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파친코 4화 / 이현우

언론·기고

[파친코] 중력이 사라질 때 우리의 곁에 있을, 이현우 파친님!

파친코의 네번째 인터뷰이는 바로 바로 바로…! 이현우 파친님이에요!

현우 파친님은 부산지역에서 장애, 이주민, 소수자를 위한 공익변호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활동가 이현우를 지속하기 위해 직업인인 변호사 이현우로서도 바쁘게 일하고 계세요!  평균 40건 정도의 변호 사건을 맡고 있어 엄청나게 바쁜 현우 파친님의 귀한 시간을 얻어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회의 전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현우 파친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 이걸 어떻게 정리를 하시려나요. 간단하게 잘 말해야 할텐데.

네, 녹취 풀어서 정리할거긴 한데, 괜찮아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막 엉망진창으로 말씀하셔도 돼요! (웃음)

안돼요. 안됩니다. (웃음) 이거 녹취 따는 거 너무 힘든 일인 걸 알기 때문에. 음, 네. 저는 부산지역에서 장애, 이주, 그리고 소수자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현우 변호사라고 합니다. 보통의 변호사 사무실이 일반 사건들을 수임해서 운영이 된다고 하면, 저는 일반 사건들을 되도록이면 맡지 않고 장애인 학대 사건이라든가 차별 사건이라거나, 혹은 이주민 피해, 노동 침해 같은 사건들 위주로 수임받아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어요.

보통 이런 변호활동을 공익변호, 공익변호사라고 부르는 거지요?

네, 공익변호사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공익변호사님들은 보통 비영리로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저는 완전 비영리는 아니고 영리 반, 비영리 반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장애인이나 이주민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보다 보편적인 권리침해나 명예훼손 등으로 인한 사건 수임을 의뢰해오셨을 때에는 수임료를 받기도 하고요. 체불임금 사건이나 결혼이주여성 사건, 장애인 기초생활수급권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다 무료로 사건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까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소개해주셨는데, 변호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맞아요. 직업으로서 ‘변호사’는 사실 소송대리인이거든요. 소송행위를 대리한다는 건데, 소송을 진행함에 있어 법률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과 절차 진행,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법률적 주장을 대리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변호사가 증거들을 직접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직접 파악하러 다니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보통 의뢰인에게 증거 이거, 이거, 가져오시고 이거, 이거 알아보시라고 묻거나 요청해요. 그런데 저는 변호 활동을 하면서 사실 관계를 알아보고 증거 자료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는 당사자를 직접 만나러 다니고 있어요.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소송대리인으로서의 일반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 변호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제 자신이 직업이 변호사인 ‘활동가’이기를 바라요. 

활동가분들도 저마다 목표가 조금씩은 다를 수 있겠지만 큰 목적은 이 사회를 더 낫게 바꾸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렇거든요. 그리고 제 활동이, 제 활동의 목표가 이 법제도의 변혁으로까지 이어져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법제도의 변혁…!

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선례를 만드는 건데요. 판결로서 어떤 결정을 이끌어내면 그 판결이 다음 판결을 위한 선사례가 돼요. 그걸 판례라고 하는데, 판결을 내리는 데에 있어 판례는 매우 중요하고 영향력있게 다뤄지거든요. 그걸 만드는 것도, 바꾸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걸 바꾸지 않으면 계속 유사한 판례들이 생길 테니까 새로운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죠. 그래서 그 선례를 만들어놓음으로써 제도를 바꾸거나 사회에 크고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얼마 전 부산에 오신 이주언 변호사님 아시죠? 예로 들자면 이주언 변호사님이랑 여러 변호사님들이 진행한 것 중에 하나가 은행 관련한 건인데요. 발달장애인, 지체장애인이 서명을 못한다고 은행에서 금융서비스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요. 통장을 만들거나 대출을 못 하도록요. 대출의 의미도, 돈을 빌린다는 사실도 다 아시고, 소득도 있고 자격도 다 되시는데 대출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그저 손 근육이 경직되어 서명을 하는데에 어려움이 있을 뿐인데 자기 서명을 성인이 스스로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본인이 스스로 도장을 못 찍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차별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이주언 변호사님이 그 소송을 대리하셨었고, 이겼어요. 선례를 만든거죠. 이제 그와 같은 일을 겪어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신다면 은행이 지죠. 그러면 은행 입장에서는 앞으로 장애인 상대로 이렇게 하면 안되겠네, 이렇게 하면 손해배상 당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안 그러거든요. 그들은 손해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니까요.

와, 멋져요. 정말 사회 문화의 변화를 만드네요.

그쵸. 아, 그런데 변화가 이런 식으로만 이루어지면 안 되는데. 

여러 트랙이 있는 거죠.

