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노래로 열어가는 세상
‘청정밴드’ 손현준 인터뷰
(기록: ‘희망베프’ 홍연재 )
<청정밴드>는 ‘청년 정신장애인 밴드’의 줄임말이다. 부산 <송국클럽하우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기분장애·조울증을 가진 보컬과 조현병 당사자인 리더 손현준 씨로 구성되어 있다. 2022년 결성 이후 꾸준히 활동해 왔지만, 손현준 씨의 말처럼 “오래 활동했는데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장애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이 밴드를, <희망베프>가 직업 선택권이라는 주제로 활동하면서 직접 만났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직업을 갖고 활동을 이어가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시는 모든 청년들과 모든 세대를 아울러서 부르고 싶었습니다.”
홍연재: <청정밴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손현준: 소속 단체에서 카페에 갔다가 통기타를 조금 쳤는데, 그걸 보던 직원 분이 “너무 잘 치신다, 밴드를 해도 되겠다”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가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밴드를?’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방아쇠가 된 거죠.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청정밴드>의 출발점이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였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우리가 무심코 건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에서 다시 느꼈다. ‘할 수 있겠다’는 말 하나가 없었다면, 지금의 <청정밴드>도 없었을 것이다.
홍연재: 활동을 하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셨나요?
손현준: 인식 개선이 제일 큰 문제예요. 정신장애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먼저 선입견을 갖잖아요. 위험하다거나, 함께하기 어렵다거나.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노래라는 것 자체가 모든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이잖아요.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음악은 그냥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잖아요.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청년들과 모든 세대를 아울러서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음악, 그게 우리의 목표예요.
장벽을 허무는 방식이 꼭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은 아니다. 노래라는 언어로 모두에게 다가가겠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주장이 아니라 노래로, 설득이 아니라 음악으로 세상에 말을 건네겠다는 방식이 <청정밴드>만의 것이었다. 정보가 아니라 감동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 그것이 음악의 힘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홍연재: 지금까지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나요?
손현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자존감 향상을 목표로 수영 소동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051 영화제에도 함께 참여해서 ‘나에게로 떠난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음악 영화를 찍었습니다. 음악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스스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경험 자체가 달랐거든요. 그게 우리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버스킹도 준비했었는데 당일에 하필 비가 왔어요. 낙담할 수도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카페에서 하자고 해서, 인디 밴드 <기린> 팀이랑 저희 팀이랑 같이 카페에 가서 연주를 하고 회원들이랑 함께 노래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각보다 더 친밀한 분위기가 됐어요. 오히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하니까 더 아늑하고 좋았다는 말도 들었고요.
최근에는 공공기관인 도서관에서 피아니스트 선생님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에 공공기관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긴장을 많이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관객들 반응이 너무 좋아서 뿌듯했습니다.
비가 와서 버스킹을 못 하게 됐을 때 포기하지 않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공연을 이어간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계획이 틀어져도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청정밴드>가 4년 넘게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태도의 단면 같았다. 비 오는 날 카페에서 즉흥으로 열린 공연이 어쩌면 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불쌍하게 보지 마라, 우리도 베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을 볼 때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보잖아요. 그 시선을 뒤집고 싶었어요.”
홍연재: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손현준: 수상 경험이 있는데, 100만 원 상당의 상금을 전액 기부했어요. “우리는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불쌍하게 보지 마라, 우리도 베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정신장애인을 볼 때 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보잖아요. 그 시선을 뒤집고 싶었어요. 그게 아주 기억에 남고, 자랑스럽게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컬 김희철 씨가 부산도서관 모들락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었어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열창하는 걸 보면서, 내가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끌고 왔던 게 보람이 됐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에 이 친구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무대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걸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안 좋음이 좋음으로 변화되는 순간이었어요.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말이 마음을 울렸다. 편견의 시선을 행동으로 뒤집는 순간들이 <청정밴드>의 역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상금 전액을 기부한 것도, 독창회 무대에 선 것도, 모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는 순간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그 무대 위의 순간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어요. “이대로 계속할 힘이 없다,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1년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2026년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버텼던 결과가 오늘까지 이어졌으니, 참았던 그 시간이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홍연재: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손현준: 스케줄을 맞추는 게 가장 힘들어요. 저는 지금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어서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멤버들마다 컨디션이 다르고, 증상이 심한 날에는 연습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밴드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맞춰야 하는 거라 더 어렵기도 해요.
사실 포기할 뻔한 순간도 있었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대로 계속할 힘이 없다,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쌓인 피로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사람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생각만이 정답은 아닐 거다 싶었고, ‘1년만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2026년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버텼던 결과가 오늘까지 이어졌으니, 참았던 그 시간이 값진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1년만 더, 그 마음이 모이면 5년이 된다. 포기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활동이라는 걸 <청정밴드>에서 배웠다. 상담 선생님께 솔직하게 털어놓고,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시작한 것.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서 가능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꺼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 안에 있었다는 증거였다.
