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곡진한 상상력🪸 – 장종수 파친님
곧 추석입니다. 활동가들에게 명절 연휴는 강제 휴가와 같습니다. 설에는 단체마다 정기총회 준비로 정신없고, 추석에는 한해 사업을 갈무리하느라 틈이 없습니다. 활동가들이 명절을 맞닥뜨리지 않고 맞이하길 바라며 파랑은 일찌감치 명절을 준비🎉합니다. 상여금도, 선물도 없는 활동가들에게 양손 가득 선물을 쥐여 주고, 숨 고를 수 있는 명절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작년부터 이 마음을 함께하는 든든한 곳이 있습니다. 명절마다 명란김을 선물🎁해주는 곳, 9월의 파친님은 ㈜덕화푸드의 장종수 대표님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 송도해수욕장 옆 감천항에 위치한 🪸덕화명란의 대표, 장종수입니다. 저희 회사는 명란 하나만을 꽤 오랫동안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명란 단일품목 공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아버님께서 창업하셨고 제가 대를 이어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33년 되었습니다. 참고로 아버님은 수산제조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대한민국 명장👍이셨고, 저는 명란젓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대한민국 수산식품 명인👏입니다.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부산 광복동에 있는 독립극장 모퉁이극장에서 열린 영화제에 갔다가 한아름 사무국장님이 관객토크를 진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인권플랫폼💙’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면서 신선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참 명란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명란 자체가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은 물론 중국의 조선족이나 일본의 자이니치 등, 시인 백석의 표현대로 ‘명태처럼 비쩍 마른’ 소수자와 이방인, 난민의 음식이라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릴 때였습니다. 그때 파랑을 만났고, 제가 막연하게 하고 있던 생각을 실제 활동과 사람들로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인권 관련 단체와 활동을 소개받고, 어떻게 지원하고 지지하면 좋을지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런 교류 끝에 2025년부터 🎉JEDI기금(Justice · Equity · Diversity · Inclusion)을 조성해 여러 단체의 의미 있는 활동들을 지원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3. “파랑 사업(오늘의인권·모여랑과 명절선물나눔)에도 후원하시지만, 파친님은 개인적으로 파랑의 친구이자 인권운동세미나의 학우이기도 하잖아요. 파친님은 처음부터 경영인이 되고 싶으셨어요?”
사실 저는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제게 사업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니 길은 니가 알아서 가라.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아버님이 수산가공업을 하신다는 정도만 알았지,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 회사가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90년대 초 대학에 들어가 독서토론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당시 대부분의 대학이 그랬듯 학생운동의 끝자락에 있던 독특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연루되었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걱정 속에서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결혼하여 첫아이를 낳고 서울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공장을 확장했으니 부산으로 내려와🚆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안이 뜻밖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큰 걱정을 끼쳐드린 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고, 저를 믿고 함께 일하자고 해주신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에 참여한 터라, 일하면서 절박하게 공부했습니다. 식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인근 전문대학 식품영양학과의 야간과정을 졸업했고, 주말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MBA 과정에서 경영을 공부했고, 통영을 다니며 식품공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오랫동안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회사를 살려야 했고, 무엇보다 아버님께서 평생 해오신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4. “앞서 명란의 역사연구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제대로 이해’하는 하나의 실천으로 들려요. 여기에서, 명란으로부터 소수자를 상상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명란은 한반도의 수산식품🐟 가운데 전통 중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우리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 음식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분단 와중에 밀려난 주변부의 음식이지요.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일본의 접촉지대였던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이,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제3의 존재’로서 개발한 저염명란이 지금은 일본의 국민음식이 된 것도 독특한 역사의 얽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란이라는 음식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그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되었습니다. 명란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부 사람들 그리고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식민지와 이주, 전쟁과 분단이라는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살아온 재일조선인과 탈북민 등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음식을 만드는 기업은 그 역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 분단과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극복하는 데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문사회적 토양을 강화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의 방향을 잡고, 파랑을 통해 소이난장(소수자, 이방인, 난민,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고민에 대한 매끈한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나아가 보려 합니다.

