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8.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평화와 만나기, 평화로 연결되기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정은주 인터뷰

(기록: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 김예선)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이다. 평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조금은 망설이지만 단호하고도 묵직하게 답을 이어가는 정은주 부산어린이어깨동무 활동가를 글마루작은도서관에서 만났다.

김예선: <부산어린이어깨동무>의 소개와 함께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정은주: <부산어린이어깨동무>는 2004년 10월, 남과 북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단체입니다. 그해 10월 29일 <원산 어린이 돕기 부산어깨동무> 발족과 모금의 밤을 열었고, 북녘 어린이의 건강과 삶의 질을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남북 어린이가 평화로운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문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저는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서 교육·문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평화교육과 평화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고, 작은도서관도 사무국 활동가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소식지와 뉴스레터, SNS 등을 통해 어깨동무의 활동을 알리고 소통하는 일도 맡고 있습니다.

김예선: 평화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활동을 하면서 평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으신가요?

정은주: 활동가로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평화’라는 것 자체에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어떤 평화일까, 내가 평온하게 살아가는 개인적인 평화도 여기에 속하는 걸까. 사실 잘 몰랐습니다. 굉장히 넓은 의미의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평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깨동무>에서 활동하면서는 평화를 바라보는 범위가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남과 북의 어린이가 직접 만나는 평화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시간이 이어지고 있고, 동시에 <부산어린이어깨동무>는 작은도서관 두 곳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과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화도 남북과 한반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비폭력이나 다양성, 관계와 존중 같은 일상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평화교육 강사단 <울리미> 선생님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를 ‘평화를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셨다고 해요. 그래서 일상에서도 평화로운 말과 태도, 눈빛을 선택하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걸 보면서 평화를 아는 사람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예선: 평화는 너무 크고 넓은, 또는 멀리에 있는 가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일상 속 평화를 찾기도 한다는데요, 두 의미의 간극 사이에서 평화 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정은주: 저는 여전히 평화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구나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이 아주 큰 그림으로 그려질 때는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평화교육 강사단 <울리미>를 운영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울리미> 선생님들은 1년 동안 함께 공부하고, 매년 열리는 평화교사 양성과정에도 참여하고, 직접 초등학교로 평화교육을 나갑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평화를 배우고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를 ‘평화를 배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셨다고 해요. 그래서 일상에서도 평화로운 말과 태도, 눈빛을 선택하려고 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평화를 아는 사람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화교육 강사단 울리미> 모임 활동 모습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계단을 너무 뛰어다니기에 위험하니까 “그러다 넘어지면 선생님 화낼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어린이가 “왜 화내요?”라고 물었어요. “걱정되니까 화내지.”라고 대답했더니 다시 “걱정되는데 왜 화내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조금 머리가 띵했습니다. 맞아. 걱정되는데 왜 화를 내는 걸까. 평화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정작 평화를 너무 멀리 두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평화는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눈앞의 한 사람에게 어떤 말과 태도를 선택하는가에도 있다는 걸 그 어린이에게 다시 배웠습니다.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계단을 너무 뛰어다니기에 “그러다 넘어지면 선생님 화낼 거야.”라고 했더니 한 어린이가 “왜 화내요?”라고 물었어요. “걱정되니까 화내지.” 대답했더니 “걱정되는데 왜 화내요?” 하더라고요. 평화는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눈앞의 한 사람에게 어떤 말과 태도를 선택하는가에도 있다는 걸 그 어린이에게 다시 배웠습니다.”

