리고 간단히 우리 노동조합 소개를 짧게 말씀드리면 조합원은 오천명쯤 되고요. 더불어 중요하고 특이한 점이 있다면 노동조합은 하나지만 여기에 속한 노동자들은 두 개의 회사에 다니고 있거든요. 하나는 제가 소속된 부산부산교통공사가 있고, 또 하나는 부산도시철도운영서비스주식회사가 있어요. 도시철도운영서비스주식회사에는 청소나 경비업무 하고 계신 노동자들이 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교통공사 조합원이 한 사천 명 정도, 부산도시철도운영서비스 조합원이 한 천 명쯤 되거든요. 저희는 운영서비스지부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에 있는 천 명 정도의 조합원들은 회사가 다르니까 업무내용이나 노동조건이 꽤 다르거든요. 쉽게 말하면 교통공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공기관 노동자에요. 그냥 뭐 좀 뭐 좋은,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죠?
비교적 처우가 좋고 안정적인…!
네네. 그렇죠. 그런데 도시철도운영서비스주식회사는 저희 교통공사조합원과는 환경이 확연하게 다르거든요. 일단 청소나 경비업무이기 때문에요. 이분들도 회사를 만들면서 정규직이 되기는 했지만 교통공사 정규직에 비해서 급여나 처우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거든요. 그리고 또 대부분 교통공사 조합원들은 공채시험을 쳐서 들어오셨으니까 비교적 우리 사회에서 학력이 좀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고, 또 남성이 많거든요.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주를 이뤄요. 그런데 운영서비스 쪽은, 우리 사회가 청소에 대한 그런 게 있다 보니까 한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여성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보자면 학력도 좀 낮은 편이고요. 그러다보니까 현장에서는 교통공사랑 운영서비스 조합원들에게 좀 다르게 접근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차별하겠다거나 격차를 두겠다는 게 아니라, 교통공사와 운영서비스 조합원들에 대한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한 거죠.
예를 들면 교통공사 조합원들은 SNS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요청하거나 공유해도 빠르게 전달이 되고 처리가 되거든요. 그런데 운영서비스 조합원들은 노안이 오셔서 화면의 작은 글씨를 보는 게 불편하신 분들도 계시고, 핸드폰도 가장 기본적인 기능 외에는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익숙하지가 않으니까요. 그러면 교통공사에는 내용을 SNS로 보내고, 운영서비스에는 종이로 출력해서 전해드린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또 교통공사에는 서면으로 전달할 내용이면 운영서비스 쪽에는 가서 만나 뵙고 직접 말씀을 드린다던지 하는 식인거죠. 이런 식으로 운영방침이 세세하게 많이 달라요. 최대한 잘 전달하고 이해하실 수 있게 해드리려고 하지만, 만나 뵙고 설명을 드려도 사실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 설명드리면 좀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제가 수석부위원장으로서 운영서비스지부 조합원들을 전담해서 지부 쪽으로 좀 더 많이 애를 쓰고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역할인거죠. 또 회사가 다르다보니까 교섭도 따로 해야 하거든요. 공사와 주식회사 두 곳을 포괄해서 하는 일은 위원장이 하는 일이지만, 또 제가 운영서비스 부분은 좀 특화해서 맡고 있는 거죠. 그리고 상대적으로 교통공사에 비해서 운영서비스 쪽이 처우가 많이 개선되어야 하니 해야 할 일들이 좀 더 많고요. 물론 그 모든 걸 저 혼자 하는 건 아니고요. 운영서비스 노조의 간부들도 스무 분 정도 계시고 그분들하고 같이 하는 거죠. 전체적인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제가 좀 역할을 하고 또 상황을 보고, 같이 조율하고 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때마다의 굉장히 많고 다양한 일을 그때그때 상황을 살피면서 부지런히 하셔야 하는 자리에 계신 것 같습니다.
