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9.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소진을 넘어, 울타리 너머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 김예선 인터뷰

(기록: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정은주 )

다양성은 시민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다.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과 정체성 등 수많은 의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다양성의 중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 관점으로 많은 갈등과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과 이를 교육의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서로 다른 존재를 존중하자는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경험하고 질문하게 만드는 일에는 고민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부산에서 그 일을 고민하고 실험해 온 사람들이 있다.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 비슷한 관심과 갈증을 품었던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다양성을 정답이 아닌 질문의 방식으로 바라보며, 시민들이 재미있게 참여하고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만들어 왔다. 김예선 상임연구원은 그 안에서 동료들과 서로의 고민을 안전하게 나누고,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가꿔 왔다.

김예선은 활동가로 살아오며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경험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때로 자신을 지치게 했고, 깊은 소진을 경험한 뒤에는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되었다. 지금은 자신을 돌보면서도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고, 동료와 다음 세대 활동가들에게 무엇을 건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문화다양성에서 시작된 대화는 그렇게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멈추고, 다시 이어가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저에게는 당사자성이 강했어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정체성,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한 정체성에 관심이 있었죠. 그러다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정은주: 먼저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가 어떤 곳인지, 그 안에서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지 들어보고 싶어요.

김예선: 처음 이름은 <부산문화다양성교육연구소>였어요. 부산을 기반으로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교육하고 연구하자는 의미였죠. 그런데 이름이 길기도 하고, 그냥 ‘연구소’라고 하면 어떤 곳인지 알기 어려우니까 별칭을 만들었어요. ‘Dive to Diversity’, ‘문화다양성의 바다로 풍덩’이라는 뜻에 부산의 지역성을 담았죠. 앞 글자를 따면 DTD잖아요. 그걸 한글로 바꾸면 디귿 세 개라서 ‘디디다’, 발을 디디다에서 ‘딛다’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딛다라는 별칭을 쓰며 활동했어요. 지금은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로 부르는데, 부산이라는 이름이 가진 장단점 때문이었어요. 지역성을 살리는 장점도 있지만 부산에만 국한되는 것 같았고, ‘교육연구소’라고 하면 교육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부산과 교육을 빼기로 했죠. ‘연구소’라는 이름 때문에 공식 명칭은 상임연구위원이라고 쓰지만, 저희끼리는 그냥 구성원이나 멤버라고 해요. 처음에는 대표도 가위바위보로 정했어요.

처음에는 우리끼리 재미있는 걸 해보자는 마음이 컸어요. 딛다를 만들기 전부터 문화다양성 관련 워크숍이나 교육에서 늘 마주치던 사람들이었어요. 부산에는 왜 문화다양성을 다루는 단체가 없을까, 하나 생기면 좋겠다고 몇 년을 생각하다가 결국 만들자고 했어요. 두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처음에는 네 명으로 시작했고, 다섯 명이 됐다가 지금은 세 명이에요. 서울에는 그런 단체들이 있었지만 부산에서는 저희가 각자 따로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같이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2020년 단체를 만들기로 했어요. 역할은 어느 정도 나눴어요. 대표인 준우 선생님은 행정과 서류를, 윤주 선생님은 회계를 맡고, 저는 홍보·이미지·SNS나 공모사업·연대사업을 주로 맡아요. <모여랑> 사업도 제가 담당하게 됐고요.

정은주: 워크숍이나 교육 프로그램은 세 분이 모두 함께 기획하시나요?

김예선: 네. 고정적으로 맡는 업무는 나눠두었지만, 교안이나 프로그램 기획은 다 같이 모여서 해요.

정은주: 세 분 모두 본업이 있으셨잖아요. 본업과 별개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어떤 계기나 필요성이 있었나요?

