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활동가] 김찬 / 우리가 주인공

지금 파랑은

우리가 주인공

기타란에 체크

중학교 2학년 찬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즈음 나가던 모임에서 ‘어린데 제법 기특하네?’ 라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에게 실망한 터였다. 인권을 지지하는 활동가라면서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것도 별로였다. ‘나이주의’로 검색을 했더니 낯선 단체가 떴다. <아수나로>였다. 아수나로라는 말은 소설 속 청소년이 만든 해방구에서 따왔다고 했다. 왜 하필 일본 소설이지? 좀 그렇군 싶었다. 그런데 게시된 글을 보면 볼수록 이들의 활동과 주장이 흥미로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게시된 글을 샅샅이 읽었다.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졌다. <아수나로>에 가입하겠다고 마음먹고 가입 신청을 클릭했다. 그런데 신청서에 소속되고 싶은 지부를 선택하라는 것이 있었다. 부산은 없었다. 다행히 ‘기타’란이 있었다. 기타란에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었다.

– 지부를 만들고 싶어요.

찬은 그 칸에 체크했다.

‘그냥 모임이니까 어렵진 않겠지.’

그랬더니 경남에 있는 청소년운동 활동가로부터 연락이왔다. 당시 경남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운동이 한창이었다. 부산의 찬은 경남의 집회에 가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찬이 청소년운동의 매력을 느낀 건 이때부터였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의 시작은 2020년 2월이다. 둘이든 셋이든 적은 수라도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을 하였다. 초기에는 <아수나로>의 약속이라든지 이때까지 해왔던 활동과 연혁 등을 교육받았고 회의도 많았다.

잿녹과 이라다가 들어온 2021년 이후에는 비교적 활동이 활발해졌다. 꾸준히 회원모임을 하고 선전전도 꾸렸다. 특히나 ‘부산 학생 저항의 날, 부산 학생 인권 공동 행동’을 이끌어낸 것은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지방 선거 때 <아수나로> 전국 지부들이 투표장 1인 시위를 하게 되었다. 찬은 청소년 선거운동 사건으로 두 번이나 경찰서를 다녀와야 했다.

찬의 부모님은 사회운동에 대한 믿음과 지지가 있는 분들이지만 자식의 일 앞에서는 염려가 없을 수 없다. 두 분은 대학 시절 역사연구 동아리에서 만나 학생운동을 함께했다. 부모님은 경찰서에서 나올 때도 별말씀 없더니 요즘은 찬의 일을 걱정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냐, 그런다고 세상이 금방 바뀌는 게 아니야. 대중들과 함께해야 해…. 한편으로는 찬이 지칠까 봐, 또 한편으로는 하나뿐인 아들의 미래에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사실 찬은 중학교 졸업을 앞둘 즈음,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운동을 이어갈까도 생각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활동에 할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심을 못 하고 얼결에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교생활과 청소년 인권 단체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부모님은 현장이 없는 활동은 공허하다는 말씀을 하였다. 입시를 앞둔 찬의 진로를 염두에 둔 말이기도 하다. 찬은 사실 스스로도 고민이 많다. 요즘 들어 공부를 완전히 등한시하면 안 됐던 거였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도 한다.

“학교 다니면서 시간 안배는 잘 되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에는 어차피 공부하려고 해도 집중이 잘 안 되잖아요. 그럴 때 노트북 켜고 1시간 정도 잡무를 처리할 수 있어요. 아수나로의 회계라든가 이런 거.”

정해진 규칙과 일과표가 있는 학교생활이 찬에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법을 키워준 셈이다.

국어시간에 배우는 문학 작품의 재미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회의나 독서 모임도 많았던 데다 문건 같은 걸 늘상 봐와서일까. 의외로 다른 친구들은 어렵다고 하는 비문학이 찬에게는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온다.

누구라도 비청소년이 되는 일은 피할 수가 없다. 다른 운동과 다르게 청소년운동은 당사자인 기간이 한시적이다. 찬은 딱 그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비청소년이 되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어떻게 이어갈지 늘 고민한다.