별 거 없어요. 폼나게 설명한거지. (웃음)
그냥 소개를 하셨는데 폼이 나버린 것 같습니다. (웃음)
일터 소개를 해주신 김에 부산지하철노조의 요즘 이슈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일터 소개를 해주신 김에 부산지하철노조의 요즘 이슈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가장 큰 이슈는 새로운 정부의 출범이죠. 보수정권이잖아요. 사실 보수 정권이라고 부르기에도 아쉽긴 한데요. 어쨌든 뭐 이전 정부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정부가 시작되었고요. 사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노동정책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저희는 보지만, 이제 그때보다도 더 악화된 상황이 올 거잖아요. 그리고 부산시와 부산시의회도 이제 국민의힘이 다 장악을 했잖아요. 물론 뭐 과거에도 아주 좋은 시절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 당시의 반노동자정책이나 탄압이 훨씬 컸었거든요. 제가 2016년도 박근혜 정권 당시에 해고당했던 경험도 있었고. 그만큼 인권, 사람을 존중하는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정권이라는 생각이 있고요. 더군다나 검사 출신인데 사람 잡아들이는 데에 얼마나 익숙하겠어요. 그래서 이제 좀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는 게 좀 걱정이긴 하죠.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뀔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모르니까 걱정이 되네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변화에서 기인할 정책들의 변화가 제일 우려되는 부분이고, 또 노동정책뿐만 아니라 저희는 공공기관 노조니까 공공기관 운영방침에 대한 부분도 걱정이 되죠. 공공기관을 시민들의 편의를 향상시키기 위한 공공성을 위주로 운영을 할 것인지, 공공기관에도 시장논리를 적용해 돈을 많이 벌고 성과주의로 갈 것인지에 따라 시민의 편익은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그런 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고민이라는 거죠. 뭐, 너무 낙심할 건 없어요, 너무 일상적인 일이니까. 사실 인권운동이나 이쪽에서도 앞으로의 변화가 걱정되잖아요.
모쪼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먹고 있고요. (웃음)
그러면 어떻게 파랑의 친구가 되셨는지도 들려주세요.
저는 이전부터 정대표님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2014년도부터거든요. 이주민과함께 대표님으로 계실 적에, 저희 노동조합이 이주민과함께와 장학사업협약을 맺었거든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요. 이주민과함께가 그전부터 하던 ‘베트남 청소년들에게 날개를’이라는 베트남 청소년 장학사업인데,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베트남 지역에 있는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에요. 저희 노조는 2014년도부터 시작을 해서 학살이 일어난 2월 25일을 기점으로 매년 방문해서 학생 25명에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어요. 그 협약을 체결할 당시 제가 노동조합 사무국장이었어요. 그때 정대표님과 같이 일하시는 분들, 전진성 교수님을 포함해 저희 노조에서도 꼭 한 명씩 같이 갔었거든요. 저는 2015년부터 그 길에 함께 했고요. 19년까지 5년 동안 정대표님과 계속 같이 갔었죠. 그때부터 인연을 맺고 아주 친하게 되었고, 2020년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있만요. 그 사업 때부터 같이 하고 있고, 그 후부터 저희가 공부모임을 하는 게 있거든요. 지역에서 사회현상에 관심 많은 분들이 다양하게 모이는 르몽드 읽기모임이라고, 코로나 이후로 좀 뜸했다가 다음주 월요일에 또 모여요. 베트남 같이 가면서 인연을 맺은 분들은 아닌데, 지금보니 르몽드 멤버들도 거의 다 베트남 사업에 한 번씩은 다녀오신 분들이네요. (웃음) 그래서 저는 2014년도부터 동지 또는 선배로 생각을 하면서 꾸준하게 뵙고 있어요.

베트남 장학사업 담당자로 베트남에 방문하셨던 남원철 파친님! 파랑과의 찐한 인연은 이때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벌써 8,9년이 다 되어가는 인연이네요.
그렇죠. 아주 친하게 된 때부터만 세어도 그렇게 되네요.
9년지기 절친이라니. 원철 파친님은 파친이기 이전에 정귀순의 친구, 정.친.이었네요!
(웃음) 네. 네. 그래서 대표님이 (파랑을 만든다고) 간곡한 말씀을 주시기에, 바로 ‘넵’하고 시작을 했죠. 고민할 게 없었어요. 고민을 왜 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그냥 뭐 일단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사실 어떻게 보면 제가 조금 더 좋은 조건인 건 사실이잖아요. 이런 활동을 하는 활동가로 보았을 때 저는 너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그 좋은 직장을 바탕으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하는 일은 같잖아요. 우리가 이 활동을 하는 목적은 같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저는 더 적극적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저도 진작부터 이런 단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거든요. 저도 어디가면 ‘노동조합 활동가’라는 얘기를 하는데, 저와 달리 시민단체나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거든요. 이런 분들을 위한 단체가 생겨서 기존 활동가들이 마음 편히 활동할 수 있게 하고 또 새로운 활동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했죠. 그래서 진짜 고민 안하고 얼른 했어요. 제가 후원금 납부한 순서를 보면 아주 상위에 있을 걸요? (웃음)
맞아요. (웃음)
진짜 고민 하나도 안 했거든요. (웃음)
그 마음이 느껴져서 정귀순 이사장님도 원철 파친님을 신실한 동지로 생각하시는 거겠죠? 서로에게 이런 동지라니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사실 저는 간도 작고 통도 작아서요. 스물세 군데 정도 후원하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더 늘릴 생각을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파랑의 추진위원으로, 또 회원으로 함께해주시는 마음이 무척 감사해요.
