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47화 / 이수경

지금 파랑은

맑아지는 향처럼 – 이수경 파친님

기념하고 기억하는 날들로 가득한 5월💐입니다. 지름의 폭을 넓혀가는 동심원처럼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마다 주고받는 꽃향기가 일렁입니다. 햇살 좋은☀️ 어느 날, 파랑에서는 천막 농성장을 다녀왔습니다.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고픈 마음으로 모신 5월의 파친님은 이수경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이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 조합원 이수경입니다. 사회철학을 전공했고, 발터 벤야민이라는 철학자를 공부하고 있어요. 작년 12월 29일부터 천막농성⛺ 중인 파업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강사의 삶이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성 그리고 학생들의 학습권과 연결되어 있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150일 가까이 천막에서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농성장 곳곳에 남아 있는 연대의 기억들❣️ 덕분에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습니다~

#2. “천막 안이 이제 한기에서 열기로 가득할 텐데- 먼저 가볍게,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으셨어요?”
그전에도 파랑을 알고 있었지만, 파랑에 처음 방문한 건 2023년 6월 부산인권아카데미의 딸기 활동가님 강연 때였어요. “봄바람 순례단”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요. 다른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들을 잇는 봄바람 프로젝트, 딸기 활동가님의 ‘봄바람🌀’에 저도 힘이 났어요. 대학에서의 10년을 저는 ‘10년의 생존’이라고 농반진반 말하기도 하는데요, 파랑과의 인연이 저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만남이었어요. 그 후로 파랑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들을 멀찍이 응원💙하며, 제가 살아갈 수 있었어요.

 #3. “다시 천막으로 가볼까요. 부산대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부산대에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있어요. 1990년에 헌법노조(법외노조)로 출발한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이 1994년 합법성을 취득한 데 이어 2002년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부산대에서는 1988년 부산대강사협의회가 창립되었다가 2007년 지금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부산대분회🚩가 만들어졌어요. 그때부터 선생님들이 대학 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몸과 맘을 다해 싸워왔어요. 그 투쟁들에 기대어 현재 부산지역에는 부산대, 부경대, 인제대 분회가 있고 부산대 조합원 수는 180명 정도(부산대 전체 강사는 대략 1000명)입니다.

저희는 현재 강사 문제를 대학의 오랜 차별로 보고 대학의 학문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강사 처우 개선, 고등교육 공공성 회복을 요구하며 투쟁 중💪입니다. 부산대분회는 임금투쟁 중이고, 본조는 교육부 앞에서 5월 11일부터 노숙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에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과거 ‘시간강사’라 불리던 이들은 법적 지위도 없었고,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머물 수 있는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강사법 투쟁으로 어렵사리 시행된 2019년 강사법 이후에도 차별은 끈질기게 남았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깊이 뿌리내린 차별의 관성에 맞서고자🌊 함입니다. 부산대분회는 공무원 보수 인상률에 연동한 강의료 3%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부산대는 강의료가 이미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말로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 최고 수준의 강의료라는 말에 가려진 건 강사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에 명시된 방학 중 임금도 온전히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22주 중 4주만 지급). 방학이 되면 여전히 허덕이며 불안한 나날을 보냅니다.

저희의 요구는 전국 최고의 강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을, 존엄을 지키는🙏 하한선의 요구입니다.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납니다. 우리는 전국 최고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도 기쁘지 않거든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전국 최고 수준인 이들의 삶이 이러한데, 도대체 다른 대학의 상황은 어떨 것인지, 훨씬 더 열악한 사립대 강사들의 삶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산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강사를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비용 절감’의 목록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대학원에 어떻게 다양한 연구를 하는 이들이 모일 수 있겠으며, 온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강의를 할 수 있을까요. 강사를 착취하는 대학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부와 대학이 그리는 장밋빛 계획을 함께 해갈 이들의 삶이 전쟁터와 다름없을 테니 말이에요. 저희는 강사의 노동 가치에 대한 물음을 대학과 사회가 함께 진지한 질문💡으로 여길 때까지 계속 외쳐가려고 합니다.