김예선: 갈증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 ‘본캐, 부캐’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다들 시민단체에서 본업을 하고 있어도 그 안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갈등이나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의제가 있었거든요. 그걸 <딛다>에서 해보자고 했죠. 처음부터 ‘내돈내산 부캐’라고 불렀어요. 매달 자기 돈을 <딛다> 통장에 넣으면서 활동했고, 지금도 ‘딛다세’가 있어요. 제가 <파랑>에서 돈을 받으면 <딛다>에 세금을 내는 식이에요. 돈 문제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정했어요. 관계가 상하지 않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퇴근하고 만나고, 주말에 만나고, 명절 연휴에는 시간이 좀 더 있으니까 그때도 만났어요. 오죽하면 엄마가 추석 연휴에 당연히 <딛다>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음식을 싸주실 정도였죠. 피곤해도 우리가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이니까 지금까지 왔어요. 2020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6~7년 차네요.

정은주: 비슷한 관심사로 만나 단체를 만들었다 해도 함께 일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잖아요. 처음부터 가고자 하는 방향에 합의가 있었나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김예선: 그 부분을 처음부터 많이 걱정했어요. 친밀했던 관계가 함께 일하면서 틀어질까 봐 걱정했죠. 그래서 처음부터 규칙을 철저히 만들었어요. 돈도 중요했지만, 수익 때문이라기보다 갈등을 예방하고 풀어가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하자는 규칙이었죠.

<딛다> 안은 안전한 공간이라는 합의도 있었어요. <딛다>에서는 그 안에서 나눈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처음부터 합의했죠. 지금도 다들 상근이 아니어서 매일 만나지는 못하니까 회의 시간을 여유롭게 잡아요. 시작 시간은 정해도 끝나는 시간은 모르는 식이에요. 안건이 아무리 많아도 먼저 근황부터 이야기해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듣고 함께 의논하죠. 그러다 보니 일하면서 힘든 일이 생겨도 솔직하게 말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저는 ‘갈등’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각자 갈 길만 가면 충돌도 없겠지만, 부딪히고 얽히면서 뭔가 나올 수 있잖아요. 문화다양성의 관점으로도 ‘어떻게 해결할 거야?’라고 묻기보다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를 묻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정은주: <딛다>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힘을 얻는 공간이기도 하군요. 그런데 여러 의제 중에서도 문화다양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예선: 제가 활동가가 된 과정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에게는 당사자성이 강했어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정체성,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다양한 정체성에 관심이 있었죠. 그 갈증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을 때 문화다양성 워크숍이나 교육에 가면 많은 부분이 해소되고 뜻깊었어요. 저도 이런 문제를 의제로 다루고 싶어졌고, <딛다>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제 주제로 삼게 됐죠.

특정한 사건 하나가 계기는 아니었어요. 청소년기부터 여러 경험이 쌓였죠. 페미니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이주민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다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이 언어로 설명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더 찾아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딛다>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정은주: <딛다>가 이야기하는 문화다양성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어떤 관점과 지향점을 갖고 계신가요?

김예선: 저희도 현장에서 교육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늘 고민해요.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은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황금열쇠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먼 이상향이기도 하거든요. 이걸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죠. 좁게 보면 모두가 나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관점이고, 그 ‘나’들이 모이면 ‘우리’가 되고, 집단·사회·국가·민족으로 넓어지는 거잖아요.

개인 사이의 갈등뿐 아니라 조직과 조직, 더 큰 집단 사이의 갈등에도 문화다양성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를 함께 사용해요.

정은주: 저는 젠더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경우가 많아요. 일관성은 있지만 때로는 너무 좁게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하죠. 문화다양성의 관점이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예선: 저희도 문화다양성이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예를 들어 무슬림에게 할랄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문화다양성의 관점에서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동물권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전통적인 할랄 도축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전통적인 할랄 도축 방식은 살아 있는 동물을 도축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에요. 그러면 다시 다른 가치 판단이 들어오고, 그 안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아동을 대하는 방식도 문화권마다 다르잖아요. 어떤 사회에서는 체벌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데, 그걸 제지해야 할지 문화로 존중해야 할지 질문이 생겨요. 문화다양성의 관점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무조건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은주: 그럴 때는 자기 관점을 세우고 계속 고민해야 하는 걸까요?