사실 저도 좀 자랑 같을까봐 스물 네 개라고까지는 말 안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어떤 그 포인트도 좀 있어야되고, 사람들한테 자극도 좀 주고 하려고 숫자를 밝혀봤어요. (웃음) 제가 오늘 출근하면서 처음으로 통장을 확인을 해봤는데, 저도 세어본 건 처음이라 스물 네 개인건 처음 알았어요. 사실 부산에서 다양한 분들하고 계속 일을 같이 많이 하거든요. 연대활동을 많이 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이 연대활동을 하는 거고 제가 그 담당자로서 10년 가까이 계속 외부단체와 연대하는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계속 외부의 활동가를 만나게 되는데, 모르고 지내면 모르겠지만, 만나서 그분과 같이 일을 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거예요. 만나서 같이 일을 하고 우리가 얼굴을 보고, 또 우리는 함께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들인데, 회원조차 가입 안 하면 그건 너무 야마리가 없잖아요. (웃음) 그래서 만나면 가입하고, 가입하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가장 최근에 가입한 건 진보넷, 진보네트워크에요. 디지털정보감시나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응하고 논의를 하는 시민사회단체에요. 거기도 일종의 인권단체죠. 5월 12일에 저희가 정보인권 관련한 현안이 있어서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대표님을 토론자로 발표 부탁을 좀 드렸거든요. 발표하시고 나니까… 또 이렇게… 또 그렇게 회원가입서 썼어요. (웃음)

그렇게 또 회원가입서를 쓰게 되신 남원철 파친님!
(웃음)
아니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저는 그냥 한 열 몇 개 되는, 진짜로 열 댓 개 정도 될 줄 알고. 보통 그 정도 하는 사람 많거든요.
네, 저도 열 개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맞잖아요. 그런데 세어보니 정기적으로 내는 곳만 스물 네 개길래 놀랬잖아요. 솔직히 ‘아, 너무 많은데, 좀 접어야 되나.’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긴 했는데, 그걸 어떻게 그래요. (웃음) 그리고 솔직히 제가 많이 벌잖아요. 많이 벌기도 하고, 그리고 저 술 되게 좋아하거든요. 솔직히 술 많이 먹고 5만원, 10만원 내는 거 하나도 안 아깝잖아요. 술 한 잔 먹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제가 정말 착하고,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건 아니고, 아, 아니,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도요, 이렇게 하면 제가 편해요. 제 마음이. 엄청 편하고, 또 그런 게 제 자산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해두면 이럴 때 폼도 나잖아요. (웃음)
그렇네요! (웃음) 멋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자산이라니까요, 이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정말이지 큰 자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더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어요!
그리고 아까 정책을 생산한다고 하셨는데 조례도 만드시고, 사업도 만드시고 하셨을텐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정책이 있다면 이야기 들려주세요. 교섭이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의미있고 보람있었던 경험을 나눠주셔도 좋겠고요.
그리고 아까 정책을 생산한다고 하셨는데 조례도 만드시고, 사업도 만드시고 하셨을텐데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정책이 있다면 이야기 들려주세요. 교섭이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의미있고 보람있었던 경험을 나눠주셔도 좋겠고요.
가장 최근에 했던 게 생각이 나는데요. 아까 제가 공사의 자회사인 운영서비스주식회사, 운영서비스지부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게 2017년 7월달에 문재인 정부 출범하고 나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만들어졌거든요. 운영서비스주식회사에 한 천 명 정도 되는 환경사, 경비사님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이 다 외주 용역업체 노동자였거든요. 용역업체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었던거죠. 그분들 중 한 절반 정도는 노동조합 조합원이셨어요. 2017년도 정규직전환 법안이 발표되고 나서부터 저희가 시청역에서 농성도 6개월 이상 했었고, 거의 2년을 계속 아침마다 선전전을 했었어요. 부산지하철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서 부산교통공사 직접고용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오랫동안 농성과 투쟁과 선전전을 한거죠.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2020년 7월달에 부산시의회의 중재를 통해서 이분들을 직접고용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고용에 준하는 고용조건이나 처우개선을 전제로 한 자회사인 운영서비스주식회사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고용을 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되었거든요. 노사공동으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다보니 일반적인 자회사보다 노동조건도 좋을뿐만 아니라, 회사설립을 하는 과정이 남달랐다보니 조금은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하고 계시다고 저는 보고요. 그 과정을 제가 주도했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제가 교육부장이었는데 제가 직접 부산지하철노동조합 교육부장 직책으로 자회사 설립을 주도하고 실무를 담당했거든요. 2021년 4월달에 설립해서 12월까지는 부산교통공사 안에서 자회사를 관리하는 업무를 직접 담당하다가, 이제는 노조 전임자로서 자회사 지부를 맡고 있는 거죠.