김예선: 아주 인상 깊은 에피소드네요. 그렇다면 정은주라는 한 사람에게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정은주: 저에게 평화란, 넓은 의미로는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자기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정말 개인적인 평화라면 내면의 평화인 것 같습니다. 외부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고 가는 것,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조율을 잘하는 사람이고 필요하다면 나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절대 포기가 안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근래에 깨달았습니다. 독립적으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중요한데 이 점이 중심을 잃지 않고 똑바로 서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예선: 올해 <부산인권플랫폼 파랑>의 <모여랑>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정은주: <평화교육 실험실>​이라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평화교육을 하고 있는 강사 6명이 모여 각자의 수업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부하면서 새로운 평화교육 교안을 직접 만들어보는 모임입니다. 기존의 교안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화교육을 하는 사람들도 계속 공부하고 실험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림책을 매개로 평화, 갈등, 다양성, 공존 같은 주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림책을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어떤 질문을 나눌 수 있을지 평화교육의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고 실제 수업 교안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외부 강사의 강의를 듣고, 함께 스터디하고, 교안 초안을 만들고 수정하면서 올해 안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모임을 하면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평화교육을 하는 사람도 계속 평화를 배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강사가 평화를 다 알고 있어서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수업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배우고 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것입니다. 평화의 가치를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만나려고 합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와 ‘우리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김예선: <어깨동무>는 평화큰잔치, 평화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작은도서관 두 곳을 위탁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어깨동무> 활동가들이 함께 어떤 방식으로 평화의 씨앗을 틔우고 퍼트리는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은주: 사업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교육이나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먼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를 생각합니다. 그다음에 그 이야기를 누구와 나눌 것인지, 교육으로 할지, 책이나 영화로 만날지, 전시나 행사로 풀어낼지를 고민합니다.

특히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린이를 교육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 것입니다. 평화의 가치를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만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답을 알려주는 것보다 질문하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말을 끝까지 듣고, 명령하는 방식보다 선택할 수 있는 언어를 쓰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와 우리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는가는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은도서관 두 곳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런 면에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일회성 행사로 사람을 한 번 만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같은 지역에서 어린이와 주민을 계속 만날 수 있습니다. 책, 전시, 강연, 프로그램처럼 여러 방법으로 하나의 주제를 이어갈 수도 있고요. <어깨동무>도 현재 두 도서관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과 평화의 가치를 나누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두고 있습니다.

물론 도서관은 매일 운영되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프로그램만 기획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적인 운영과 행정도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안에서 안정적으로 공간을 운영하는 일과 새로운 기획을 계속 만들어내는 일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일은 평화롭지 않은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딘 일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평화를 한 번 이야기했다고 해서 갑자기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심으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자기 자리에서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들듯이 평화로운 상태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6년 제17회 부산평화영화제 메인 포스터. 이미지를 누르면 영화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김예선: 활동을 하며 ‘사람들의 인식이 실제로 달라지고 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요?

정은주: 제가 직접 평화교육 수업을 나갔을 때는 어린이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어른이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하니까 무관심하거나 조금 거부감을 보이는 어린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존중하려고 하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저를 보지 않던 어린이가 어느 순간 먼저 눈을 맞춰오고, 자기 이야기를 건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게 꼭 교육 내용이 훌륭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굉장히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을 만나면 오히려 일회성에 그치는 이 만남에 대해 겸허해집니다. 아주 짧은 시간 만나는 어른으로서 나는 이 어린이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정말 평화로운 태도로 어린이를 만났을까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아직 아주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만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평화를 이야기하는 일은 평화롭지 않은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딘 일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평화를 한 번 이야기했다고 해서 갑자기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심으로 평화를 이야기하고 자기 자리에서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들듯이 평화로운 상태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에 저 자신을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활동가’​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저는 모두의 앞에서 강한 신념과 철학으로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활동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곁에서 아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평화라는 가치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가장 저답다고 생각합니다.”

김예선: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과 가장 고민이 깊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정은주: 저에게는 보람 있었던 순간과 고민이 깊었던 순간이 오히려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어린이와의 만남처럼 ‘내가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을 만나면 이상하게 바로 활동가로서의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정말 평화롭게 행동하고 있는지,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만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미 완벽하다고 생각했다면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흔들리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다시 배우는 과정이 있어서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저 자신을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활동가’​라고 이름 붙여봤습니다. 거창한 말은 아닙니다. 저는 모두의 앞에서 강한 신념과 철학으로 누군가를 이끌어가는 활동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곁에서 아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제가 해온 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을 생각해보니,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라는 가치를 교육으로 만들어 사람에게 건네거나, 책과 영화로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하거나, 서로 모르던 사람과 활동을 이어주거나,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닿게 하는 일입니다. 평화라는 가치를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것. 지금은 그것이 가장 저답다고 생각합니다.