김예선: 저는 ‘갈등’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칡과 등나무가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서로 얽히지 않으면 변화나 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각자 갈 길만 가면 충돌도 없겠지만, 부딪히고 얽히면서 뭔가 나올 수 있잖아요. 10년, 20년, 100년 전의 관점과 지금의 관점이 다르고, 앞으로도 달라질 거예요. 계속 갈등하고 대화하면서 고민해야죠. 문화다양성을 다루는 단체지만, 문화다양성도 모든 걸 해결하는 만능열쇠나 고정된 진리는 아니에요. 문제에 정해진 답을 바로 대입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젠더 관점도 비슷해요. 젠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시야가 확장되잖아요. 문화다양성의 관점으로도 ‘어떻게 해결할 거야?’라고 묻기보다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를 묻는 게 다른 것 같아요.

“문화다양성을 다룰 때 시혜적인 태도는 지양하려고 해요.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 “앞으로 장애인을 보면 잘 도와줘야겠어요”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경사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 뿌듯했죠.”

정은주: <딛다>는 연구에만 머무는 곳이 아니라 워크숍이나 전시처럼 시민을 직접 만나는 활동을 하잖아요. 주제와 형식, 그리고 시민을 만나는 방식을 어떻게 정하시나요?

김예선: 주제와 형식을 함께 고민해요. 보통은 한 해의 큰 주제를 먼저 정하죠. 젠더나 세대, 장애처럼요. 그렇다고 한 해 동안 그 주제의 작업만 하는 건 아니에요. 주제를 잡은 뒤에는 어떤 형식으로 풀지 고민하는데, 저희는 ‘재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요. 칠판에 써가면서 하는 교육이나 주입식 교육은 재미도 없고 효능감도 적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체험형을 지향해요.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 등 대상을 정하고, 연극처럼 역할놀이를 할지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죠. 그러다 보드게임과 체험 전시도 만들었어요. 저희끼리는 전략적으로 ‘속인다’는 표현도 해요. 처음에는 참여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캐릭터의 특성이라고만 생각하고 게임을 하다가, 나중에 그게 장애를 다루는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뒤늦게 깨닫는 방식을 주로 만들어요. 처음에는 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재미있는 체험으로 들어오지만, 한두 시간 뒤에는 그 주제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요. 시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낮추려고 해요.

정은주: 강의식·주입식 교육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네요.

김예선: 처음에는 흥미가 있고 나중에는 스스로 깨닫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해요. 그 방식을 찾으려고 며칠씩 붙어서 회의하기도 해요. 저희끼리는 ‘신내림의 순간’이라고 부르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거다!’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갑자기 아이디어가 번뜩일 때까지 고민하는 거죠. 약간 기우제처럼요.

재미있는 방식이라는 데에 모두 동의해야 해요. 저희는 의사결정도 늘 만장일치거든요. 밥 먹을 때도 그래요. 만장일치가 안 되면 결정하지 못해요. 메뉴도 만장일치로 정해요. 그런데 모두가 동의하고 나면 진행 속도가 확 빨라져요. 주제와 형식이 정해지면 세부 구성을 쭉 잡아가죠. 처음에는 그냥 해보게 하다가 마지막에 깨달음이 오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해요.

정은주: 시민들과 실제로 만났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나 장면이 있나요?

김예선: <우주 탈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들이 우주여행을 하다가 우주선이 고장 나고, 각자 캐릭터의 특성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예요. 그렇게 지구에 도착했는데 입국 심사, 그러니까 ‘입행성 심사’에서 혼자 다닐 수 없다는 이유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요.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장애였던 거죠.