직접고용을 요구하다가 자회사라는 방법을 택했다보니 아쉬움을 있지만, 사실 그 당시 코로나나 부산시장 사퇴와 그런 상황에서 만약에 자회사 전환으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아마 투쟁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투쟁 중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사실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좀 차선이긴 했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원칙을 벗어난 선택이잖아요. 제가 욕도 많이 들어먹었거든요. 타협을 한 거잖아요. 지금도 욕 많이 먹고 있어요.

민선7기 지방공기업 공공성 관련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계신 남원철 파친님.
그런데 제가 그때 생각했던 건 당사자들이었어요. 당사자들이 원하기도 하거니와 이분들도 원래 나잇대가 있으신데다가 점점 나이가 더 들어가면서 투쟁하는 어려움도 있고요. 2000년대 중반에 철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요. KTX 승무원 분들도 십이 년이 넘는 동안 투쟁 끝에 쟁취하신 것처럼, 여기도 기한 없이 갈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우리가 요구했던 직접고용이 안정된 고용과 처우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 두가지가 전제가 된다면… 제가… 저한테는 사실은… 상이기도 하지만 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양면이 다 있잖아요. 그렇게 해서 많은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일반적인 투쟁에 비교하면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뭐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잘 된 판단이라고 저는 생각하기는 해요. 왜냐하면… 사실 당사자들이 가장 힘들잖아요.
우리가 노동운동을 한다면서 당사자를 생각하지 않고 원칙을 따지는데, 사실 원칙을 따지는 사람들은 저같은 정규직, 부산교통공사 직원이 원칙을 따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어렵고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 의견은, 사실 노동조합 안에도 그런 게 참 많아요, 무시하고, 지도부가 되면, 지도부의 의견대로 되고, 이런 게 많기도 하거든요. 설득하는 데에 시간이 참 많이 걸렸어요. 4개월 이상 걸려서 겨우겨우 뜻을 맞췄죠. 제가 사실 노동조합 활동을 중단하려다가도 수석부위원장을 하게 된 것도, 수석부위원장이 서비스지부를 맡게 되어 있는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부족한 게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좀 더 책임을 져야 되겠다는 생각, 좀 더 정확히는 책임을 제가 진다기보다는 그냥 이게 저한테 남은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숙제. 그렇죠. 네.
상이자 벌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남네요.
한 2년 정도 고생 진짜 많이 했어요. 정말. 고생 많이 하고, 힘들었고,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죠. 지켜주는 분들도 같이 투쟁했고, 같이 전환하시고 했던 다수의 환경사님들, 조합원님들, 간부님들이 있고요. 그런데 일부에서는 끊임없이 비판을 하고 있죠. 그런데 그거는 어쩔 수 없는 거죠. 저도 제가 했던 일이 최선이 아닌 건 알고 있거든요. 열심히 싸워서 직접고용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세상일 모르는 거니까요. 그리고 또 이렇게 자회사로 갔을 때 시간이 지나면 고용이 불안해질 수도 있는 거라서, 제가 했던 게 최선이거나, 내가 모든 걸 잘했다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어쨌든 제가 좀 떳떳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 오랫동안 투쟁하신 분들, 노조를 오랫동안 책임지셨던 조합 간부들, 그분들하고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그 과정을 거쳐왔다는 거에요. 제가 리더나 지도자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요. 제가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한 게 아니라 어쨌든 현장을 설득하고, 설득하면서 어려웠던 그 모든 걸 같이 이야기하면서 해왔다는 것, 제가 노조의 간부니까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면서 끌고 간 건 아니라는 거죠. 방향은 제시해드렸고, 어느 방향이든 그에 따라 이런 위험이 있다고 말씀드렸던 것, 그래서 비정규직 노조분들과 갈등없이 해냈다는 게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다수의 조직에서 과도한 리더의식, 과도한 책임감, 어떤 그런 과도함들이 너무 넘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안 했다는 게 저는, 그래요. 근데 그냥 제 생각이에요. 그분들(비정규직 투쟁 당사자들) 만나보셔야 진실을 알 수 있겠죠. (웃음)
제가 감히 이런 이야기로 정리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척 열심히, 묵묵히, 꿋꿋이 숙제를 품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10년, 길게 잡으면, 10년이 아니죠. 2007년부터 전임을 했으니까, 한 15년 정도 노동조합 활동에 있었고, 저 열심히 했거든요. 열심히 했고, 제가 군데군데 게으름 피웠지만 제가 해야 할 일 맡아서 해냈고, 제 나름의 전문영역을 가지고 제 역할을 쭉 해왔다고 저는 보거든요. 그래서 계속 일을 맡을 수 있는 거고요. 짧게 보면 한 2년 정도, 2020년부터 해서 한 2년 정도는 또 정말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몸무게가 한 5키로 정도 줄은 상태거든요. 빠진 몸무게가 회복이 안 돼요.