맞아요. 여러 트랙 중에 저희는 또 저희가 가진 직업적인 부분을 사용하는 거고.

현우 파친님이 만든 선례도 궁금해요!

어… 제가 홍보에 좀 약해요.

(웃음) 저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럼 조금 용기내실 동안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현우파친님은 지금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민변은 어떤 곳인가요?

한 마디로 소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민변 안에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민주사회에 반대하지 않으면 대부분 소속되어 계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민변이라는 단체가 스펙트럼이 너무 넓고 하나의 가치로 좀 묶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일단 기본적으로 저희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전제가 있고, 민주사회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인권을 옹호하니까요. 부산 민변에서도 그런 활동을 같이 하고 있죠. 소수자 쪽 활동이라든가, 아니면 이제 수사 과정에 있어서 위법 사항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한 활동을 같이 하고 있어요. 시민단체분들이 시위 집회하는 경우에도 체포되었다 하면 가장 먼저 연락하는 곳이 부산 민변이고, 변호사님들이 같이 동석해서 대응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부산 민변의 소위원회 중 하나로 젠더위원회가 있거든요. 거기서 함께 부산퀴어문화축제 관련한 법적대응을 논의하고 스터디를 함께 하는 등 젠더 관련 사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코로나 이후로 이런 흐름들이 다소 끊기긴 했어요. 그래도 공공기관의 성폭력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자리에 나서자고 서로 독려하고 계속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또 이렇게 활동을 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요청이 오는 일들에도 대응을 하기도 하고요. 

맞아요. 저도 집주인이랑 갈등이 생겼을 때 변호사님, 아니 파친님한테 연락했었네요.

원래 그렇게 연락이 오가고 하는 거죠. (웃음) 그렇게 요청이 와서 하게 된 일 중에 하나가 미군 세균무기 실험실 대응이었어요. 제가 민변 부산지부의 미군세균무기실험실 TF 담당변호사를 맡게 되었죠. 

그건 이제 끝났나요?

아직 진행중이에요. 

이런 일들은 한 번 시작되면 긴 일이 되지요?

그렇죠. 어쩔 수 없죠, 뭐. 지금같으면 혼자하지는 않았을텐데 이 일을 맡게 될 당시에는 연차가 낮고 막내여서 제가 혼자 도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었어요.

음,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공익활동을 하는 변호사의 일상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는데요. 사건마다 다 다양할 것 아니에요. 장기적으로 가는 것도 있고, 여러번 항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것은 또 금방 끝나기도 하겠지만요. 계속해서 어떤 사건이 시작되고, 또 다른 사건이 마무리되고, 그 사이 사이에 저같이 귀찮게 사적인 송사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거고, 공익변호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셔서 법률상담이나 의뢰를 하기도 하겠고요. 이 모든 걸 다 해내려면 머릿속에 방이 정말 많아야 할 거 같은데, 

정확하십니다.(웃음) 

이걸 어떻게 다 해내실 수 있을지 상상이 잘 안 되네요.

그런데 어떻게 하냐면, 그냥 하게 돼요. 사건 하나하나마다의 부담감이 심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어요. 이게 그냥 일반 민사 손해, 돈 물어주는 사건이라고 한다면, 만약 제가 충분치 않아서 진대도, 하다못해 ‘내가 돈 물어주고 말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할 건 아니지만 ‘에라이’,하는 마음으로 그런 도피성 생각을 잠깐씩 할 수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건 안 그렇거든요. 장애인 학대사건, 난민 사건… 이런 사건들을 맡다보면 ‘이거 절대 지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머릿속에 정말 여러 개의 방이 있는데, 그 부담감 때문에 하나하나 다 새겨져서 기억이 안 날 수가 없고, 준비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캘린더가 다 가르쳐줘요, 지금 이거 해야 한다고. (웃음)

구글이 모든 것을 아시죠. (웃음) 그러면 보통 종료가 안 된 사건들을 평균적으로 몇 건 정도 가지고 계세요?

그때 제가 파랑 갔을 적에 너무 바쁘다고 했을 때에는 60번까지 갔었는데, 지금은 좀 많이 끝났어요.

60이요???

요즘 정말 바빴는데 바빴던 이유가 많이 끝나는 중이라 바빴어요. 사건들이 많이 끝났는데, 총 한 열 몇 건이 끝난 것 같아요. 제가 담당한 사건의 특징이 자 안 끝나는 건데(웃음), 드디어 11번이 끝나서 지금은 한 40여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많다…

그렇죠. 아직도 40여개의 미결 사건이 있죠. 어떤 건 정말 간단해서 한 번 보면 되는 것도 있고, 어떤 건은 1심에서 지고, 2심 지고, 3심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것도 있어요. 어떤 건은 헌법소원 제기했는데 2년간 아무 소식도 없는 것도 있고요. 하여튼 정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다 섞여 있죠. 