참가자들은 자기 캐릭터의 능력으로 문제를 다 해결했는데, 지구에서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해요. 그때 일상에서 장애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돌아보게 되죠. 저상버스가 없어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지 못하는 상황이나 점자블록이 제대로 놓였는지 등을 생각하는 거예요. 입행성을 거부당한 뒤에는 함께 이야기를 나눠요. 내가 해결에 사용했던 능력이 왜 지구에서는 장애가 되었을까, 장애는 개인의 특성일까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 하고요.

참가자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보이잖아요. 어떤 아이는 울상을 짓거나 울기도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전달하려던 이야기가 닿았구나 싶었어요.

정은주: 그만큼 참여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거네요.

김예선: 문화다양성을 다룰 때 시혜적인 태도는 지양하려고 해요. 프로그램을 마친 뒤에 “앞으로 장애인을 보면 잘 도와줘야겠어요”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경사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이 나올 때 뿌듯했죠.

인식의 변화를 느낀 프로그램으로는 초등학생 대상 성별 고정관념 활동도 있어요. 아이들에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떠올리며 자기 특성을 포스트잇에 적어 칠판에 붙여보게 해요. 포스트잇은 의도적으로 두 가지 색으로 나눠주고요. 그러면 ‘남자다움’ 쪽에 붙는 특성도 있고 ‘여자다움’ 쪽에 붙는 특성도 있어서 칠판에 스펙트럼이 생겨요. 다 붙인 뒤 한발 물러서서 보면 색이 섞여 있죠.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양극단의 상반된 성향이 아니라 각자 다른 개인의 특성이라는 걸 한눈에 보게 돼요. 그 순간 아이들이 느끼는 게 달라져요. 저는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장애 문제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면, 부산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아요. 그건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이 컸죠. 영도에서 시범 운영을 하고 부산 전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시위와 입법 활동도 있었고요. 그래서 “부산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한다”는 말은 지역 비하이기도 해요.”

정은주: 그럼 부산의 지역성에 관해서도 여쭤볼게요.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관련한 댓글에서 “부산에서는 그런 시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조롱을 보기도 했어요. 그런 말이 부산에 대한 편견처럼 느껴졌거든요. 부산에서 문화다양성 활동을 할 때 지역성의 영향을 느끼시나요?

김예선: 장애 문제와 연결해서 이야기하면, 부산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아요. 그건 장애인 당사자들의 노력이 컸죠. 영도에서 시범 운영을 하고 부산 전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시위와 입법 활동도 있었고요. 그래서 “부산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한다”는 말은 지역 비하이기도 해요. 다만 부산의 지역성이 분명히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요.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고 지형적인 특수성도 있어요. 피란수도였고,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겪었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요. 폐쇄성과 개방성을 함께 가진 도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해양도시이지만 타지인에 대한 불신도 있고, 피란수도였기 때문에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이기도 하죠. <딛다>에서도 지역성을 문화다양성으로 풀어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근대와 피란수도 시기부터 지금까지 부산의 역사를 이 관점에서 보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접근할지는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또 “우리가 서울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도 해봤어요.

서울에 있었다면 교육이나 워크숍에 더 쉽게 참여하고 훨씬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부산에서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작업하는 몇 안 되는 단체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장점도 있다고 봐요. 그래서 공식 명칭에서 부산을 빼더라도 부산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부산에만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죠.

정은주: 저는 부산 사람이라는 저의 정체성이 참 좋아요. 정 많고 오지랖 넓으면서도 거칠다는 평가까지 포함해서요. 사투리가 재미있고 애정이 생겼어요. 그런데 표준과 다른 지역의 언어가 특이하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게 있잖아요. 지역 정체성에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내가 여기에 너무 매몰된 건 아닐까 헷갈릴 때가 있어요.