좀 멋진 애들

찬은 2022년 3월 24일에 걸려온 전화를 또렷이 기 억한다. 실업계 고교인 D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아수나로>에 상담 요청을 해온 것이다. D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협박에 가까운 지시를 받은 사건이었다. 선도부를 담당하는 그 교사는 해당하는 학생 11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당장 머리를 자르고 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시민단체나 활동가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러다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아수나로>를 찾게 된 것이다.

찬은 D고등학교 학생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차분히 대답해주었다.

“맞아요. 생각하시는 게 맞고요, 학교 규제가 부당한 거에요.”

헌법상의 권리가 이러이러하며 유엔 아동 권리협약에도 위반되는 내용이며,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불법적인 규제이고 그렇게 머리 모양을 가지고 처벌하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어떻게 할지를 물어왔다. 찬은 교내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돌려보라고 했다. 물론 학교 측은 모르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D고등학교 학생으로서는 구글 설문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무엇보다 설문에 넣을 내용을 어떤 문장으로 채워야 할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찬은 D고등학교 학생이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를 대화를 나누며 정리해나갔다. 전화로만 주고받는 말이었지만 가슴이 뛰었다. 설문지 문안을 다듬고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를 찾아 정리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어 좋았다. 통화를 마치고 머뭇거릴 틈도 없이 빠르게 초안을 만들었다. 비문이나 오타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본 뒤에 재빨리 그 학생에게 설문 내용을 보냈다.

그리고는 집으로 뛰었다. 그날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지만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부터 켰다. 간결하면서도 전달 내용이 확실한 웹자보를 만들었다. 그때는 아수나로 이름은 쓰지 않고 D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 ‘익명’으로 넣었다. <아수나로> 로 전화를 걸어온 D고등학교 학생은 그렇게 만들어진 웹자보와 구글 설문지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아수나로> 회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D고등학교생 420명 중에 무려 120명이 부당한 두발 규제를 반대한다는 내용에 동의한 것이다. 이름도 다 다르고 전화번호도 다 달랐다. 가명이나 허수가 없는 진짜배기였다.

‘당장 만나야겠다!’

만남 장소는 사상으로 정했다. 사상 쪽은 마을교육 공동체가 많은데, 그중 한 학부모 단체 활동가와 통화해서 장소를 빌릴 수 있었다.

맨 처음 전화를 걸어온 사람과 그의 친구까지 D고등학교 학생 둘이 왔다. 아수나로는 두발 규제가 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안에 보통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려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계획을 세웠다. 우선 소모임을 만들자고 결의했고 4월 15일에는 학교 앞에서 선전전을 하기로 했다.

선전전 날에 <아수나로>는 현수막을 출력하고 연대 단체 활동가까지 20여 명이 학교 앞으로 갔다. 찬은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저희는 D고등학교 소모임을 지지하는 학생들입니다.”

당사자인 D고등학교 학생은 얼굴을 가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많은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이거 진짜 문제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주민들과 학생들을 향해서도 외쳤다. 어느 교사가 담배를 피우면서 한심하다는 듯 그 모습을 꼬나봤다. 당장 미장원 가서 머리 자르고 오라며 윽박질렀던 주인공이었다.

<아수나로>와 D고등학교생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 요구안을 정리해서 교육청에 보낸 것이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이 건은 해당 학교에서 일어난 사안이므로 해당 학교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자체적으로 알아서 처리하라, 교육청은 권한이 없다 어쩌고저쩌고.

<아수나로>는 학교 앞에 현수막까지 달았지만 후속 행동을 강력하게 끌어내진 못했다. 들불처럼 막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생각보다 학생이 많이 모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간간이 소모임을 했고 방학이면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함께 놀며 어울렸다.

한 번은 <아수나로> 주최로 설명회를 개최했다. 회원이 10명도 되지 않는 단체지만, 찬은 <아수나로>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꿈꾸는 곳인지 이야기 했다.

“저희 그렇게 막 이상한 단체 아니고요, 돈도 없어서 많이 쪼들리는데 우리도 여러분이랑 같은 또래고요.”