홍연재: 정신장애인이 직업을 갖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손현준: 감기는 약 먹으면 금방 낫지만, 정신질환은 약을 10년, 20년 오랫동안 먹어야 해요. 그 사이에도 증상이 남아 있고, 증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죠. 그런데 사실 정신장애, 특히 조현병 같은 경우는 공격성을 띠는 질환이 아니에요.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갇히는 병이거든요. 혼자 중얼거린다거나 망상에 빠진다거나, 그런 식으로 자기 안에 갇히는 건데, 그걸 보는 사람들은 “저 사람 이상하다, 저 사람이랑 같이 하면 안 된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거예요. 좀 극단적인 예를 들면, 학부모들이 같은 학교에 배치되는 걸 원하지 않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까지도 있고요. 아이들한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직업 측면에서는 오래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초단기 근로 형태가 필요한데, 사업주 입장에서는 새 사람을 계속 가르쳐야 하니까 기피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저는 하루 4시간만 일하고 있고, 많이 받아봤자 한 달에 70~80만 원이 최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장애인들이 200만 원 넘게 받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죠. 원하는 일을 선택하기도 어렵고, 그 일을 해도 충분한 수입이 나오지 않는 이중의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많이 받아봤자 70~80만 원이 최선”이라는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원하는 일을 선택하기도 어렵고, 충분한 소득을 얻기도 어려운 이중의 장벽이 정신장애인의 일상에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공격성을 띠는 질환이 아니라는 말도 오래 남았다. 이미지와 현실이 이렇게 다른데, 그 간극을 좁히는 것도 결국 인식 개선이다. <청정밴드>가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편견이 아니라 감동으로.
“부산에는 클럽하우스가 두 곳밖에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많아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뭔가를 하면 여기서는 처음 보는 시도가 되잖아요. 그 점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돼요.”
홍연재: 클럽하우스가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손현준: 클럽하우스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재활시설이에요. 교육, 건강, 체육, 취업, 독립생활까지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단순히 쉬거나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에요.
부산에는 클럽하우스가 두 곳밖에 없는데, 서울로 가면 훨씬 많은 곳에 클럽하우스가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 송국클럽하우스는 제가 알기로는 전국에서 1등을 한 클럽하우스예요. 대상도 받은 곳이거든요. 재활시설 중에 밴드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은데, 그게 우리만의 강점이기도 합니다. 음악이 재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걸 우리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전국 1등 클럽하우스에서 밴드가 나왔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자원이 부족해도, 숫자가 적어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가장 특별한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걸 청정밴드가 보여주고 있었다. 재활이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릴 수 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함께 연습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재활이었다.
홍연재: 비수도권 부산에서 활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손현준: 서울이나 경기도는 이미 포화 상태예요. 비슷한 걸 하는 단체가 많으니까 경쟁도 치열하고, 주목받기도 어렵죠. 반면 부산 같은 비수도권에서는 서울에서 이미 퍼진 아이디어를 가져와도 새로운 시도가 돼요. 그게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죠.
부산에는 클럽하우스가 두 곳밖에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많아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뭔가를 하면 여기서는 처음 보는 시도가 되잖아요. 그 점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돼요.
자원이 부족한 곳에서 오히려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이 인상 깊었다. “오래 활동했는데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한계가 아니라 여전히 넓은 무대가 남아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미 모두가 아는 곳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없는 곳에 먼저 서 있다는 것, 그게 청정밴드가 부산에 있는 이유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지금처럼 꾸준히 해나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 그 모든 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증거예요. 그 증거를 계속 쌓아나가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힘이거든요.”
홍연재: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손현준: 사람이 일을 해야 보람도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도 높아진다고 알고 있거든요. 아무리 힘들어도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인내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진척해 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송국클럽하우스>는 지금처럼 꾸준히 해나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 영화도 찍고, 공연도 하고, 버스킹도 하고, 기부도 했잖아요. 그 모든 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증거예요. 그 증거를 계속 쌓아나가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힘이거든요.
“일을 해야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말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직업을 갖기 어려운 현실을 몸으로 알면서도, 그래서 더 그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였다. 희망베프가 직업 선택권을 주제로 활동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 말 안에 있었다. 할 수 있다는 증거를 계속 쌓아나간다는 것, 그것이 청정밴드가 세상에 건네는 가장 긴 노래였다.
<청정밴드>는 공공기관 공연, 버스킹, 음악 영화 제작, 인디 밴드 기린과의 콜라보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려왔다. 이번 인터뷰에서 손현준 씨는 “같은 문제를 가지고 함께 공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희망베프>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의 자리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연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인터뷰가 남긴 가장 큰 힘이었다. 청정밴드의 노래가 계속되는 한, 그 노래를 듣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바뀔 것이다.
장애인 직업 선택권에 관심을 가지고 <희망베프>를 이끌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와 현장 전문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장애인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6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모여랑> 사업에 참여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알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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