김예선: 한국 사회는 수도권 중심이잖아요. 경상도 사투리가 예능에서 희화화되는 면도 있지만, 지역 언어가 드러나는 건 긍정적으로 봐요. 서울과 경기도에도 지역성이 있고요. 과거에는 표준어 이외의 사투리를 무지한 것처럼 낮춰 보는 일이 있었는데, 그 결과 지역의 언어가 많이 사라진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지역성을 회복하려는 논의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문화다양성은 국가·민족·종교 같은 큰 문화적 차이뿐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의 지역 간 위계도 다룰 수 있어요. 표준어와 사투리 사이에도 위계가 있죠. 사투리를 희화화하는 건 경계해야 하지만 지역성을 살리는 노력은 필요해요. 저도 부산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투리를 쓰려고 해요. 그런데 어머니가 충청도 출신이셔서 충청도 말과 부산 말이 섞여 나오기도 하거든요.

정은주: 그것도 하나의 지역성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김예선: 어머니의 충청도 말과 부산 말이 섞인 거죠. 이런 작업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고 <딛다>에서도 계속 해보고 싶어요.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영도의 지역성을 문화다양성 관점으로 다룬 적이 있는데, 저희는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했어요. 다른 지역에서 영도로 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작업도 있었고요. 저희가 만든 프로그램 중에는 계단과 경사가 많은 영도를 어떻게 배리어프리하게 다닐 수 있을지 게임으로 풀어본 작업도 있었어요. <딛다>는 교훈적인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성을 살리면서도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소진됐을까 돌아보면, 활동가로서 스스로에게 느꼈던 부채감이 컸던 것 같아요. 주변에는 반상근·비상근 활동가도 많고, 급여 없이 활동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는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새 부채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정은주: 이제 선생님 개인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선생님은 활동가로 오랫동안 살아오셨잖아요. 주변에도 활동가가 많은지, 그 일을 오래 지속하는 것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김예선: 저는 <민주공원>에 입사하면서 업으로서의 활동가 일을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민주공원>에서 하던 청소년 전국 논술·토론 행사인 ‘논토’에 열아홉 살 때부터 참여했어요. 청소년기와 대학생 때부터 시민단체나 사회 의제를 접했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이 있었죠. 다른 일을 하다가 <민주공원>에 입사했고, 그래서 주변에 활동가가 많기는 해요.

정은주: 열아홉 살 때부터 시작된 일이니 활동가로 사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 같아요. 하지만 돈이나 성과만 좇는 일도 아니고, 사람과 함께 일하며 자신도 단련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오랫동안 이어올 수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김예선: 남들이 보기에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거예요.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을 갖고 대학 때도 여름방학마다 <민주공원>의 ‘논토’를 준비하고 참여했어요. 그러다 <민주공원>에 입사했죠. 한 선생님이 “시민단체는 사람을 남기는 일을 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런 사례였어요. 청소년 참가자가 직원으로 돌아온 거니까요. 주변의 관심도 컸고 잘하고 싶었어요.
저 스스로도 정말 재미있고 감사한 일이었어요. 좋아하는 곳에서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열심히 했어요.

<민주공원>에서 만 7년을 일했는데,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소진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죠. 이후 <파랑>의 지원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며 제가 소진됐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몸이 너무 안 좋아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원인을 알기 어려웠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활동가로서의 소진도 컸죠.

왜 소진됐을까 돌아보면, 활동가로서 스스로에게 느꼈던 부채감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민주공원>에서 오랫동안 홍보 업무를 맡았어요. 부산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되는 기관에서 월급을 받으며 활동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책임감으로 다가왔어요. 주변에는 반상근·비상근 활동가도 많고, 급여 없이 활동하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딛다>도 저희 돈을 내면서 운영하는 단체이고요. 그러다 보니 ‘나는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는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새 부채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부채감이 계속 저를 채찍질했어요. 지치고 힘든 걸 받아들일 수 없었죠. 그런데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업의 ‘직’과 ‘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렸어요. 돈을 버는 직장과 내 일로 삼는 활동을 구분하자는 거죠. <민주공원>을 떠난 지금도 <딛다>에서 활동하고, 또 다른 방식의 활동을 그려보는 중이에요. 지금은 조금 쉬는 단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전에 만난 또래 활동가들 가운데 활동을 그만둔 사람이 있어서 걱정돼요. 소진되거나 환멸을 느끼고 떠난 경우도 있었어요. 이걸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청년 활동가의 소진과 이탈은 시민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예요. 이번 인터뷰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해요.

