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1. 기억행동네트워크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사회적 재난과 참사,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행동하다

기억행동네트워크 임성조 인터뷰 (기록: 새알미디어 강언주)

몇 년도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녹색당이 처음이었는지, 부산반빈곤센터가 처음이었는지, 아니면 대안문화연대가 처음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성조씨와 처음 인연이 되었던 자리나 상황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기자회견이나 집회 현장에서, 또 각종 행사에서 성조씨를 자주 만났다. 개발자였던 성조씨의 조금은 특별한 이력을 알고 나서는 각종 부탁도 참 많이 했다.

“성조씨, 촬영 좀 해줄 수 있어요?”  “성조씨,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해요?”  “성조씨, 유튜브 중계할 줄 알아요?” 성조씨, 성조씨…. 돌이켜보니 참 많은 부탁을 하면서 만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며들다’라는 표현을 쓰던데, 그야말로 나도 모르는 사이 ‘임며들다’였달까.

인터뷰 내내 자신은 ‘활동가가 아니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을 하는 것과 자신이 하는 일은 비교할 수 없다며, 자신은 그저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고, 주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오래 함께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15년 가까이 사회운동의 곁을 지켜온 이유를 물으니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으니까요.”라고 했다. 탈핵도, 노동도, 기후위기도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다고. 

‘활동가가 아닌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운동은 이런 사람들의 힘으로도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 앞에 서지는 않아도 오랫동안 곁을 지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필요할 때 손을 보태는 사람들. 그렇게 부산지역운동의 여러 자리에서 꾸준히 ‘곁’을 지켜온 성조씨를 만났다. 

“우리가 잊으면 또 반복될 수 있는 것들을 잊지 말자는 거라서 좋은 일은 별로 없어요. 아예 없어요. 좋은 일은 자연스럽게 기억할 테니까.” 

강언주: 먼저 기억행동네트워크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파랑의 <모여랑>을 통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임성조: 일단 기억행동네트워크 소개부터 하자면, 대안문화연대의 소모임이구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진상규명 캠페인을 여러 곳에서 했잖아요. 그때 대안문화연대에서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같이 모이는 사람들이 생겼고 소모임을 만들자 해서 2014년에 ‘기억행동네트워크’라고 이름을 지어서 시작했죠.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한 4~5년까지는 계속 캠페인이나 서명받기에 동참했어요. 그 뒤에는 매달 기억해야 될 사안이 있으면 거리 캠페인을 했구요. 삼풍백화점 참사라든지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걸 알리는 것도 했고, 공간이 있을 때는 책 읽기나 영화 보기 모임도 했어요.

사실 <모여랑> 때문에 뭘 더 한 건 아니고 원래 기억행동네트워크에서 하려던 사업을 <모여랑>을 통해 더 잘 진행하게 된거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기억의 방’ 계정(클릭!)에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나 사고, 참사를 꾸준히 공유하고 있고, 영화 <3학년 2학기> 공동체 상영과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다룬 영상도 같이 봤어요. 사업비 지원을 받아서 금전적인 부담이 덜했고 홍보할 공간이 조금 더 생긴 게 좋았어요.

  

(마지막 학창 시절을 사업체 현장 실습생으로 보내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3학년 2학기] 공동체 상영회)

강언주: 인스타그램 계정에 보니 ‘기억달력’도 있더라고요. 되게 의미 있는 아카이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성조: 원래 기억달력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한 5년 전부터 있었어요. 기본 틀은 같이 활동하는 선욱씨가 만들었고, 비어 있던 달은 제가 쭉 했죠.  우리가 잊으면 또 반복될 수 있는 것들을 잊지 말자는 거라서 주로 재난 참사 사건이 많고 좋은 일은 아예 없어요. 좋은 일은 자연스럽게 기억할 테니까. 꼭 상기해서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자, 그게 제일 큰 취지죠.