아아.
보시면 너무 말랐잖아요. 제가 원래 이렇게까지 마른 사람은 아니에요. 이 정도로. 그래가지고 회복이 안 되고 있고, 그래서 사실 좀 쉬고 싶…었고. 계속 쉬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일은 꾸역꾸역 하고는 있는데, 인풋없이 아웃풋만 계속 하다보니, 무한반복 루프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계속 그냥 아는 것만 가지고 써먹는 거죠. 옛날에 요만큼 배운 것 가지고 계속. 생활도 그렇고, 제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도 그렇고,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좀 쉬면서 충전, 재순환, 이런 걸 해야되겠다 생각을 하는데, 이게 좀처럼 잘 안 되죠. 안 되는 건 두 가지가 문제인 것 같아요. 상황이 계속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도 있지만, 제가 쓸만큼 에너지를 다 안 쓴 것 같아요. 정귀순 이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직 거덜나지 않았나보다고. 거덜나면 도망갈 텐데, 아직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뭔가 남은 에너지가 있나봐요. 아직은 욕심이 있는 거죠. 그래서 올 해 목표는 ‘거덜내자.’에요. 진짜로요. 툭툭 털어가지고 다 끄집어내서 완전 방전 상태가 되면 도망갈 것 같아요. 거덜나고 나면 제가 파랑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네요.
꼭이요! 너무 거덜나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도 들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잘 거덜내고 잘 쉬실 수 있기를 하고도 바랍니다…!
이어서 원철 파친님에게 ‘인권’이란 무엇인가요?
‘존중’이죠. 존중. 하나 더 든다면 ‘작은 것에 분노하기’고요. 조건없이 존재를 존재로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나의 존재와 내 옆의 존재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을 때 분노할 줄 아는 것, 그게 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네요. 저도 꼭 화내야 할 때는 잘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하곤 해요.
제가 지금까지 파친코 인터뷰를 하면서 계속 파친님이라고 불러봤는데요.
이제 이 호칭, 조금 덜 어색하시죠? (웃음)
원철 파친님은 파랑과 어떤 친구가 되고 싶으신가요? 파랑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다면 들려주셔도 좋겠어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기대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섭섭해 하지는 마시고요. (웃음) 그렇다고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니거든요. 저는 파랑을 늘 지켜보고 있고, 믿고 있고, 기대하고 있고, 지지하고 있어요. 다만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너무 가까이 있으면, 멀어지는 것이 두렵고, 서로 기대고 있으면,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필요할 때 가까이 다가갔다가, 다시 거리를 뒀다가 하는 것이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노동조합 활동도 그런 것 같아요. 열성 활동가들의 모습을 볼 때 걱정되는게, 마지막에 안쓰러운 상황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노동조합을 자기 인생의 전부로 삼고, 거기에 기대서 모든 것을 사고하고 세상을 보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분들은 조직과 운동, 이 사회에 대한 실망이 분노로 격해지는 모습을 봤어요. 과한 것은 넘친다고 생각하면서 늘 서로 사이에 바람이 통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렇네요. 그러나 여전히 파랑이랑은 쪼끔 더 가까워져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마음과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다음 번에는 이사회에서 뵈어요~!

파랑이랑은 쪼끔 더 가까워져도 되지 않냐 여쭤보니 그저 웃으시는 남원철 파친님!
이번 호에서는 부산지하철노조의 남원철 파친님을 만나봤는데요.
다음 파친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언제나 호탕하고 유쾌한 그 분, 그 분을 만납니다.
그럼 다음 파라솔에서 파친코 3화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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