정은주: 시민단체에는 다음 세대 활동가가 꼭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전 세대가 더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지금 청년 활동가에게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할 수는 없죠. 지금의 문제를 청년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워요. 시민사회도 고민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김예선: 이 문제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아요. 좋은 가치를 위해 활동하던 사람이 그 가치마저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면, 구조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민주공원>을 그만둘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열아홉 살부터 드나들던 곳이라 단순히 슬프거나 아쉽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때는 몸과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어요. 지금은 회복해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파랑>의 활동가 돌봄 지원도 큰 도움이 됐고요. 그래서 특히 여성 청년 활동가의 소진에 관심이 생겼어요. 시민단체에는 인권·성인지 감수성이 높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마주하잖아요.

세대 간 노동 감수성의 차이도 있어요. “우리 때는 돈 안 받고도 했는데 왜 연장근무 수당이나 야근 식대를 요구하냐”는 말도 듣거든요. 하지만 그건 노동자의 권리잖아요. 저도 이런 갈등을 겪었기 때문에 부산 지역 여성 청년 활동가들을 만나 조직 내 고충과 소진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자신이 소진 중인지 알아차리는지, 모르는 채 견디는 건 아닌지도요.

정은주: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는 일도 어렵겠어요. 같은 환경에 계속 있으면 힘든 상황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소진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예선: 저도 소진을 좀 더 일찍 알아챘다면 그런 결말을 맞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다른 활동가들이 더 일찍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해요. 조직에서도 돌볼 수 있어야 하고요. 다음 세대가 없으면 조직도 이어갈 수 없잖아요.

정은주: 저도 예전에 활동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세대마다 처한 상황과 경험이 다르다 보니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청년 활동가들은 어디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남았어요.

김예선: 한 활동가가 부산에서는 관련 활동을 하고 싶어도 월급을 받으며 일할 만한 단체가 없어서 서울로 간다고 했어요. 그러면 지역에는 또 다음 세대 활동가가 없어지죠. 한 단체가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고민할 문제예요. 제가 계속 이런 걱정을 하는 건 여전히 활동가라는 정체성과 애정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정말 환멸을 느끼고 떠났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겠죠.

그래서 청년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부산·광주·제주에 사는 여성 청년 세 명이서 공동으로 책을 쓰고 있어요. 세 사람 모두 활동가이면서 대학원에도 다니고, 동갑이에요.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 분도 오래 일한 단체를 그만두며 겪은 소진을 이야기했어요. 저도 <민주공원>에 들어가고 나온 이야기를 썼죠. 지역과 단체가 달라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생활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 벌며 병행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정은주: 그 고민도 결국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잖아요. 저도 활동가라는 일에 애정이 있지만, 공익활동이 꼭 비영리 시민단체 안에서만 가능한 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공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수익을 내고, 그걸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갈 방법도 있겠더라고요. 물론 수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요.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동료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에요. 제가 경험한 것들은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다음 세대 활동가들이 어디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예선: 청년이면서 여성이면서 활동가라는 정체성이 겹치면 여러 가지를 대표해 말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내 말이 모든 청년 여성 활동가의 생각을 대변할 수는 없잖아요. 말해도 들어줄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듣기만 하는 거잖아요. 듣고 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아 답답했지만, 그래도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거죠. 나라도 내 생각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단체 자체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돼요. 1987년 6월항쟁 이후 많은 시민단체가 생겨나면서 사회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시민단체를 꼭 거치지 않아도 여론을 만들고 직접 행동할 방법이 다양해졌어요. 예전과 역할이 달라진 건 아닐까 싶어요.