설명회를 다 들은 누군가 툭 뱉었다.

“학교 왕따 애들이 하는 것 같네.”

웃음이 나왔다.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수나로>가 지향하는 바에 관심이 있다는 눈빛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수나로>가 그다지 이상한 단체가 아니고, 특히 선생이랑은 다르다. 꼰대 같은 단체는 아니라고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좀 나더라고요. 그분들이 낸 소문이겠죠.”

‘좀 멋진 애들’이라는 소문은 <아수나로>가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찬은 D고등학교 학생들이 <아수나로>와 소모임을 하고 함께 어울리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청소년운동 안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기까지 했다. 같은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활동가와 당사자가 서로 대화하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울리는 과정에서 <아수나로>가 성장했다고 봐요.”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교육청 간담회 때였다. 사실 떨리는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왜 이렇게 일 처리가 늦냐, 학생들 졸업하니까 규정이 바뀐다 등 이런 문구와 함께 거북이 이모티콘을 넣은 현수막을 만들었다. 나름대로 사전준비를 했지만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학교와 어른에게 주눅 들어 있던 그가 장학사 앞에서 당당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멋졌다.

마침 인권에 관심이 많은 기자 하나가 D고등학교 사건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부산일보에 기사가 나가자마자 페이스북에 댓글이 400개가 넘게 달렸다. 많은 사람이 기사를 공유하자 학교 측은 난감해졌다. 결국 휴대전화 규제를 없애고 두발 길이에 대한 규제도 사라졌다. 나머지 규정도 완화되었다.

청소년 당사자가 주인공이 되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사람이 그들의 주장에 호응했던 경험은 <아수나로>와 D고등학교 학생들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고, 그것으로 인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더디고 서툴러도

찬은 <아수나로>의 활동은 여럿이 함께한 것인데 자기한테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낄 때 부담스럽다. 실제로 많은 일을 찬이 도맡거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에 관여한 것은 맞다. 하지만 너무 독점적으로 일을 맡아 다른 활동가들의 성장을 가로막은 게 아닌지, 더디더라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만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

“다른 운동에서는 선배 활동가나 후배가 조력하는 관계가 있겠지만 우리 청소년은 조금 다른 지점이 있어요. 한 번도 일해본 적 없고 책임져 본 적 없고 기획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운동이잖아요. 어쩌면 그런 부분이 되게 매력적이에요. 미성숙한 사람들이 <아수나로>에 오고 마찬가지로 미성숙한 저희가 어떻게 같이 일을 해나가면서 성장할 것인가, 아주 세세한 고민이 많이 필요한 운동이라는 거죠.”

실무를 자신이 처리하는 게 빠르다는 이유로 혼자 독점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든다. 다른 활동가의 성장을 방해하고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연대체 회의나 기자 회견 같은 일은 기성 사회가 구축한 시간의 시스템에 따라 일정이 잡힌다. 그런데 오전 잠이 많다든가 혹은 그런 형식적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 활동가는 자꾸만 실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섰다. 매번 나이를 묻는 어른들과 회의를 하는 일도 쉽지가 않다는 걸 안다. 다른 활동가보다 차라리 익숙한 내가 참석하는 게 낫겠지 하며 찬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를 배려한다고 했던 것들이 그 사람에게서 성장의 기회를 가로챈 것이 될 수 있다.

“사실 제가 다른 동료 활동가들한테 보호주의적 태도로 대했던 거죠. 그런데 말은 계속 이렇게 하거든요. 늦을 수도 있다, 더딜 수도 있다. 너무 보호주의적으로 되지는 말자…. 저의 청소년 인권 활동은 이걸 몸으로 깨달아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생물학적 나이로 비청소년이 되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다. 찬은 비청소년으로 자라며 삶의 태도가 형성되고 있다. 다른 사람, 비청소년 활동가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 청소년 당사자로서 나이주의와 보호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활동의 경험은 ‘더디고 서투르더라도 함께 가는’ 운동의 본래 정신을 몸에 새기고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계신데요, 개인적으로 학교가 어떤 곳이었나요? 또 어떤 곳이었으면 하세요?

