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3. 안녕, 나의 장례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공영장례를 넘어서 사후(死後) 종합복지 보장으로

‘안녕, 나의 장례’ 임기헌 인터뷰 (기록: ‘영남지역성소수자지지모임’ 김지혁)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법적 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를 자격은 쉽게 박탈된다. 어떤 죽음에는 애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장례는 떠난 사람을 위한 의례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로 여는 사건이다. 누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는지를 정하는 일은, 결국 누구를 가족이라 부를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다.

부산에서 공영장례 조문단을 양성하고, 존엄한 죽음을 시민권의 목록에 넣기 위해 활동하는 〈안녕, 나의 장례〉의 모임장 임기헌 활동가를 만났다.

자신의 삶을 넘어선 다양한 사회 문제 앞에서 공동의 이익, 공동의 정의, 공동의 평등을 기본 가치로 놓고,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을 활동가라고 불러요.” 

김지혁: 반갑습니다. 우선 인권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임기헌: 먼저 활동가는 누구인가부터 물어야 할 것 같아요.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지정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신의 삶을 넘어선 다양한 사회 문제 앞에서 공동의 이익, 공동의 정의, 공동의 평등을 기본 가치로 놓고, 자기가 관심 있는 영역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을 활동가라고 불러요.

대학 때는 경실련 대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통일운동에 관심을 뒀고, 그 이후 저를 붙든 건 토지 문제였어요. 토지는 원래 공공재인데 단지 그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그 땅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토지가치를 다 가져가잖아요. 빈곤을 만드는 제일 큰 요인 중 하나죠. 직장을 그만두고 지역자활센터에서 4년을 일한 때를 저는 활동가로서의 시작이라고 봐요. 동시에 부산반빈곤센터 회원으로 활동했었고, 부산주민운동교육원에서주민조직가를 교육·훈련하는 활동을 요. ‘빈곤’과 ‘조직화’, 이 두 축이 계속 놓여 있었습니다.

김지혁: 빈곤에 대한 관심이 죽음으로 이어진 계기가 궁금합니다.

임기헌: 공통 키워드는 가난한 사람이에요. 죽음이 눈에 들어온 건 2017년이었어요. 한 달 뒤면 강제 출국을 당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한 분을 여러 단체가 모여 도왔는데, 일주일 만에 돌아가셔 버린 거예요. 심각한 지병으로 이미 고위험 상태였던거죠. 우리가 돌보다 돌아가셨으니 한국식으로 장례를 치렀어요. 근로자도 아니고 수급자도 아니고, 국민이 아니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분은 이 사회에서 투명인간이었던 거죠.

그 뒤로 쪽방에 거주하시는 주민들과 자조모임을 조직해서 같이 활동하고 봉사했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시니 또 다른 문제가 보였어요. 쪽방 주민들은 가족이 있어도 포기하거나 기피해서 사실상 무연고자로 돌아가시는데,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몰라요. 행정만 알고 있는 거죠. 살아서 존엄하지 못했는데 죽는 순간부터 그 이후 마지막 장례식 과정에서도 차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쪽방 주민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리면 빈소도 없는 장례에 그냥 영락공원까지 따라갔어요. 마을 공동체 장례를 한 거죠.

서울에는 이미 공영장례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우리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조례는 생각보다 빨리, 2021년 12월에 제정됐어요. 조례를 만들고 난 뒤에 제대로 되고 있나 확인해 봤는데 엉망진창인 거예요. 안 되겠다, 일단 우리가 조문을 다니자, 우리가 조문 다니려고 만든 거지 다른 게 아니지 않냐. 그렇게 2023년부터 조문 활동을 시작하고 조문단 양성 과정도 열었어요. 이제 장례식장들의 수준 많이 안정화되었어요. 물론 여전히 문제는 있지만요.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건 최소한의 수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거잖아요. 늘 조문단 교육할 때 말하는데 이건 시민권 운동으로서의 공영장례예요.

김지혁: 저는 죽음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두 번째 관계를 맺는 시작점이라고 느낀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장례도 원가족만의 것이어서는 안 되겠죠.

임기헌: 이미 돌아가신 분과 실질적인 관계는 없잖아요. 그런데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새로 만들어줘요. 그분이 마음속에만 남는 게 아니라, 그분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생기는 거죠.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것이 조문단 활동의 가장 큰 의미이고, 그게 사회적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됩니다.

사회권의 범위는 대통령이 바뀐다고 넓어지는 게 아니라, 각 영역의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때 시민권 운동으로서 확장되는 거죠.” 

김지혁: 조문단을 교육할 때 ‘자선이 아니라 권리’라는 말을 강조하신다고 들었어요.

