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말벌의 꿈🐝 – 지우 파친님
올해부터 제헌절은 18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계엄 이후 ‘헌법’과 ‘민주주의’라는 말이 한층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요즘,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장을 누빈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말벌 동지’라 불린 존재들, 그중 한 분💕이 부산으로 날아왔습니다. 이달의 파친님으로 지우 동지를 모십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모 지부에서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우라고 합니다. 반상근 간부라 업무도 병행해야 해서 좀 고될 때도 있는데요. 사내 노동환경 개선에 일조하고 있다는 데 보람도 느끼고, 노동조합의 일원으로 여러 현장에 연대하면서 오히려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동물권에 목소리를 내었고, 중동 고대사를 공부하다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게 되었고, 대학 시절 열심히 다녔던 농활🌾이 너무 좋은 추억으로 남아 농민분들이 잘 사셨으면 하는- 제 삶의 경험이 다양한 관심으로 이어져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 오지랖쟁이입니다~
정귀순 이사장님이 진행한 수지에니어그램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파랑을 알게 되었어요. 지난 광장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찾아갔는데, ‘말벌 동지’라면서 따뜻하게 환대해🤗 주셨어요. 그날 이후 파랑 SNS를 팔로우하며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 쭉 찾아봤어요. 그즈음에 5월 27일이 되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기념하는 특별한 날이거든요. 마침 파랑에서 ‘100개의 연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길래 바로 친구가💙 되었지요. 그리고 제가 15년째 함께하고 있는 반려견 이름이 ‘파랑’이랍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유독 친근했고 인연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3. “말로만 듣던 말벌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질문이 좀 우스운데- 어떻게 ‘말벌’이 되셨을까요?”
사실 ‘말벌 동지’라고 불러주시는 게 조금 민망하기도😂 해요. 저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야근도 왕왕 있어서, 물리적 연대가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할까요. 말벌이라는 수식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계엄 당일엔 부모님 댁에 있었어요. 트위터 보다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빠 계엄령이래!!!” 했더니 아빠가 21세기에 무슨 소리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집에서 밤새 뉴스 틀어놓고 계엄 해제되는 것까지 봤는데도 잠이 안 오는 거예요. 회사가 여의도라 다행히(?) 다음 날 임시휴일로 지정되어 집에서 계속 모니터링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주말부터 친구들과 함께 여의도 집회🌟에 나갔어요. 낮에는 집회 가서 열심히 소리 지르고, 밤에는 뒤풀이하면서 그날 인상 깊었던 발언들, 만났던 사람들을 곱씹으며 몇 개월을 보냈네요.
남태령 대첩(2차) 때는 퇴근하고 달려갔어요. 1차 때는 라이브 중계로 봤는데, 농민들을 끌어내리고 트랙터를 부수는 공권력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났고, 남태령을 가득 채우고 밤새 발언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연대에 울컥해서 눈물이 났고, 동이 트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결국은 모두가 한남동까지 행진하는 모습에, ‘다만세’를 따라 부르면서 울었어요.(제 MBTI가 FFFF거든요!)
박근혜 탄핵 집회에도 나갔었지만, 이번 광장은 조금 달랐어요. 단순히 나쁜 대통령을 규탄하는 자리를 넘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공간이었어요. “나를 혐오하지 말아 달라🌈”, “나도 존엄한 존재다🙏” 그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실을 알게 되니 모르는 척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탄핵 이후에도 광장에서 만난 의제들에 계속 관심 갖고 응원하는데, 내란 책임자를 끌어내리고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네요.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시 지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려고요. 광장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의 약속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 약속을 끝까지 함께 지키는😀 시민이고 싶어요.

