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파친코 21화 / 정혜금

지금 파랑은

[파친코] 꽃 피우는 가지처럼 – 정혜금 파친님🌼

줄기찬 비에 떼창하듯 봄나무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흑백 사진에서 컬러 사진으로 전환할 때의 아득한 신선함이 여기저기 감돕니다. 전환은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까지의 과정은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저기에 매화나무가 있었구나, 이 나무가 산수유였구나! 감탄은 꽃 밑에서 와글거리고, 겨울을 견딘 치열함을 기억하듯 가지는 흑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침내 피어날 꽃을 위해 살아 견디는 나뭇가지 같은 사람, 2월의 파친님은 정혜금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사무국장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노동조합에서 일해요.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양지부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어요. 노동조합 일이라는 게 매년 반복적인 일이예요. 정권과 자본이라는 상대도 있고, 조직 내부의 구성원도 달라지고 하니 예전보다 일이 더 복잡하고 많아요. 해결하지 못하는 일도 산더미처럼 있고요. 부산양산지역에서 함께하는 구성원 수가 적다 보니 지부 활동가가 적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래서 자칭 ‘잡부’라고 소개하기도 해요.😅 어느덧 나이가 50을 훌쩍 넘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있고요. 경남 덕계에서 출퇴근해요. 아직 ‘in부산’을 못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이라는 우물에만 파묻혀 허우적거리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2018년 4월에 정귀순 대표님과 <(산별노조) 리더양성 프로젝트> 사업을 같이 했어요. 당시 노동조합 사업에 대한 고민이 있어 대표님께 징징거렸던 게 계기가 되어, 리더를 양성하는 수업을 받게 되었어요. 결국 모든 사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조직 리더의 생각은 그 조직의 철학을 대표하고 조직 전체의 방향을 규정하니까요. 무엇보다 노동조합에 사람을 남기고 싶었어요.🙏
근데 이 수업이 대박이었어요. 저에겐 87년 노동조합이란 걸 처음 알았을 때와 비슷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87년 당시에 전봇대에 붙어있는 종이 전단 ‘무료노동법교실’ 이런 거 보고 공부하러 다녔어요. 노동조합 간부를 하기는 하는데 아는 게 없는 일자무식이었어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간부를 맡게 되니까 그런 게 고민이 됐는데🤔 전단 보고 반갑게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그 후 노조 안팎으로 책 한 권씩 읽고 발제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활발해졌어요. 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그동안 가난한 부모 만난 내 운을 탓하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니까, 눈앞에 뿌옜던 시야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했던 공부가 지금까지의 제 버팀목인 거 같아요.


세월이 흐르고, 저도 같은 일을 하면서 무뎌지고, 고인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정귀순 대표님과 <리더양성 프로젝트> 사업을 하게 된 거예요. 사업 주최 책임자로서 사람들을 챙기는 게 제 일이었는데 챙기는 건 뒷전, 제가 그 수업에 블랙홀처럼 빠져들어 참여했어요. 노조 운영과 사람 관계 어쩌고 하는 취지는 핑계고 사실은 나 자신의 문제를 풀어야 했던 거죠. “조직은 조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당시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충격을 받았어요. 조직을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듯이 일해왔는데, 되돌아보니 그 조직을 만들 때 이루고자 했던 꿈은 온데간데없고 저는 조직 보위만을 위해 살아왔던 거예요.
그렇게 정귀순 대표님과의 인연으로 파랑을 알게 되었어요. 파랑 출범 얘기를 들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동의했어요.💙

#3. “노동조합 일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제가 태평양화학이라는 화장품 회사에 다녔어요. 다닌 회사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다 픽😆하면서 웃어요. 화장품 회사 다니면 다들 외모가 출중(?)할 거라 생각하나 봐요. 입사하자마자 대항쟁이 있었으니 역동의 한가운데 있었네요.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거리의 최루탄과 함께 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어요. 당시 다니던 곳의 생산공장이 수원에 있었고, 거기 노조가 있긴 했어요. 근데 수십 년 같은 사람이 노조위원장인데다, 당시 그랜저를 타고 다녔으니 말 다 했죠. 노조민주화대책위가 꾸려지고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전국에서 달려온 대책위 사람들이 회의를 했어요. 결국 민주후보가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저는 부산지부 쟁의부장📢을 맡아서 활동했어요.
1991년 대우조선 노조가 회사의 단체교섭 거부에 반발해 결사투쟁을 했어요. 대우조선 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기 위해 의정부 다락원 캠프에서 수련회가 있었어요. 경찰은 이 수련회를 급습해서 간부 전원을 연행했고, 이때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박창수 위원장님이 제3자개입 등으로 구속, 결국 의문사까지 당했어요. 이때 태평양화학 노동조합도 연대파업을 전개했어요. 이 사건으로 저도 업무방해 및 제3자개입으로 해고되어 지금의 금속노조까지 흘러들어왔네요.


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의 영향으로 노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면, 내가 살아있는 한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2003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 투쟁을 하면서예요. 지금 제가 김주익 지회장님이 돌아가신 당시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산 자로서 남은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다짐을 되새기곤 해요.😌

#4. “요즘 노조활동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어떠세요?”
바빠요. 우선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둔 평가, 토론, 현장 간담회 때문에 바쁘고요.⏳
노조 사업과 투쟁은 어느 정권이냐가 기본적인 일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해요. 현 정권은 근로시간면제 및 노조활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정권이라 현장 단위가 엄청 힘들어요. 현장에 신규인력이 충원되지 않은 지 소속 사업장마다 짧게는 8년 길게는 20년이 넘어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어나 조합원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요.
노조 내부의 혁신(?)도 고민이에요. 노조 역사가 오래 되니 고인물이 된 부분이 많아요. 잘하던 것은 계승하고 과감하게 바꿀 것은 바꿔야 하는데 변화가 쉽지는 않아요.
조직 내부 구성원들의 밀도를 높이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상대적으로 젊은 구성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연차가 높은 선배들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가 변하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노조가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를 내걸고 교섭하고 투쟁해 사회적 대의, 명분을 만드는 주체가 되면 좋겠어요. 조직 내부에서도 공감을 끌어내 전 조직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쟁점 사업과 투쟁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한 번 해보자! 하니까 되네! 이런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좋겠습니다.

#5.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종이회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응원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함께 하겠습니다. 때로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얘기할 때 억울할 때가 있어요. 노동조합에 대해 ‘자기 주머니 챙기기 바쁜 사람들, 다른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이 있어요. 틀린 말이 아닌 측면도 있죠. 노동조합 내부에서부터 이러한 인식을 재고할 수 있도록, 제가 있는 자리에서도 활동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모든 걸 잘 해낼 수 없지만 자기 정체성에 맞게 활동하는 단체들, 그들을 잘 연결하는 것이 파랑이 있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자랑(!)처럼 붙이자면 저는 정혜금 파친님으로부터 읽씹^^은 물론, 거절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느닷없는 부탁에도 “넵!ㅋ” 한 마디 답장으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50일 넘게 집에 못 들어가고 동지들과 천막농성장에서 자는 와중에도 “넵!”💌 심지어 정제된 말로 상황을 일축해 상대의 걱정을 웃음으로 날려버립니다.
요란하지 않은 치열함. 단단히 뿌리내린 나뭇가지는 그렇게 꽃을 피워냅니다. 노동자가 복직하는 곁에, 교섭이 타결되는 현장에 늘 있어 온 2월의 파친님처럼.🌸

3지금 파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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