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지금은 강해야 할 때 – 또뚜야 파친님
참 뜨거운 여름🌞입니다. 가만있어도 녹아내릴 것 같은 볕 아래, 부산에서 서울까지 22일 동안 걸어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 그 마음은 불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쇠처럼🚩 해에도 지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분명한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름 볕보다 강한 8월의 파친님은 이주민 활동가 또뚜야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미얀마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또뚜야입니다. 대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요리 실력이 뛰어나고 규율이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중 막내입니다.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가 2005년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한 단체를 만나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웠고, 한국어를 공부하며 이주노동자 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선배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평화와 평등, 정의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지금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한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전통문화에서는 태어난 요일에 따라 성격을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저는 금요일에 태어났습니다. 금요일에 태어난 사람들은 말하기 열정과 공감 능력이 있으며, 육체적으로는 피곤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활력이 있는, 휴일을 앞둔 (금요일 같은) 상태를 가진다고 합니다. 저를 보면 그 얘기가 얼추 맞는 거😃 같습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2005년에 부산에 와서 <이주민과함께>라는 단체를 만났습니다. 거기서 현재 파랑에 계시는 정귀순 대표님과 한아름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함께 활동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파랑이 창립됐을 때, 처음부터 알고 있던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파랑은 제 오랜 친구💙입니다.
#3.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오시게 된 이야기, 지금 부산에서의 활동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1988년,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미얀마의 8888 민주항쟁 이후 우리 집은 급격한 변화를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가계가 무너지듯 가난해졌습니다. 작은형님이 먼저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가서 일을 하여 가족을 지원했습니다. 저도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미래가 없는 나라를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일하느라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부산에 오기 전에 경기도에서 7년 정도 일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공감을 원칙으로 하는 사람인데, 이주노동자로서 한국의 노동환경에서 부당한 학대를 받을 때 그것을 무시하고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에 와서 인권활동가들을 만나 배우고 함께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옳고 바른 인식이 힘이라는 말처럼, 올바른 지식을 배울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스스로 힘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의 상담원으로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외에도 파키스탄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을 담당해 왔고, 노동문제에 대한 상담과 해결, 노동법 교육, 그리고 노동인권단체들과 함께 매년 노동권 매뉴얼을 작성하여 발간하고 있습니다. 한때 불의에 고개를 숙였던 연약한 자아를 위해,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꿈꾸었던 노동운동가의 삶을 하루하루 실현하고 있습니다.
#4. “2021년 쿠데타 이후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어떠신가요? 미얀마 현지의 소식도 궁금합니다.”
2012년에 설립된 부산·경남지역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의 ‘황금빛살 미얀마공동체’🌼가 있습니다. 경남 김해에서 작은 도서관과 쉼터를 운영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에게 무료로 휴식 공간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어요. 또한 미얀마의 가난한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프로그램도 진행해 왔습니다. 저는 그 공동체의 고문을 맡고 있는데, 공동체에서는 2021년 미얀마 군사 쿠데타 이후 내전 피난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 밤에는 온라인 회의에 참석합니다. 주말에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한 캠페인🔊과 모금 행사를 진행합니다. 누가 강요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지만, 종종 무력감에 지칠 때도 있습니다.
8888 민주항쟁의 대중 시위는 1988년 8월 8일에 시작되었고, 하루 만에 군대가 시위대 95명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했습니다. 1988년 8월 18일, 군부는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고 발표했으며, 쿠데타군이 선거를 약속하자, 시위는 다음 날인 8월 19일에 중단되었습니다. 10일간의 시위 동안 시민 8천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1990년에 선거가 치러졌지만, 쿠데타군은 승리한 정당에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최고 정치인 모두 감옥에 갇혔습니다.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지만, 다수의 지도자와 정치인이 없으면 연합이 무너지고 단결력이 무너져🥀 더 이상 독재자에게 대응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8888 민주항쟁과 상황이 다릅니다. 2021년 미얀마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3년 6개월이 넘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수민족 단체들이 미얀마 국민에 합류했습니다. 시민방위군(PDF)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 시민으로부터 혁명세력에 대한 재정 지원 금액은 매우 많습니다. 주요 활동가와 리더 정치인들이 체포됐지만 혁명세력의 집단적 권력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힘차게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8888 때처럼 독재자는 더 이상 미얀마 국민을 쉽게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 저는 (언젠가) ‘미얀마로 돌아가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야지!’라는 아이디어와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침몰하는 배에 탄 여행자와 같아서 계획한 여행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당면 목표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빨리 민주주의 해안까지 헤엄쳐 가는 것뿐입니다.
#5. “민주주의 해안까지 가는 그 길에 파랑도 함께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랑의 친구로서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파랑은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입니다. 독재파도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인권나무🌳입니다. 파랑과 같은 나무들이 더 많이 나타나서 울창한 숲🏞️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미얀마분들과 함께 망월동 5.18묘역으로 가는 버스 안. 창밖으로 난 산길을 한참 바라보던 옆자리의 파친님이 말하였습니다. “시골에 살고 싶어요. 먹고 싶은 채소 기르고 글 쓰면서📝 살고 싶어요.” 강철같은 심지 깊숙이 말랑한 여운을 엿본 듯, 공연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무슨 채소 드시고 싶어요?” “모닝글로리요.”
파친님의 그리움이 닿는 그곳에서 모닝글로리들은 푸르게 자라고 있겠지요? 미얀마에 안녕🌿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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