기억행동네트워크 인스타그램 ‘기억의 방’계정(https://www.instagram.com/countermemory/)

(4월 25일 기억의 방에서 진행된 김순길님(단원고 2학년 9반 진윤희님 어머니)의 재난인권강의)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으니까요. 저의 문제이기도 해서 외면할 수가 없어요” 

강언주: 그럼 성조씨 개인에 대한 질문을 좀 할께요. 성조씨가 사회운동에 처음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임성조: 활동하게 된 계기라기보다는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처음 관심을 가진 건 시사주간지 <시사IN>을 보면서였어요. 사회적 문제를 되게 많이 다루는 잡지였고 그때부터 관심이 생겼죠. 그러다가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있었잖아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고 희망버스가 한창일 때 저도 개인으로 참여해봤죠. 적극적으로 어디에 동참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근데 혼자 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당시 트위터에서 그 소식을 잘 알려주는 곳이 부산반빈곤센터였거든요. 그래서 반빈곤센터에 찾아가서 회원가입을 했고 지금은 운영위원도 하고 있어요. 대안문화연대는 연리문화제나 쌈수다 같은 걸 통해서 알게 됐어요. 2013년도인가 2014년인가? 정확한 년도는 기억나지 않은데 부산지역 내에 여러 단체들이 온천천 일대에 부스를 차려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했어요. 그때 대안문화연대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 녹색당은 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가 알게 됐어요. 밤에 모여 대화하는 자리에 녹색당 사람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때 당원가입 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집에 와서 좀 더 알아본 다음 당원이 됐죠. 

강언주: 성조 씨는 원래 개발자였잖아요. 시사잡지를 보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혼자 한진중공업에 갔다가 반빈곤센터와 연결되고, 또 대안문화연대와 녹색당으로 이어지고. 제 주변에서는 사실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이긴 해요.

임성조: 그래요? 제 성격 탓이죠, 뭐. 누가 권한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고 제가 무조건 동의해야 움직이는 사람이라서^^

강언주: 그렇게 시작해서 벌써 15년 정도 된 거잖아요? 대안문화연대, 반빈곤센터, 녹색당, 강정평화대행진까지… 아 그리고 핫핑크돌핀스도 하잖아요^^그렇게 함께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아쉬움이 남는 일이 있다면요?

임성조: 제일 보람 있었던 건 한진중공업 사태죠. 좀 길었지만 그래도 노사협정이 잘돼서 웬만하면 다 복직하는 걸로 끝났잖아요. 그래서 ‘나도 일조했다’ 이런 느낌의 좋은 기억이 있고요. 아쉬운 거는 강정에 해군기지가 결국 다 건설되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거. 여전히 안타깝죠.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진짜 싹 밀어버리고 구럼비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요 

강언주: 그런데 성조씨는 활동비를 받는 활동가도 아니고 원래 하던 일이 따로 있었는데 굉장히 꾸준한 거 같아요.  제가 성조씨 본 지도 한 10년 쯤 된  거 같은데 “나 이제 이런 거 좀 그만하고 좀 거리를 두고싶어”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고요. 근데 제가 봤을 때 성조씨는 꾸준한 사람인 거 같거든요.. 그리고 성조씨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랄까요. 기기를 다룬다거나 그런 건 우리한테 되게 부족한 역량인데 그런 걸 또 성조씨가 할 수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조씨한테 그런 부탁을 많이 하잖아요. 그럴 때 좀 그만하고 싶어 그런 적 없어요? 

임성조: 그건 제가 주도하는 활동이 없어서 그래요. 부담이 없잖아요.  제 태도는 딱 하나예요. 저는 활동가가 아닌 게 확실하고요. 내가 주도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지원하자는 태도거든요. 그래서 큰 부담이 없어요.  제가 뭘 주도하는 건 거의 없고 남들이 하는 걸 지원하죠. 그리고 저도 하기 싫은 거 안 해요^^ 저는 어디까지나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하는 거죠.  솔직히 활동가들이 뭔가 사회운동하는 수준하고는 비교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부담이 없는 거예요, 저한테는. 그래서 뭐 관둔다? 관둘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냥 늘상 내 여유가 되는 대로 하는 거니까.

