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바다 건너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봄 김지운 인터뷰 (기록: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정은주)
일본의 조선학교는 해방 직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이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국어강습소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이어진 학교는 80년 가까이 재일동포의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이어가는 공간이 되어왔다. 그러나 일본의 정식 학교와 다른 ‘각종학교’로 분류되면서 고교무상화와 교육지원 정책에서 배제되는 등 오랜 차별을 겪어왔다.
부산에는 이 학교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이 있다. 2018년 만들어진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은 조선학교가 겪는 차별을 알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지지하며, 학교에 필요한 교육 기자재와 급식비 등을 지원한다. 일본영사관 앞에서 조선학교 차별에 반대하는 목요행동을 이어가고,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단체를 만나며 교류와 연대의 폭도 넓혀왔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의 운영위원장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지운은 단체가 만들어지기 전인 2009년부터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해왔다. 부산에서 방송 외주 제작 일을 하던 그는 재일동포 교류 사업의 기록을 맡으며 처음 조선학교를 찾았다. 이후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았고, 다큐멘터리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와 〈차별〉 등을 만들었다. 기록을 이어가던 중 조선학교와 일상적으로 연대할 필요를 느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의 설립을 제안했고, 지금은 카메라 안팎에서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낯섦과 기대를 안고 처음 찾았던 조선학교를 그는 왜 계속 찾아가게 되었을까. 기록하던 사람은 어떻게 직접 관계를 만들고 연대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김지운 운영위원장이 처음 조선학교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보고 듣고 생각해온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정은주: 조선학교와 처음 연결된 건 2009년 동포넷의 재일동포 교류 사업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어떤 계기로 함께하게 됐나요?
김지운: 당시 부산에는 해외동포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동포넷)라는 단체가 있었어요. 학교 선배인 최우창 사진작가가 먼저 동포넷에서 활동하고 계셨어요. 단체에서도 활동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어 했는데, 저에게 함께 기록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죠.
그때는 제가 방송 외주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어서 너무 바빴어요. 그래서 2년 정도 미뤘었죠. 그러다 2009년이 되어서야 교류 사업에 함께했고, 그때 오사카를 처음 방문하게 됐어요.
정은주: 처음 학교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났을 때는 어땠나요?
김지운: 조선학교에 대한 사전 지식은 어느 정도 있었어요. 관련 다큐멘터리도 있었고요. 당시에는 조선학교를 북한과 연결된 학교로 바라보는 정치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죠. 약간의 두려움과 한편으로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죠.
학교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체조 같은 걸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조선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후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조선학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상 작업을 하고 있었던 만큼, 2010년부터는 ‘동포넷’의 활동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조선학교도 매년 찾게 됐습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 〈차별〉까지 작업하게 됐고요.
정은주: 첫 만남 이후에도 조선학교를 꾸준히 찾고 기록하셨죠. 그 기록이 다큐멘터리 〈차별〉과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의 활동으로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김지운:〈차별〉은 조선학교가 일본의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제외되고, 그 문제로 소송을 하게 된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에요. 저는 2017년부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이미 ‘동포넷’이 있었어요. 조선학교뿐 아니라 중국 연길의 재중동포 사업,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연대 사업 등 여러 동포 사업을 함께 하는 단체였죠. 여러 사업을 함께하다 보니 조선학교 문제에만 집중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일본을 방문하는 정기적인 사업도 사실상 1년에 한 번 정도의 방문단이 중심이었어요. 그쪽 분들이 한국에 오면 만나기도 했지만, 재일동포나 조선학교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에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업 중심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던 거죠. 제가 계속 조선학교를 찾으며 〈차별〉을 촬영하다 보니 ‘이 문제는 사업으로만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다. 일상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2018년 12월, 조선학교 문제에 집중하는 단체를 따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저와 마음이 맞는 분들을 모시고 조직 체계를 만들었고, 그렇게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이 시작됐습니다.
정은주: 감독님도 처음 조선학교를 찾기 전에는 선입견이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에는 조선학교와 그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떤 인식이 남아 있다고 보시나요?
김지운: 지금도 조선학교라고 하면 위험해 보인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요.
‘봄’에서 알리고 싶은 건 결국 하나예요. 그냥 똑같은 학생들이라는 것. 다만 한국과 역사적인 연결고리를 가진 학생들인 거죠. 조선학교는 194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졌지만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훨씬 이후의 일이에요. 오랫동안 우리는 몰랐고, 한국 정부 역시 알고도 외면해온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책임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학생들은 학생들이다’라는 겁니다.
정은주: 조선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와 역사, 정체성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흔히 이를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과 그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김지운: 학생들이 느끼는 정체성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재일동포, 혹은 자신들이 말하는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에 더 가깝죠. 한국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가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태어난 2세, 3세를 넘어 5세까지 살아가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단순히 한국인이라고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일본 땅에서 태어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이름으로 표현한다면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재외동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중국이나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는 것과도 연결돼 있고요. 그분들이 말하는 ‘우리 말’ 역시 한국에서 우리가 쓰는 말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요. 자이니치로서 쓰는 자신들의 말인 거죠.
자신이 주류와 조금 다른 위치에 있으면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고민하다 보면 ‘내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커지겠죠. 반대로 집에서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일본 학교를 다녔다면 자기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는 거고, 그걸 가르치는 곳이 조선학교인 거죠. 그래서 그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조선학교에 자녀를 보내려고 하는 거고요.