#4. “평범한 직장인이라기엔 노조 간부로도 활동하시잖아요. ‘말벌’ 이전과 이후, 일상에 변화가 있을까요?”
대학에선 역사를 전공했는데, 어쩌다 보니 IT 업무를 하고 있어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트는 바람에 긴 취준생 기간을 보냈어요. 알바하면서 자소서 쓰고 면접 보는 생활을 오래 했는데, 학과 선배가 본인 회사에 자리가 났다며 기본적인 IT 지식만 있으면 되는데 한번 와보겠냐고 하더라고요. 좀 겁나긴 했는데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어요. 경험이 스승이라고, 들어가서 부딪히며 익히다 보니 어느새 13년째 하고 있네요.
원했던 직종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초반엔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경력도 꽤 되었고 코드도 익숙하게 다루지만,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생업이 되면 즐기기보다 견디게 되는 순간이 자주 오잖아요? 일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일에서 오는 압박을 이겨내려고 해 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춤💃도 배우고 있고요. 국내든 해외든 배낭여행🧳으로 그 지역 문화 속에 흠뻑 빠져 있다 오기도 하고, 유기동물 봉사활동 다니면서 털복실이 친구들🐶을 한가득 끌어안고 귀여운 응원을 받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공연도 자주 보러 다녀요.
이번 회사에 입사한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는데, 입사 후 노조에 가입해서 조합원으로 있다가 2024년 12월에 선거를 치르고 집행부에 합류했어요. 난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노동조합 가입해야지, 수습 기간에 바로 가입해😆 버렸어요. 일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이겨내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노조의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 힘이 되겠다,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집행부는 정말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집행부가 새로 꾸려지면서 현 위원장님이 권하셔서 러닝메이트로 선거를 치르게 되었어요. 간부직을 맡는 것은 정말 고민스러웠는데, 12.3 계엄이 터진 직후 광장에서 계속 초대장이 날아오던 딱 그 시기였거든요. 내재된 투쟁력이 봉인해제 된 건지 못할 거 뭐 있나, 기왕 하는 거 잘 해보자!🙂 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조합원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고자 이런저런 행사도 기획하고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와 어른들이 계셔서 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5. “업무와 노조 활동을 병행하면서 여러 현장에 연대도 가시지요? 그 동력과 마음을 듣고 싶어요.”
요새는 여기저기 연대 활동 다니면서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세상에서 같은 곳을 보는 동지들과 있으면 정말 든든하거든요. 어느 날은 공공운수노조 결의대회가 있어서 집회 마치고 이주노조 후원주점으로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있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들이 걸어오는 거예요. ‘어? 뭐야?’ ‘어, 혹시?’ 목적지가 같다는 걸 알고 서로 반가워서 빵 터졌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몇 분을 더 만났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서 열린 행사에 갔는데 전날 만났던 동지들을 거기서 다시 만났어요. 그 순간 ‘아, 든든하다!’ 느꼈어요. 흔히들 인류애가 바스러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하려고,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더라고요.
엄마는 저보고 “그러고 돌아다니면 밥이 나오냐 술이 나오냐” 하시는데 투쟁현장에 가면 밥차에서 그렇게 맛난 음식을 푸짐하게 주시더라구요! “밥🍚도 나오고 후원주점 가면 술🍺도 나온다!”고 큰소리치면서, 저분은 왜 고공농성을 하고 저 조직은 왜 파업하는지 부모님께 쉽게 설명해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난 광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는 윤석열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것이다’ 였어요. 그런데 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고, 새 정부도 들어섰는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제가 너무 많아요. 복직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싸우고 있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장애인 이동권도 갈 길이 멀고,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분들은 아직도 진상규명을 외치고 계세요. 분명 광장에서 함께 외치고, 함께 들었던 이야기들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히고 희미해지는 것 같아 🥺속상해요.

대부분의 현장에서 저는 당사자가 아니라 연대자이다 보니,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도 될까?’ ‘혹시 괜히 앞에 나서는 건 아닐까?’ 고민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저는 가능하면 당사자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여기저기 알리려고🔊 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역할도 필요할 거 같아서요. 그분들의 존재가 더 잘 보이고 더 크게 들릴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명 보지 않는 제 SNS일지라도 꾸준히 글을 올려서💌, 그렇게라도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요. 집회가 끝나면 저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당사자분들은 그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 차이는 절대 메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고 하고, 더 꾸준히 함께하려고 해요.

#6. “파친님의 마음이 저희에게 엄청 든든해요. 마지막으로, 파친님 스스로에게 바라는 꿈과 더불어 파랑에도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해요!”
파랑 워크숍에서 함께 한 동지들이 제게 ‘어떤 것에도 굴복되지 않은 조용한 힘이 있다’는 카드를 붙여주었어요. 그 글귀처럼 조용히 제 중심을 지키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마음을 나누며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 생활도 안정되어야 하니 업무에도 충실하면서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여행 후 설렘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해남에 내려가서 친한 친구들과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게 꿈이에요. 소소하게 농사짓고, 넓은 마당에서 유기동물들 임시보호도 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천천히 나이 들고 싶어요. 이런 꿈을 함께 꾸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고, 앞날이 기대돼요!
이번 파랑에서의 ‘연결축하파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여럿이 함께, 더 힘차게,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인권운동을 위해 활동합니다”였어요. 시민사회활동을 업으로 삼는 지인들 중 일하느라 본인이 갈리는지도 모르는 분들을 여럿 봤거든요. 파랑을 통해 활동가들이 계속 현장에서 살아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사람들도 살뜰히 챙기는 파랑과 저도 ‘함께, 힘차게, 오래’ 친구💙 할게요!
파친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치를 지키는 일이 꼭 비장하지만은 않아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파랑의 친구를 결심한 날이 특별한 까닭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단단한 유쾌함이었습니다.
“조금 머쓱하긴 한데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생일이에요!😆”
좋아서 함께하고, 기꺼이 달려가고, 오래 곁을 지키는 것. 가뿐한 날갯짓으로 끝내 꽃을 피우는 것. 좋아서 하는 사람은 못 당한다고 하지요. 우리는 기어이 민주주의를 피우겠구나!🌼 든든한 파친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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