강언주: 나는 오히려 성조씨가 그 선을 지키기 때문에 꾸준히 하는 것 같아요. 활동가는 이게 일이자 삶이고 또 세계관이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에만 머물러서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죠. 그런데 평범하게 다른 일을 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놓지 않고 조직에 계속 함께하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거든요. 그러니까 성조씨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게 나는 되게 대단해 보이거든요. 내가 주도하지는 않지만 무언가의 사업이 잘되게끔, 어떤 활동가가 그걸 잘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것도요. 다르게 물어보면, 성조씨가 그렇게 지속하게 하는 뭔가가 있나요?

임성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으니까 그런거 같아요. 내가 지금 주도해서 바꾸지는 못하지만 바꿀 필요성이 있는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계속 관심 갖고 있어요. 어떻게든 바뀌면 좋겠다. 근데 내가 주도할 수는 없다. 그럼 방법은 뭐냐.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자. 자연스럽게 이게 결론이 되는 거예요.

(부산지역 탈핵신문읽기모임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성조씨)

강언주: 그런 사회문제들 좀 외면하면 할 수도 있잖아요?

임성조: 내가 피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탈핵문제도 그래요. 제가 가까이 살잖아요. 사고가 나면 바로 피해 입죠. 노동문제도 임금 많이 받고 덜 위험한 데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저한테 좋잖아요. 기후위기도 지금 늘 체험하는 거고요. 물론 모든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건 아니에요. 관심은 있지만 나한테 직접적이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도 있고요. 끊임없이 생기는 사회문제들이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분노죠. 바꾸고 싶은 욕망.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구. 나름 이 세계에 태어나서 살아갈 텐데 그냥 흥청망청 놀고만 살다 가는 건 너무 보람이 없지 않나. 뭐 그런 생각도 있고요. 그래도 사회에 조금 보탬이 되고 싶은 바람, 그런 게 있고요.

“부산의 현안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 그리고 현안은 많은데 활동하는 사람이 적다는 게 아쉬워요” 

강언주: 부산·경남에서 활동한다는 건 성조씨에게 어떤 의미예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아쉬움도 있을 것 같고요.

임성조: 글쎄요. 별로 대단한 이유가 없어요. 부산·경남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저한테 ‘집에 가깝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멀리 가는 걸 안 좋아해요. 또 환경이나 에너지,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화석연료를 쓰는 행위 자체에도 조금 거부감이 생겼고요. 내가 멀리 가려면 무조건 화석연료를 쓸 수밖에 없잖아요. 가까이 있는 데서 활동한다고 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가능하면 안 가자, 너무 자주 가지 말자. 지역만의 강점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수도권에서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어려움보다는 아쉬움이 있죠.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안이나 사회적 이슈가 언론에 나오는 양이 현저히 적어요. ‘이걸 어떻게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지?’ 하는 고민이 있고요. 또 부산에서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 있어요. 하는 사람이 계속하고, 뭘 해도 오던 사람이 오고. 현안이 적지도 않거든요.  특히 부산은 밑에 핵문제가 크게 있고, 4대강 때문에 녹조 이런 것도 있고, 노동문제가 전국적으로 있고, 개발문제도 여전히 있고. 너무 많아가지고. 사업도 여러 개 있는데 활동하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게 아쉽다. 그런 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울산에 거주하는 성조씨, 10년전 부모님댁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사라져서 찾고자 만들었던 전단지. 당시 일주일만에 돌아왔다고… 당시 강아지 찾는 전단지 이면지에 인터뷰 내용을 인쇄해온 성조 씨>.<

“서로를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들이 필요해요”