임기헌: 그 부분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인데, 여전히 많이 부족해요. 무상급식을 떠올려 보세요. 시작할 때만 해도 ‘쟤네 아버지가 대기업 사장인데 왜 공짜로 주냐’는 말이 얼마나 많았어요.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해요. 논쟁하고 싸운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아서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된 거죠. 사회권의 범위는 대통령이 바뀐다고 넓어지는 게 아니라, 각 영역의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때 시민권 운동으로서 확장되는 거죠.

존엄한 죽음’은 시민권의 목록 밖에 있었어요. 우리 문화에서 죽음은 얘기하면 안 되는 것, 쉬쉬해야 하는 것이었죠. 죽음이란 나쁜 것, 차가운 것, 가까이 가면 옮을 것 같은 것으로 문화가 이어진 거예요. 다 죽는데 쉬쉬하고 있고, 뭔가는 처리해야 하니 그 공백에 들어온 게 장례업체와 상조회사죠. 죽음이 영리를 추구하는 상품이 된 거죠. 거기에 아들이 다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제 유교주의가 결합해서 죽음이 장례업체에 맡기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상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에서 죽음이 가장 큰 상실이죠. 상실하면 ‘비탄’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 비탄을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사람도 사회도 정상일 수 없어요. 그래서 ‘애도’의 과정이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단지 장례식 비용을 지원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사설 장례업체, 상조회사를 통해서 손님 치르고 음식 시키는 데 정신 쓰지 않고 애도에 집중할 여건을 국가가 만들어주는 거예요. 영락공원에 가보면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서 내려 카트에 올리고 ‘고인 모시겠습니다’ 하고 화장로 입구까지 가는데 30초~40초 밖에 걸리지 않아요. 게 정상입니까? 복지국가 스웨덴은 2012년 장사법을 개정해서 장례기간을 두 달에서 한 달 낮추었는데요.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규제의 면제조항을 적용하길 원할 정도로 애도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례복지제도죠. 애도할 권리와 애도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장례식, 어찌 이것이 권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김지혁: 이번 <안녕, 나의 장례>는 사후 자기결정권을 위한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 사업 연구라고 들었습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기헌: 현 장사법 상 무연고사망자의 공영장례 시 사회적 가족으로서 대리 상주가 될 수 있는 장례주관자로 신청할 수 있는 것은 고인이 사망하고, 부고가 올라와야 가능해요. 그것도 부고가 안 뜨면 모르고, 놓치면 그만이죠.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사업은 한계는 있어도 살아 있을 때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미리 정해두는 겁니다. 사후 자기결정권을 한 발짝 넓힌 거예요.

장사법에 있는 기존의 장례주관자 신청관련 규정은 문제가 있어요.  이 신청은 사람이 죽은 다음, 그리고 장례 전신청해야 한다는 거예요. 금요일 오후 5시 반에 부고를 확인했다고 쳐요. 담당 공무원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6시가 지났고, 전화는 안 받고, 주말이 꼈고, 장례식은 내일이에요.상황 이죠. 이런 상황인거죠. 마침 서류를 다 준비해 놨어도 마침 담당 공무원이 흔쾌히 해주는그런 상황은 잘 없어요. 그러니 사실상 죽어 있는 조항인거죠.

부산은 남구와 동구에서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 시범사업을 1년 하고 이듬해에 부산시에서 16개 구·군 전체로 확대했어요. 행정복지센터에서 신청하면 장례를 주관할 사람, 장례 일수, 산골이냐 봉안이냐, 종교, 부고를 알릴 사람까지 미리 정할 수 있고, 신청 사실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 메모란에 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조례가 아닌 업무지침 수준이고, 상위법은 그대로인거죠. 항상 불완전한 구조 속에 있지만 큰 것을 지금 못 건드리니, 작은 부분만큼은 안정화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김지혁: 올해 모여랑 사업으로 가장 파고든 지점은 뭔가요?

임기헌: 현금 지급을 현물 지급으로 바꾸는 것을 핵심으로 두었어요. 공영장례는 원래 구청과 장례업체 사이의 일이에요. 가족이 없으니 장례업체 직원이 대리 상주를 고, 구청이 업체에 공문을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한 뒤 비용을 정산하죠. 장제급여 80만 원에 공영장례 지원비 80만 원, 총160만 원입니다. 시민 입장에서 보면 돈이 아니라 장례라는 서비스 자체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사전에 지정된 제가 상주가 되겠다고 하면 행정 담당자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네가 알아서 장례 치르고 영수증 가져오면 80만 원 줄게.’ 이게 현금 지급이에요. 그러면 공영장례 제도의 취지가 무너지는 거죠. 개인이 무슨 돈으로 먼저 장례를 치릅니까. 장례업체가 저 개인을 보고 기존 공영장례 수준의 금액으로 장례를 해주겠어요? 사전에 지정했을 뿐 이것도 똑같은 공영장례예요. 대리 상주가 업체 직원에서 나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똑같이 현물로 지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세 달 동안 16개 구·군 공영장례 담당자를 전부 만나러 다녔어요. 아무도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실제로 시행해 본 적도 없, 명문화된 것도 없었어요. 그 결과를 정리해서 부산시에 질의했더니 국민신문고 답변으로 ‘현물 지급이 맞다, 향후 매뉴얼 개정 시 반영하겠다’는 답이 왔어요. 안 될 거라 생각하고 기자회견까지 준비했는데 너무 허무하게 된 거죠.