사람 대 사람으로 참으로 리스펙트합니다…

아니에요. 근데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제 어플도 있어요. ‘케이스 마스터’라고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어플이에요. 너 이거 해야 한다, 몇 일날 재판가야 한다, 이렇게 알림이 계속 떠요.

와, 그런 게 다 있군요.

네, 기일 순서대로 쭉 나열이 되어있고, 누가 뭘 내면 뭘 냈다라고 알림을 그때그때마다 줘요. 되게 잘 되어있어요. 재판 일정도 정리해주고.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스트레스가 커요. (웃음) 알림이 마아아아악 뜨거든요. 그러면 보고서 어휴…

노이로제…

그런 게 좀 있죠. 그리고 재판준비하는 사이사이에 온다고 했던 연락들도 정말 다양해요. 주기적으로 전화가 오는 곳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시각장애인복지관, 희망웅상,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지구인의정류장,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이런 데에서 한달에 한두건씩 전화로 문의해주시고요. 틈틈이 급한 사건들이 생겨요. 외국인이 갑자기 잡혀들어갔다. 그러면 급하게 맡는 사건들이 생기고. 그리고 여러 가지 회의들이 있고요. 장애인차별금지연대 회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학대심판회의, 이주사례연구모임 회의, 차별금지법제정부산연대 회의, 청소년법률지원 온 마을 Lawyer 회의, 민변회의, 그 밖에도 많은 회의들이… 어쩜 이렇게 일정들이 겹치는지. 특히 요새는 월말에 그렇게 회의 일정이 잡혀서 다 가지는 못 하고 있어요. 또 그 사이사이에 강의 요청도 있고요.

파친님의 시간 정말 귀한 것이었네요.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일상 생활은… 잘 지내고 계신 거죠?

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밥은 사먹으니까요. (웃음) 사실 이렇다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거절을 못하겠어요. 경찰서 같은 데에서 수사관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이 오면 거절하기가 아까워요. 왜냐하면 발달장애인, 이주외국인 조사할 때 이런 태도로 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지켜라,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잖아요. 교육청에서 교장, 교감 대상으로 강의해달라고 하면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인권, 보편인권이 얼마나 침해되고 있는지 법률적으로 정확하게 안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드니까 거절할 수 없고요. 그런 식으로 일정이 계속 채워지는 것 같아요.

이주민과 장애인, 소수자를 중심으로 활동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이런 활동으로 연결되시게 되었나요?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일단은 원래는 제가 장애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게, 오른쪽 눈이 안 보이게 태어났어요. 그래서 장애에 제가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공익변호사단체 활동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장애 쪽보다 그때 또 이주 외국인 쪽을 또 많이 하게 됐어요. 

그때 어떤 이슈가 있었나요.

이슈는 항상 있죠. 어떻게 보면 너무 흔한 이슈에요. 이주노동자 체불임금 사건, 난민 사건들이요. 근데 너무 많으니까, 너무 많고 많아서 저도 당연히 이걸 맡게 된 거죠.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소수자로서 이주민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사실 그전까지는 별다른 감수성이 없었는데 그 계기로 좀 알게 된 거죠. 너무 일상적인 혐오와 일상적인 차별, 권리 침해를요. 너무 당연하게 외국인이니까 최저임금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하고, 너무 당연하게 산재해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사실 요즘 내국인 상대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노동청에서 받아줘요. 근로감독관들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는 한데, 고용주는 한국인이고 이 노동자들은 떠날 사람이니까 자국민 케어가 우선이라는 논리죠. 그러면 활동가들이 가서 그런 부분의 합의를 조율하는 거예요.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제게도 좀 더 감수성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야기하다보니까 제가 너무 제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네요. 저 약간 이야기하고 싶었나봐요. 생색내고 싶었나? (웃음)

전혀요! 그리고 생색 좀 더 내고 다니셔도 되겠어요. 파친님 얼굴 알고 지낸지가 5년차인데, 저는 이런 이야기 다 처음 듣는 걸요! 

제가 홍보에 좀 약해가지고, 제가 뭘 하는지 모르시는 민변 변호사님들이 좀 많더라고요. (웃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조금이나마 활동 공유를 하신다고 생각해주시고요! (웃음) 파친님의 활동 공유에 이어 파랑도 분량 한 번 챙겨보겠습니다. 파친님은 어쩌다 (웃음) 파친이 되셨나요!