정은주: 다큐멘터리 〈차별〉이 다룬 것도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배제 문제였는데요. 일본에서 제도가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조선학교에 대한 배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김지운: 표면적으로는 정치적인 이유죠.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할 당시 일본 정부가 내세운 이유 중에는 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학교에 고교무상화를 적용하는 일을 일본 국민들에게 설득하기 어렵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그런 문제가 없던 시기에도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은 있었습니다. 차별은 해방 이후부터 오랫동안 이어져 왔죠.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학교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우고 싶은 제국주의 가해의 역사를 계속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본 입장에서는 조선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정은주: 우리 국민들이 “왜 우리가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김지운: 활동하는 사람으로서는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야기를 우리의 역사로 생각하는 것처럼, 조선학교도 같은 역사적인 맥락 속에 있습니다. 왜 조선학교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은 계속 있어요. ‘이것도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야기다.’ 그 정도만 받아들여주셔도 좋겠습니다.
정은주: ‘우리의 이야기’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봄’은 이 문제를 부산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선학교와 재일동포의 역사를 부산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지운: 부산에서 활동하는 데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성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거쳐 배를 탔고, 돌아올 때도 부산항을 거쳤습니다. 강제동원된 사람도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형성과 변화 자체도 일제강점기와 분리해서 보기 어렵고, 이후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다시 많은 사람들이 부산으로 들어왔습니다.
재일동포의 고향을 살펴보면 부산·경상도와 연결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재일동포 문제를 부산에서 더 관심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이 문제만큼은 부산에서도 중심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주: 그런 문제의식을 ‘봄’에서는 실제로 어떤 활동으로 이어가고 있나요? 현재 가장 중요하게 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김지운: ‘봄’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회원들의 후원금을 모아 매년 학교를 지원하고 있어요. 현금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교육 기자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오면 그때그때 지원하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목돈을 마련해 지원하기도 하고요.
정은주: 학교를 지원하는 여러 활동 가운데, 2024년에는 ‘파랑’의 지원사업을 통해 ‘다정한 한 끼’ 모금도 진행하셨죠. 어떤 계기로 시작한 활동인가요?
김지운: 일본의 다른 학교에는 무상급식이 적용되지만 조선학교는 여전히 적용받지 못하고 있어요.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한 분이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음식을 만들어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을 해주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그분이 사비로 비용을 감당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 급식비를 우리가 지원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던 중 ‘파랑’의 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다정한 한 끼’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예상보다 호응도 좋았어요. 지금은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도 급식비 지원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파랑’을 통해 마련한 금액에 ‘봄’의 재정을 더해 급식비를 지원했고, 그 밖에도 교육 기자재 등을 함께 지원했습니다.
정은주: 후원금이나 물품을 보내는 것뿐 아니라 직접 학교를 찾고, 현지의 재일동포나 일본 시민단체와 관계를 이어가는 활동도 해오셨죠.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교류를 이어가고 있나요?
김지운: 예전에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교류했지만, 코로나 이후 여러 상황 때문에 방문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학교 방문은 가급적 조심스럽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방문의 여부와 별개로, 저희는 학교를 지원하고 학교가 겪는 문제에 연대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기 때문에 지원은 계속합니다.
일본을 방문할 때는 학교뿐 아니라 야마구치, 후쿠오카, 기타큐슈 지역의 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유적지를 탐방하고, 학교를 지키고 있는 재일동포나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도 교류합니다. 물품 지원도 계속하고 있어요. ‘밀양평화너머’ 회원들이 직접 만든 목도리를 학교에 전달하기도 하고, 풍물놀이 소조(小組)에서 장구나 북이 필요하다고 하면 악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무용 소조에서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지원하기도 하고요. 전국의 모든 학교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어서, ‘봄’이 주로 교류하는 몇몇 지역의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은주: ‘봄’도 여러 단체와 관계를 맺으며 활동해왔고, ‘파랑’ 역시 지역의 서로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생각했을 때, 지역의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은 앞으로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까요?
김지운: 역사가 오래된 단체들은 이미 각자의 연대체가 많이 있습니다. 시민운동,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 분야별로 연대가 만들어져 있죠. 반면 비교적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단체들은 기존의 연대체와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격이 전혀 다른 단체끼리 무조건 연대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파랑’처럼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플랫폼은 의미 있고 소중합니다. 다만 그다음에는 ‘만나서 무엇을 함께할 것인가’가 나와야겠죠. 그 안에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파랑’ 같은 단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니까요.
정은주: 앞으로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이 해나가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계속 기록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김지운: ‘봄’은 앞으로도 왜 이 문제를 부산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계속 알려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선학교, 재일동포들과 더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는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들과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꼭 ‘우리 민족의 문제’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지의 일본 시민단체들이 더 활성화돼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3자의 연대를 계속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회원이 더 많아진다면 학교 지원도 더 많이 하고 싶고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는 앞으로도 재일동포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만드는 작품에서도 재일동포 이야기가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할 것 같아요.
왜 바다를 건너 조선학교로 향하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떠오른 건 운동장에서 체조하던 학생들의 밝은 얼굴이었다.
카메라로 그들을 기록하던 사람은 어느새 학교의 일을 함께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고, 조선학교는 멀리 있는 이름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 뒤에 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정은주 활동가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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