저에게 학교는 답답한 공간이었어요. 학교라는 배움터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 학생들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사람은 자신이 머무르고 관계 맺는 공간에 전혀 관여할 수 없을 때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끼잖아요. 학교가 그래요. 학교는 사회가 정한 ‘정상적인 삶’에 청소년을 가둬 두기 위해 운영된다고 생각해요. 학교가 만들어진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에 필요한 노동자상에 부합하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학교가 만들어진 것처럼요.

학교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청소년의 삶은 입시경쟁에 순응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학교생활 규정을 잘 지키고 친권자와 교사의 지시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경쟁에서의 낙오자, 학교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고 교권을 침해하는 ‘무서운 요즘 10대들’이라는 낙인을 얻게 되고요.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목격했어요. 시험 기간이면 스터디 카페에서 종일토록 공부하는 친구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밤 11시까지 학원에 있는 친구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에 고통받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한편에서는 공부에 완전히 손을 놓고, 학교 수업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면이 있고요. 학교 수업을 왜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잃은 거죠.

대학이 갖는 의미도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요.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지역거점국립대학교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대학 가기가 쉬워요. 지방대들이 정원 미달로 폐교될 위기에 처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학생들이 보기에 학벌주의가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지방대를 가는 건 의미가 없어 보여요. 부산대가 정원 미달이 났다는 기사가 요즘 심심찮게 올라오는데요,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메리트 외에는 지역거점국립대학교가 가지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니면 차별받는 건 여전하니까요. 이제는 서울에 있는 대학도 의대나 약대 같은 인기학과가 아니면 의미 없다고 하는 시대가 됐어요.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믿음이 심화되고 있으니까요.

그런 경쟁에서 대다수는 포기하게 되죠. 내가 좋은 학과에 가지도 못할 것이고, 지역거점국립대학교에 가지도 못할 것이고, 인 서울을 하지도 못할 것이고…. 가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엄습해오죠.

입시경쟁의 최일선에서 압박을 느끼고 있는 당사자 학생들은 이런 현실 속에서 정말 무력해 보여요. 알고 보면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아요.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거나 잘하지 못해서 내신을 망쳤는데, 그러다 보니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가도 의미 없는 대학 같은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무력감에 빠지는 거죠. 고3이 되면 수능 대비 교재로만 수업을 하니, 입시를 포기하고 그냥 지방의 아무 대학에 가겠다고 마음을 정리한 친구들은 잠을 자요. 시간이 얼마나 아깝게 느껴질까요? 왜 이런 교육을 학생들은 받아야 하는 걸까요?

그래서 저는 교육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데가 아니면 의미 없다는 식의 사회통념이 더 강해지기 전에 입시경쟁을 폐지해야 해요. 대학을 무상화 평준화하고, 이를 통해 입시 체제를 해소하고, 경쟁 교육을 멈춰야 해요.

학교는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입시 위주의 지식만을 전달해서는 안 되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미숙하잖아요. 살아가면서 실패와 더 나은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삶의 역량을 쌓아가는 건데요, 그래서 학교는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해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체계와 틀을 마련하는 것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과 혐오의 위협 없이 싸워도 보고, 친해져도 보고, 서로 갈등을 조정해보기도 하면서 인간관계를 자유롭게 맺을 기회가 있어야죠. 무언가를 스스로 준비해서 책임져보는 경험도 필요해요. 상상으로 기획만 해보는 과제가 아니라 실제로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책임져보는 프로젝트 같은 경험요. 또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도 다양해져야 하고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성적 실천 등 섹슈얼리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탐색할 기회,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차별 없이 관계 맺어보는 경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와의 만남을 통해 직업의 다양성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학생들에게는 ‘미숙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 다만 우리는 당신이 더 나은 실패와 경험을 통해 조금은 더 성숙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기관이다. 그리고 그 미숙함과 실패의 기준은 입시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해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입시를 지도하고, 생활 통제만 하는 교사가 아닌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으로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난 교사-학생의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을 저는 고등학교에서 여럿 목격했어요. 그런 교사와 학생의 관계, 그런 학교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많은 청소년들에게 <아수나로>는 어떤 곳이기를 바라세요?