강언주: 부산·경남의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이 좀 더 연결되고 협력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임성조: 저도 약간 따로따로 운동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기자회견 때 서로 와주는 것 말고 진짜 하나의 프로젝트를 서로 다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러려면 서로에 대해서 좀 알아야 뭔가 교류를 할 수 있잖아요. 서로 맡은 일이 너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내 할 일도 바쁜데 그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고. 그러면 서로 모르니까 협력도 안 되고 계속 개별운동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렵지만 나와 많이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그게 협력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강언주: 저도 되게 비슷해요. 제가 작년 올해 파랑에서 <인권운동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요.  각 부문운동에 대해 돌아가면서 발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러면서 단순히 ‘저 단체는 이런 활동을 한다’를 넘어서 그 활동가가 가진 고민, 나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알게 돼요. 그런 시간이 계속 필요할 것 같아요. 서로 깊이 있게 아는 시간. 그러다 보면 나만의 부문운동을 넘어서 부산 지역의 운동과 활동가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도 같이 볼 수 있게 되고요.

임성조: 그런 만남들이 정기적으로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협력할 방법이 그거밖에 없다고 봐요. “협력해”라고 한다고 뭐가 될 건 아니니까.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뭐라도 가능하겠죠. 

“활동가들이 잘 쉬었으면 좋겠어요”

강언주: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활동가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잖아요. 활동가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임성조: 저는 활동가가 아니기 때문에 늘 제 위치를 후원자나 지원자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활동가들이 힘들어하는 걸 많이 봤어요. 힘든데도 꼭 해야 된다는 의지로 하다가 결국 진짜 병을 앓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요. 부산반빈곤센터의 윤응태 전 대표가 참 안타깝게 돌아가셨는데, 그걸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될까? 저건 아니지 않나? 누가 옆에서 말려줘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지금 현재 하고 있는 사회운동, 사회변화가 중요하더라도 건강을 우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이런 당부를 활동가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심적이든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피로가 쌓이면 꼭 쉬어라. 모든 일을 다 놓고. 지금 급박한 현안이라도 건강에 해가 되는 것 같거나 마음이 너무 아프면 무조건 놓고 쉬라고 하고 싶고…그리고 또 돌아오라는 말도 저는 안 하고 싶어요. 좀 쉬다가 생각해보니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안해도 된다고 봐요. 내 건강을 해치면서 억지로 하는 운동은 오히려 사회운동에도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유롭게 다른 운동이나 다른 삶을 살아도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강언주: 그 말에 저는 너무 공감해요. 활동가들이 왜 아픈가를 생각하면 과도한 노동이나 스트레스도 있지만, 내 동료가 아플 정도로 무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서로 살피지 않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활동가가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조직이 건강할 리가 없잖아요.

임성조: 맞아요. 아무리 중요한 활동이라도 무리하게 해서 성과가 정말 잘 나는지도 따져봐야죠. 자유롭게 쉴 수 있게 보장하고 과로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조직에서 지켜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저는 그 말을 제일 하고 싶습니다. 힘들면 쉬어라^^

아주 잘 알지는 못해도 그래도 성조씨를 꽤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몰랐던 사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생각도 꽤 많이 알게 됐다. ‘아, 성조씨는 이런 마음으로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었구나.’ 그런 것들. 나는 이제야 성조씨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주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원하는 사람’으로 꾸준히 곁에 있어온 성조 씨. 나와 우리에게 연결된 사회문제라서 외면할 수 없다는 성조씨. 이미 건설되어버렸지만 언젠가는 강정해군기지가 사라지고 다시 아름다운 구럼비를 보고 싶다는 성조씨. 그리고 활동가들이 아프지 않고, 잘 쉬고, 스스로를 잘 돌보며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성조씨. 

성조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왔다고 했지만 그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들이 쌓여, 우리의 운동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었는지 생각해본다. 그동안 성조 씨가 함께해준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가득하고 넘쳤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된 성조씨에게, 꾸준히 우리 곁에 함께해줘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새알미디어의 강언주/누리달 활동가는

기후·환경정의 새알미디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알권리운동을 이어가던 중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계기로 탈핵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탈핵과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만나고 배우고 연결되고 있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6살 어린이로 인해 네모가 동그라미가 되는 기적을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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