김예선: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활동가라, 질문을 더 하고 싶게 하는 소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10년 후에는 스스로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정은주: 2024년 7월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 입사하면서 활동가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입사 전에는 시민사회, 시민단체, 활동가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습니다. <여성사회교육원> 후원회원으로 시작해서 분과 교육위원장도 하고 다양한 모임도 했지만 사적 모임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활동가라고 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는 사람들인데, 돈을 받지 않고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봤던 것 같습니다. 생계는 불안정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업으로서의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저와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상근활동가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서 활동하며 업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영리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사무, 행정 같은 맞지 않는 분야의 일을 해서 그런 것도 있고…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상근활동가가 되면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 와서 세운 것 같고 이제는 어디 가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데 어색하지 않습니다.

10년 뒤에도 제가 ‘활동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이 보고 배우면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사람을 제 방식으로 잘 연결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평화를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습니다.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제가 잘 몰랐던 의제를 배우기도 합니다. 활동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이 왜 자기 일이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를 위해 계속 활동하는지를 듣는 일이 좋습니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면 어디선가 연결되는 지점이 생깁니다.”

김예선: 연결이 계속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것 같은데요, 지역에서 다른 활동가·단체와 연결되는 것은 <어깨동무>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또 서로 다른 인권 의제를 다루는 활동들이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정은주: 저는 평화라는 의제 자체가 다른 영역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충분히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인권, 장애, 이주, 노동, 환경처럼 서로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평화를 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졌습니다.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제가 잘 몰랐던 의제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번 교차 인터뷰도 그래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활동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사람이 왜 자기 일이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를 위해 계속 활동하는지를 듣는 일이 좋습니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오래 듣다 보면 어디선가 연결되는 지점이 생깁니다.

다만 ‘연결’이 항상 함께 사업을 하거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전문성과 방향을 가지고 활동하면서도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고, 필요한 순간에는 경험과 자원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것 같습니다.

김예선: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평화 이슈가 있나요?

정은주: 저는 여전히 여성인권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당사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그냥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계기라고 한다면 강남역살인사건이 큽니다. 내가 페미니스트구나 자각을 하면서 더 이상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났고 <부산여성사회교육원>에서의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문제를 보더라도 항상 젠더적인 시선에서, 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활동가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저는 정은주입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영리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뉴스에 김지은 씨가 나왔습니다. 그때 남성 상사가 김지은 씨의 말이 거짓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크고 작은 일화들이 힘들었습니다. 더 이상 나의 생각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은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민단체에 있으니 안전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는 데 편하기도 합니다. 남성주류사회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과 관련된 작업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동구에 살고 있는데, 동구에는 노년 여성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등 지역 특성을 살려서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 지금은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앞으로 꼭 해보고 싶습니다.

“효율이나 성과, 경제적인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믿고 그 일을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크게 다가왔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힘들지 않아서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

김예선: 정은주의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가 되는데요, 마지막으로 부산·경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은주: 작년부터 올해까지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오히려 활동가에게 더 애정이 생겼습니다. 효율이나 성과, 경제적인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믿고 그 일을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크게 다가왔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나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른 생명,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가장 오래 남는 건 그 사람들의 눈빛입니다. 힘들지 않아서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시민사회 안에서 다루는 의제와 활동 방식은 서로 달라도,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활동가들이 활동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참 고맙습니다.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의 김예선 활동가는

부산의 여성 청년 활동가로 문화다양성연구소 딛다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다양성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소수자의 삶 속 다양한 목소리를 길어내고자 합니다. 땀 냄새가 잔뜩 나는, 눈물이 베여 있는, 너무나도 사소해 눈에 보이지 않을지언정 무시할 수 없는 걸림돌 같은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2사업연대지금 파랑은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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