#5.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서일까요. 방문했던 공장이 밝고 따뜻했어요. 일하고 계시던 여사님들이 웃으며 맞이해주신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경영인으로서는 요즘 어떠신가요?”
먼저 ‘여사님’들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희 회사의 여사님들은 정말 대단한 존재입니다. 산업화 시기 여공의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고 어떤 연구자가 말하기도 했는데, 아마 앞으로는 마주하기 어려울 최고의 기술자들입니다. 손기술에 담긴 지적 능력💡, 힘듦을 견뎌내는 뚝심과 성실함💪, ‘애살’이라 표현되는 몸에 밴 특유의 애정과 관심💕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분들의 손기술과 헌신이 명란산업의 기초를 닦고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희가 만든 명란이 일본 세븐일레븐그룹의 자사 브랜드 대표상품으로 선정되었을 무렵, 여사님들이 일본으로 파견되어 그들에게 명란 만드는 법, 가위질하는 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요즘도 저는 회사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어떻게 하면 명란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장과 더 안정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경영이라는 것이 밖에서 볼 때는 계획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복잡한 생태계를 돌보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을 경영한다기보다 때로는 농사를 짓는 사람🌾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수많은 재료와 사람과 시간을 다루는 요리사👨🏻🍳 같기도 합니다. 오늘 잘된 일이 내일은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오늘 새롭게 발견되기도 합니다. 매일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일이 결국 발전🌳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6. “듣다 보니 정진하는 구도자 같기도 하셔요. 그 길이 향하는, 파친님의 꿈이 듣고 싶어요!”
거창한 것은 없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멋지게 살아남길 바랍니다. 살아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제품, 시간이 지나도 부끄럽지 않을 명란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훗날 누군가 덕화명란을 보면서 ‘한 가지 음식을 오래, 성실하게, 그리고 조금은 다르게 만들어왔구나!’라고 기억해준다면 충분히 기쁠🌿것 같습니다.
‘조금은 다르게’라는 건, 전통을 잇되 기술을 새롭게 해석하고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맛에 녹여낸 명란을 말합니다. 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귀 기울이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 미래로 가져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명란은 바다에서 시작되는 음식이니, 바다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책임도 다하고 싶습니다.
결국 명란이라는 음식 자체의 이야기, 과거에서 이어온 이야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일로 이어갈 가치까지 함께 살피면서 본연으로도 맛있고, 의미에서도 맛있는 명란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잘 읽고, 잘 듣고, 잘 생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눈앞의 일에 쫓기다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으면서요. 돌아가신 아버님은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인내력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과 화상 흉터, 아픈 아내를 평생 돌보면서도 늘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오셨습니다. 저에게는 슈퍼맨이자 엄마 같은 분이었고, 지금도 제 삶의 모범입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넓혀 가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7. “우리 같이 찾아가요! 마지막으로, 파랑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한 말씀!”
파랑을 만나면서 좋은 점은 제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마음💙이 구체적인 사람과 활동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평범한 개인이나 작은 기업으로서는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파랑이 이 사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소수자, 이방인, 난민, 장애인’ 등 우리가 살아가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그늘지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양심의 수준🥀을 폭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면, 우리 역시 그저 평안히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가려진 이들을 발굴하여 고루 빛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활동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지원이 가능해지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연대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일상의 바쁨과 번잡함 속에 묻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연구해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하고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이 사회가 사랑의 온기로 두텁게 보듬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파랑이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그리고 좋은 뜻과 좋은 활동을 이어주는👐 든든한 연결고리로 오래 남아주기를 바랍니다.
“디아스포라 문인 작품에는 뭔가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치열함이랄까 깊이나 상처랄까 그런 게 곡진하게 있어요.”
– 권성우, 「“비평도 매력적인 읽기 대상 돼야…‘주례사비평’ 더 심해져”」, 《한겨레》, 2026.8.25.
어느 날 기사에서 ‘곡진하다’는 단어가 새삼스러워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마음이나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더없이 지극하고 극진하다.’ 곧장 파친님🪸이 떠올랐어요.
명란에서 소수자를 상상하기. 깊고 넓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여정입니다. 그 상상력은 어느새 부산·양산지역의 동지들과 활동가들을 보듬는 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적의 씨앗이 되어주신 파친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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