김지혁: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임기헌: 아니요. 답변을 받았을 뿐 아직 명문화가 안 됐어요. 지금 이 사업의 근거는 조례도 아니고 공문 한 장, 업무 지침 수준이에요. 상위법인 장사법은 ‘사전’ 지정이라는 내용이 전혀 없구요.  최소한 매뉴얼에 들어가야 하고, 사실은 조례까지 가야 해요. 조례에 들어가면 공무원은 무조건 해야 되거든요. 궁극적으로는 장사법이 바뀌어야 하고요. 기존 신청했던 사전장례주관자지정사업의 내용 갱신 문제도 남아 있어요. 내가 이 사람 장례를 치러주기로 했는데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합니까. 최소한 1년마다 갱신해야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결코 평등하지 않거든요. 법적인 혈연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삶의 마지막 존엄까지 훼손되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해요.” 

김지혁: 공영 장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임기헌: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재산, 유류금품, 반려동물, 인터넷 계정, 디지털 기록.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데 이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개념이 사후 복지예요. 그래서 ‘공영장례’를 넘어서 ‘사후(死後) 종합복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싶어요. 무연고 사망자는 계속 생기는데 그 구조는 놔두고 공영장례를 강화하라고만 하는 게 맞나요? 남성 중심, 혈통 중심의 가족 제도를 건드리지 않으면 항상 문제가 생겨요. 그걸 깨는 게 공영장례 조문 활동의 핵심인거죠. .그렇게 되면 장례 문제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가족구성 원리가 바뀌는 거죠.  말도 안 된다던 공영장례 지금 되고 있잖아요. 이왕 자리 잡게 하려면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은 결코 평등하지 않거든요. 1인가구, 취약계층, 무연고자 등과 관계없이 말이에요. 비혼 1인가구, 성소수자 등 모든 시민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공영장례의 확대를 넘어 생전에 존엄한 자기결정권을 종합적으로 보장해주는 통합적 사후 복지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법적인 혈연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삶의 마지막 존엄까지 훼손되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해요.

김지혁: 지역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운동을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해주실 말이 있을까요?

임기헌: 가장 본질적인 조직화의 원리를 기억하고 있어야 해요. 첫째는 조직화의 원리. 변화를 만들 힘의 근원은 ‘당사자들의 잠재적 ’인데, 중요한 것은 아직 이것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마치 드러난 것처럼 착각하고 활동가가 당사자 주민들 대신 나서면 문제가 생겨요. 구성원이 주체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그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 속으로 소금처럼 녹아 들어가야 하죠. 한 존재의 가능성을 끝까지 신뢰하는 마음, 그걸 죽을 때까지 성찰하고 다시 행동하고.. 반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눈높이. 나타날 변화에 대한 눈높이를 잘 잡아야 해요. 힘도 없고 조직도 안 돼 있는데 크게 바꾸려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후퇴가 아니라 한 발짝 더 나아갈 현실적인 목표를 잡는 거예요.

세 번째는 커지지 않아도 괜찮으니 변질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의 전략을 세우면 좋겠어요. 다섯 명 모임이라도 1년 빠지지 않고, 2년 하고, 10년, 20년을 가자. 다섯 명이 10년을 모이고 있다면 세계가 엄청 바뀐 거예요. 제도가 크게 바뀌어야만 바뀐 거라고 생각하면 실망하게 되죠. 그리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죽이고 조직을 죽여요.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바뀌고 있는 것이죠.

김지혁: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활동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임기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곧 세계인 거죠. 내가 사는 동네에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피상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 것이고, 중심을 잡은 겁니다. 울산 사람은 울산에서 하면 되는 거고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서울 중심의 기형적인 구조에서 부산·경남에서 활동한다는 건 아주 제대로 된 사회 운동이에요. 우리는 그냥 여기서 하면 됩니다.

다섯 명이 10년을 모이면 세계가 바뀐 거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거대한 변화만을 변화라고 여기는 동안나는 이미 바뀌고 있는 것들을 놓쳤다 자리에서 함께하는 동료를함께할 동료의 얼굴을 떠올렸다.

 

영남지역성소수자지지모임 김지혁 활동가는

현재 퀴어문화협동조합홍예당에서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고,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읽다가 잠드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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