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52화 / 양지이

지금 파랑은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 양지이(YANG ZHIYI) 파친님

가을비가 제법 내립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무탈함을 바라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와중에 노랑 빨강🍂 물들어가는 계절의 변화가 반갑습니다. 다채로움이 자연스럽듯 다름과 다양성 또한 자연스러우면 좋겠다며, 가을을 탑니다. 이 바람을 한철 감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현하는 사람, 10월의 파친님은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의 양지이 상담팀장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유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어느덧 20년째 부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국 출신 이주민 양지이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여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개할 만한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돌아보니 낯선 나라에서 제 자리를 만들고 조금씩 뿌리내리며🌱 살아온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온 평범한 이주민입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2015년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중국어 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당시 ‘이주민과 함께’의 정귀순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대표님이 ‘파랑’을 만들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응원했지만, 사실 파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2023년 파랑의 건강돌봄 지원사업에서 받은 검진을 통해 갑상선암을 발견했고, 몸과 마음을 돌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늘 누군가의 어려움을 듣는 사람이었는데, 누군가가 제 안부를 먼저 물어봐 주는 듯했습니다. 그 경험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 준 파랑의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3. “파친님의 안부를 늘 바라요. 한국에서의 20년을 어찌 보내셨어요?”
중국에서 다니던 대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있었는데, 당시 상대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한국어가 🙄궁금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던 중 유학 담당자의 권유로 2006년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국에서 20년을 살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한국어는 학교에서보다 알바를 통해 더 많이 익혔고, 그러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석사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비즈니스 통역 일을 잠깐 했는데, 그 인연으로 졸업 후 해당 중소기업에서 5년 정도 일했습니다. 한국의 직장 문화와 사회생활을 온몸으로 익힌 치열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의 제 삶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배우며 성장했고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고, 우연히 부산시청 채용 공고를 보다가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올해 10월 1일로 꼭 11년이 되었습니다.😄
 

#4. “마음 한편의 아쉬움이 센터에서의 일로 이어진 걸까요?”
처음부터 이주민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상담 일을 시작하고 보니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겪었던 막막함과 어려움을 다른 이주민들도 여전히 겪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래전의 저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소통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 없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어 실력이 나아질 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느끼는 외로움과 위축된 마음까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저에게 장애인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중국에서도 딸기나 바나나를 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질문들이지만, 당시의 저는 주로 침묵하거나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것이 낯선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하면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사자가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당하다고 느끼면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고, 차별을 경험하면 차별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그 목소리를 듣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할 때면 가끔 마음이 묘해집니다. 지금 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해주는 말이 사실은 20년 전의 저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누군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곁에서 돕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5. “11년 동안 이어온 활동과 그 시간이 파친님께 남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부산광역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이주민과 함께’가 위탁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저는 체류자격 변경과 한국 사회 정착, 그 밖의 다양한 생활·노동·의료 상담을 맡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일하다 다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체류 문제로 불안할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의 하루는 누군가의 걱정과 불안, 분노와 슬픔을 듣는 일로 채워질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상담이 끝나면 그 문제도 어느 정도 정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연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런 날들이 11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의 경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급한 마음에 밤늦게 전화하거나 쉬는 날에도 연락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제 시간이 사라지는 듯해 지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시간은 잠자는 시간밖에 없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도 저를 찾지 않는 무인도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다른 기관의 상담원이 잘 모르는 내용이 있다며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지난 11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

제가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모르는 것이 많고, 새로운 제도를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를 떠올리고, 제 의견을 믿고 물어본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매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상담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삶의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 역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지난 11년이 제게 남긴 가장 큰 의미입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이제는 저 자신을 이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믿을 만한 상담원이면서, 제 삶도 잘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6. “듣다 보니 믿음이 가요. 앞으로 활동가로서의 계획, 그리고 이주민으로서의 바람이 있다면요?”
저는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 지금 제 앞에 놓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기보다 오늘의 한 걸음을 제대로 내딛는 데 최선을 다해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작년부터 대학교를 찾아가👩🏻‍🏫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생활 에티켓, 체류자격 변경, 노동법 등에 관한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요즘 저에게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상담실에서는 이미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학 특강에서는 아직 그런 어려움을 겪기 전인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거나 상담 현장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문제들을 미리 알려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이 학생들이 나중에 어려운 일을 겪었을 때 오늘 들은 이야기를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고, 가끔은 대학에 가서 유학생들에게 제 경험을 들려주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차별과 편견이 생각보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주민들 사이에서도 국적이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서로를 차별하기도 하고, 같은 국적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학력이나 직업,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서로를 다르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어느 나라 사람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로 먼저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주민으로서의 바람이라면, 이런 작은 시선의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7. “마지막으로,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려요!”
파랑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조금 더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파랑이 앞으로도 지역의 활동가들과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다정한 친구로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파랑의 따뜻한 걸음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함께하겠습니다.👐

자분자분한 파친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이맘때의 벼 이삭🌾이 떠올랐습니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사람이 지니는 담담함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듣기 위해 상대를 향한 파친님과 단단히 여문 이삭의 기울기가 닮은 것은 가을을 타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함께할 파친님을 응원하며, 반가운 소식💌 하나를 전합니다~

요즘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는 합창 연습이 한창입니다. 다가올 ‘이주민과 함께’의 3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데요. (파친님도 함께하는) 🐸개구리합창단의 공연, 그리고 이주민과 함께한 30년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 우리 같이 가요!

♥2지금 파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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