저는 로스쿨을 광주에서 나왔기 때문에 졸업하고도 광주에 있는 공익 변호사 단체에서 1년 정도 활동했어요. 그리고 나서 부산에 와서 활동을 시작했죠. 2018년 11월에 부산에 와서 두 달 정도 사무실 공사를 하고 2019년 1월에 혼자 사무실을 오픈했어요. 그리고 전화를 돌렸어요. 아까 저한테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신다는 그 기관들에 다 전화를 돌려서, 저는 이현우라는 변호사인데, 공익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아, 그래서 이때 연결이 돼서 그 해 4월에 첫 사건을 맡았었는데, 그게 저번 달에 끝났어요.

3년 반이 걸렸네요.

그게 그러니까 제가 맡는 사건의 특징이에요. 발달장애인 피해 사건인데 발달장애인 스스로 증거를 확보할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까 계속 안 되는 거죠. 경찰에서 검찰한테 가고 검찰이 고검으로 보내고, 고검도 안돼서 대검까지 가서야 대검에서 ‘니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재판이 열릴 수 있었죠. 그런데 제판에서 판사님이 아니라고 하셔서 하나하나 이제 다 꺾고 설득하는 작업이고 드디어 설득이 돼서 승소가 난 게, 지난 달 17일이에요.

1심, 숫자로는 1인데 넘어오고 넘어오고 넘어와서야 재판이 열린 거네요.

그렇죠. 경찰서에서 안 받아주는 거예요. 이 사람이 발달장애인처럼 안 보인다나요. 얼마나 황당해요. 그래서 찾아가서 혹시 의사선생님이시냐고 물었죠. 의사의 진단이 있는데, 당신이 발달장애인이냐 아니냐를 무슨 근거로 판단하느냐고요. 그리고 이 사건의 가해자들이 비장애인을 상대로도 범죄들을 엄청나게 저릴렀어요. 그것들은 다 유죄고, 다 기소됐죠. 근데 이 장애인 사건만 증거가 없는 거예요. 

너무 열받네요.

그러게요. 사실 힘이 빠져서 못하겠다가도 방금 말씀하신 그 분노로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아요. 어쩔 수가 없어요.

아, 어떻게 파친이 됐냐고 물어보셨는데 이상한 이야기를 했네요. 제가 요새 홍보에 약해서 자꾸 홍보를…? (웃음) 그때 연락을 다 돌렸는데, 이주민과함께는 워낙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는 곳이다보니 다른 분들하고도 많이 연결이 잘 되어 있어서 사건으로 만나지는 않았고요. 이주와인권연구소에서 세미나를 같이 하는데, 그러면서 이주민과함께 활동가 선생님들하고도 좀 알게 된 거죠. 정귀순 위원장님, 아름쌤도 이렇게 다 얼굴 알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정귀순 당시 이주민과함께 대표님께서 인권위원장이셨는데, 부산광역시인권위원으로 추천을 해주셔서 인권위원회 하면서 더 뵙게 되었고요. 함께 일을 하고 소속이 되고 한 건 이번에 파랑하면서고요.

그렇군요. 파랑하면서라니! 좋은 동사입니다! (웃음) 파랑하니 어떠셔요?

근데 이게 되게 웃긴게, 처음에는 사실 좀… ‘어떤 걸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제는 왜 빨리 모금을 안 하지?, 빨리 해야 하는데, 더 빨리 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뭐랄까요. 오히려 파랑이 생겨나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 없었던 건지, 그리고 무엇이 생긴 건지를요. 지역에, 그리고 운동에 무엇이 필요했던 건지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이어서, 파친님은 파랑과 어떤 친구가 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이 고정 질문은 사실 우리 파친님들께 우리 사이 더 돈독해지자고 추근덕거리는 질문입니다. (웃음)

음. 도움이 되는 친구요.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고 싶죠. 파랑은 리딩 그룹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의제를 던지는 그룹, 물론 그 안에서도 각 부분 현장그룹들이 일선에 있겠지만, 부산 지역 사회의 인권 현안을 리딩하는 그룹이 되기를 바라고, 될 거라고 생각해요.

현우 파친님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큰 일 났네요. (웃음)

잘 부탁드립니다. (웃음) 마지막 고정 질문인데요. 현우 파친님에게 인권이란?

어려운 것 같아요. 어려운 개념입니다. 

어렵죠. 포괄적이고.

진짜 어이없는 표현일 수도 있는데, 저는 중력이라고 생각해요. 평상시에는 못 느끼지만 중력이 사라지거나, 추락하고 있을 때는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거죠. 인권이 침해되는 순간에야 인권이라는 가치가 사실 좀 많이 와닿고 감정이 이입되고 공유되는 것 같아요. 안 그럴 때는 약간 무시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정말 그렇네요. 인권을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될 때는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니까요. 중력만큼 소중한 파친님도 중력처럼 파랑의 곁에 함께해주시기를 바라요. 중력과는 달리 늘 눈치채고 있을게요! 오늘 시간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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