 #4. “듣고 보니 ‘10년의 생존’이라 하신 표현이 맞네요. 어떻게 10년을 보내셨는지요?”
10년 동안 저는 대학의 곳곳에서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학부생으로, 대학원생으로, 비정규강사 노동조합의 차장으로, 또 강사로 일하며 대학의 다양한 풍경🏫 속에서 연구하며 지냈습니다. 학부생 시절까지 하면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이 질문을 얼마 전에 한 친구에게도 들었어요. 대학원 수료 이후, 학위도 없이 10년 가까운 시간을 대학에서 어떻게 생존했냐고요.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노동조합이 나를 살렸다!🌱는 것이었어요. 첫째는 비정규교수 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정말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대학원생 때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투쟁들을 지켜보며 대학에 다르게 머물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학부생 때 저의 선배고 스승이던 분들에게 많은 걸 배웠지만, 왜 그분들이 대학에서 사라져 갔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선배이자 스승의 삶의 조건이 학생인 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대학원생이 되어 파업 투쟁을 보면서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사는 대학원생의 미래이고, 강사의 삶의 문제는 대학원생의 삶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렇게 조합의 투쟁을 통해 저는 저의 가난과 무력함을 열패감이 아니라, 대학 제도와 교육환경 그리고 학문 공동체와 연동하여 생각하면서 대학에 있다는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게 되었어요. 가령, 교과목 미개설과 통상적 교과과정 개편이 ‘구조조정’이라는 것, 해촉이 ‘해고’라는 것, 예산과 숫자들이 단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제도와 교육환경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대학은 제게 차별을 철폐하고 존엄을 지켜내는 투쟁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현장’이 되고 보니, 전국 곳곳에 있는 투쟁에 기대 살아온 것 같아요.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그분들의 말들에 기대어서 말이에요. “너의 승리는 나의 승리다” 시청 앞에 모인 1인 시위자들이 다른 현장의 투쟁 승리 소식에 기뻐하며 나누던 말이었는데 그 말을 한참 품고 지냈어요. 어느 날 만덕5지구 재개발 투쟁하시던 MS 팀장님이 울산과학대 밥차 지원 농성장에 간다고 하셔서 제가 “고생 많으시네요” 했는데, “고생이 아니라 기쁨😉”이라고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자꾸 확대해 가야지!” 라면서. 고생이 아닌 기쁨! 지난한 투쟁의 하루를, 모진 낮과 밤을 그렇게 부를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5. “파친님의 태도가 또 다른 배움으로 다가와요. 현장에서의 연구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앞서 저를 부산대 여성연구소의 강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부산대 여성연구소🌹는 1988년 한국사회의 젠더 문제를 분석하고 학내외 페미니즘의 발신지로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구소예요. 페미니즘과 젠더적 관점에서 다양한 학제간 융합 교육, 그러니까 다양한 학과의 선생님들과 협업 수업도 진행하는데, 그렇게 인연이 되어 여성연구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현대사회와 젠더> 그리고 <평화학 산책>이라는 수업을 맡고 있어요.

<평화학 산책>은 이번에 새로 개설된 수업인데, 제가 기획했어요. 기후위기·불평등·전쟁과 다양한 생태적 위기들을 평화의 관점에서 나-사회-세계의 문제로 읽어보는☮️ 삶과 말과 몸의 수업을 진행해보고 싶어서요. 연구를 바탕으로 강의를 꾸려갈 때, 곁에 동료들이 있어야 훨씬 더 좋은 수업과 연구가 가능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연구가 혼자 하는 것 같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에 기대어 또 다른 이야기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양한 연구자들이 두텁게 함께 할 수 있을 때 학술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도 곁에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만들고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요. 차별로 인해 오래도록 지워진 얼굴들을 다시 그리는 자리👫, 강의실과 천막은 제게 그런 공간이에요. 이게 저희가 천막을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6. “우리 함께 지켜내요! 마지막으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요?”
먼저, 천막에 찾아와 응원을, ‘507 학내 행진’에 걸음을 보태주신 파랑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농성을 시작한 뒤, 정말 많은 분들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어요. 손 내밀어 준 분들 덕분에 2월엔 투쟁문화제도 할 수 있었고, 4월엔 케세라(부산대 성소수자 동아리) 동지들의 제안으로 농성장을 알록달록 꾸밀 수도 있었어요. 얼마 전 5월 7일엔 뉴욕 럿거스 대학의 투쟁 행진 사례를 따라서, 저희도 학내 행진🌈을 진행했어요. 학생, 교수, 교직원 등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시민과 노동자까지, 전국에서 200명 정도가 오셨어요. 평일 낮이라 시간 내기 어려웠을 텐데, 가까이서 멀리서 오신 분들과 대학 차별 철폐를 외치며 걸을 수 있어 참으로 벅차고 기뻤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파랑의 친구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연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연결될 수 있도록 애써주시는 파랑에 바라는 점은, 아프지 말고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에요. 고맙습니다!🥰

파랑을 ‘멀찍이’ 응원한다고 하셨지만, 파친님은 언제나 파랑의 모금 소식에 가장 이른 메아리로 다가올 만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학내를 행진하며 중간중간 멈추어 발언을 들었습니다. 도서관 앞에서 발언을 듣다가 활짝 핀 작약을 보았습니다. 그 아래 손피켓을 두고 보니, 꽃이 파친님 같았습니다. 한겨울부터 펼친 농성장에 이제야 찾아온 미안함과 응원을 담아 함께 외칩니다!

언젠가 한 학생이 보낸 쪽지에는 자신이 돌아올 때 있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었다. 나조차 나 자신의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막에 앉아 그 쪽지를 생각하자니, 불안정한 강사의 삶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편지를 품고 대학을 떠난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잃어야 하는가.

향원익청(香遠益淸), 멀어질수록 맑아지는 향.

천막의 하루는 끝없는 기다림과 모욕의 시간이지만 놀랍게도 따사로운 연대의 시간이기도 하다. 서로를 지키려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 천막의 하루는, 멀어질수록 맑아지는 향처럼 모두가 기억하지 않는 어느 날에도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도록 할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천막의 숫자를 바꿔 단다. 이것이 내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답변이자 약속이기 때문이다.

– 이수경, 「강사 착취하는 대학엔 미래가 없다」, 『한겨레』, 2025.04.06.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2734.html

1지금 파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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