오래된 시민단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역할을 해야 지속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했어요. 후원회원이 줄어드는 현상도 그렇고요. 촛불 이후 왜 시민단체 후원이 늘지 않았는지를 함께 책 쓰는 사람들과 이야기했는데, 오래된 시민단체가 광장에서 나온 의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는지 묻게 됐어요. 특히 여성과 퀴어의 의제를 제대로 담고 있는지요. 광장에 나갔던 시민이 굳이 매달 후원금을 내면서 단체를 지지할 이유가 무엇인지, 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지 생각해요. 후원회원이 줄어드는 것도 이런 문제와 연결되는 건 아닐까요.

시민단체의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중요한 공익활동을 하는데도 지지를 얻기 어려워 보이죠. 다른 예술이나 정치 영역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지점도 있고요. 시민사회가 달라져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모든 활동가가 동의하며 함께 바꾸는 일은 쉽지 않겠죠.

“좋은 가치를 위해 활동하던 사람이 그 가치마저 포기하고 떠나야 한다면, 구조적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청년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부산·광주·제주에 사는 여성 청년 세 명이서 공동으로 책을 쓰고 있어요. 지역과 단체가 달라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생활에 필요한 돈은 어떻게 벌며 병행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정은주: 저도 시민단체가 어떤 변화를 보여주고 무엇으로 후원회원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안에서는 다들 열심히 일하는 걸 알지만 밖에서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요.

김예선: 저도 <민주공원>에서 홍보 업무를 맡으면서 소식지와 뉴스레터, SNS 카드뉴스를 만들어도 관심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어요. 외부 편집에 비용을 들여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소식지를 받은 분이 “내가 아직 여기 후원하고 있었지”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SNS를 많이 보다 보니 밈이나 릴스처럼 눈길을 끄는 형식을 시민단체도 써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정은주: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관련해서 조심해야 하는 표현도 많잖아요.

김예선: 신조어나 유행어 가운데 차별적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딛다>에서도 그런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이야기해요. 이미 너무 널리 퍼져 혐오나 차별의 맥락이 희미해진 건가 싶다가도, 그렇다고 우리가 쓰기는 어렵죠. 새 유행어가 나올 때마다 고민해요. <딛다>도 비상근 모임이라 모든 이슈에 대응할 역량이 있는 건 아니고요. 유행어나 밈이 생길 때는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거나 구분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뭉치는 느낌을 만들기도 하고요.

정은주: <딛다>의 활동부터 활동가로 살아가는 이야기까지 여러 이야기를 나눴네요. 선생님이 요즘 가장 고민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지, 혹시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김예선: 개인적으로도 <딛다> 차원에서도 지속가능한 활동을 고민해요. <딛다>도 재미있어서 열심히 달리다가 지친 적이 있었어요. 멤버의 변화도 있었고요. 그래서 “우리 혹시 소진되고 있는 거 아니야?”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작년에는 외부 사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한 해 동안 사업을 쉬면서 논문과 책을 읽는 내부 스터디만 했죠. 그러자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사업을 하지 않으면 해산하거나 단순한 스터디 모임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어요. 그런데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다시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무리하지 말고 올해는 독서 모임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했죠. 그러다 “우리 교안을 안 만든 지도 꽤 됐네” 하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지속가능한 활동이 제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딛다>의 고민이기도 해요. 저희처럼 규모가 작고 매번 수익을 내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 단체가 아니라서 가능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부산에는 1인 활동가나 소규모 단체, 상근자가 없는 단체도 많잖아요. 지속가능한 활동을 함께 고민하면서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딛다>는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한 해 동안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딛다>의 선택은, 지속가능한 활동이 무엇인지 말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김예선 역시 자신을 돌보는 일에서 나아가, 동료들과 함께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정은주 활동가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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