저는 <아수나로>를 통해 성장했어요.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건 여전히 서툴지만 <아수나로>라는 공동체를 통해 배울 수 있었고, 해보고 싶은 일을 스스로 기획해서 동료들과 합의하고 그 결정을 바탕으로 책임져보는 경험도 했어요. 또 답답한 학교 현실에 당장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공감해주고 학교를 욕해주는 이들을 <아수나로>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런 공동체의 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쳐나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고요.

이런 경험들은 저를 조금 더 성숙한 사람,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주체적인 사람, 저항하고, 행동하고, 서로를 돌보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아수나로>가 하고 있고요.

저는 더 많은 청소년이 이런 경험을 할 때, 청소년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아수나로>라는 공동체를 경험하는 청소년이 늘어날수록,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모일 거예요.


활동가로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우선 <아수나로>가 다양한 청소년들에게, 특히 인권 감수성이 낮은 청소년들에게도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해보고 싶은 행동을 해보고, 내보고 싶은 목소리를 맘껏 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실패한다는 두려움 없이 해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답답한 현실에 함께 욕해주는 이들이 있는 공동체로 느껴지면 좋겠어요.

저는 지속 가능한 청소년 인권운동 조직을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더 많은 청소년과 함께할 수 있는, 더 많은 청소년이 거쳐 갈 수 있고, 남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청소년운동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나갈 동료들과 함께요!

그 과정에서 권위적이고, 소통을 못 하고, 위계적인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경험이 성숙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 성숙한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성장할 기회를 서로가 서로에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지키고 싶어요. 동료들과 또 청소년운동을 새로 접하는 청소년 활동가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어요. 또 제가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경험과 역량들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고요. 그럴 수 있을 만큼 새로운 청소년 활동가들이 많이 들어오는 지속 가능한 청소년 인권운동을 만들고 싶어요.

지역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이 오래 살아남는 사례가 그리 많지 않아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죠. 지역에서 청소년 인권운동이 시작되면 몇 해 가고 만다는 말들에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음을 동료들과 함께 보여주고 싶어요. 청소년 인권운동이 꾸준히, 은은하게, 오랫동안, ‘지역에서도’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올해는 어떤 활동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마음을 쓰고 계세요?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2020년 이후부터 활동해오면서 조직문화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마음을 쓰고 있어요.

지부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활동가가 적은 상태로 활동을 했어요. 단체의 대표성을 일부 가지게 되는 연대체 담당부터 단체의 자잘한 운영 실무까지 거의 제가 맡았고, 사업 기획이나 사업 집행도 거의 제가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일의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가 많이 독점했어요. 그리고 일에 대한 정보가 저에게 집중되다 보니, 발언권이나 조직 내 권한도 저에게 몰리기 시작했고요. 최근 새로운 회원이 많이 들어오고, 활동가들이 늘어나면서 역할을 나눌수 있는 상황이 되고 지금까지 형성되어온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과 문제 제기, 토론이 조직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조직문화에 대한 토론을 통해 개선점을 합의하고, 바꿔나가는 데에 올 한 해를 보내지 않을까 싶어요.

한편으로는 자체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다른 운동과 연대하는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최근 부산에서 기후 정의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데요. 청소년 인권운동이 청소년 인권의 언어를 가지고 교차성을 바탕으로 기후 정의 운동의 한 주체로 결합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모든 청소년에게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전국 곳곳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 2006년 출범한 청소년인권운동 전국 단체입니다. 아수나로는 학생인권, 입시경쟁 폐지, 청소년 참정권 보장, 나이주의와 청소년 보호주의 철폐를 위해 청소년 당사자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동1로 13, 2층(다양성실험실)
전화번호: 070-4512-9216(대표번호)
홈페이지: asunaro.or.kr

5지금 파랑은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