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5.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13개 지역을 돌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린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김민준 인터뷰 (기록: ‘청소년인권행동-부산퀴어행동’ 김찬)

부산·울산·경남의 13개 지역을 돌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캠페인을 이어온 단체가 있다.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영남퀴어’의 운영위원장 김민준 씨를 만났다. 늘 곁에서 지켜본 그에게서는 한번 시작한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려는 태도가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었고, 대화를 나누며 민준 씨가 품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가닿을 수 있었다.

🏳️‍🌈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무지개 깃발 세우기

부산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지방’으로 여겨지며 소외된 곳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다 보면, 부산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인 대도시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민준 씨는 영남 지역에서 대도시가 아닌 곳을 찾아다니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영남퀴어와 그 전신인 YQAY의 홈페이지는 2018년 9월 3일을 시작으로 수차례 진행된 성소수자 가시화 캠페인의 후기로 빼곡하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 기간을 빼더라도 5년 넘게 이어진 활동이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이런 걸 열어줘서 감사합니다.” 

“부처님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성소수자 가시화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김민준: 영남퀴어는 2023년에 만들어졌어요. 사실 이 단체의 시작은 2018년이었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모임 영남권 ‘YQAY’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어 성소수자 가시화 거리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진행했어요. 코로나19로 활동이 중단됐는데, 그때 활동했던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 만든 단체가 영남퀴어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때의 활동을 이어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13개 시군구를 돌면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활동을 했죠. 크게 보면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가시화 캠페인, 그리고 한국에서 혼인평등(동성혼 법제화) 운동을 이끌고 있는 ‘모두의 결혼’과 협력해 진행한 서명운동 캠페인으로 나눌 수 있고요.

김찬: 한 지역도 아니고 13개 지역을 순회하셨으니 기억에 남는 일이 정말 많으실 것 같아요. 시작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준: 단체 이름이 영남권인데 부산, 울산, 대구 같은 큰 도시만 다니면 섭섭하잖아요. 🙂 사실 대도시는 사람이 많다 보니, 부족하더라도 다양성에 동의하는 시민들을 조금은 만날 수 있단 말이죠. 이를테면 ‘성소수자’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찍힌 피켓을 보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래서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어떨까 궁금했어요. 사람들의 여론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선이 얼마나 다를지가요. 그리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려면 활동이 좀 더 간소해질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캠페인도 1인 시위로 바꾸고, 서명운동이나 콘텐츠도 한두 명만 있으면 진행할 수 있도록 규모를 줄였어요. 교통비도 그렇고,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면 제약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안동 축제에도 가보고, 경남 진주에도, 고성에도 가보고, 여러 지역을 돌았어요.

김찬: 안동 하회탈 축제 때 가신 거예요? 엄청 큰 축제 아니에요?

김민준: 네, 사람이 많더라고요. 일단 저도 그 축제를 구경했어요. 사람들이 행진을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캠페인하는 저를 구경하는 거죠. 축제에 참여한 어느 회사 직원분이 나와서 “왜 여기서, 내 가게 앞에서 이런 걸 하냐”고 따가운 말씀을 하시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진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찬: 여러 지역을 다니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장면이 있을까요?

김민준: 저희는 캠페인을 열 때마다 지나가시거나 구경하시는 분들께 꼭 포스트잇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리거든요. 그러면 세 분 중 한 분은 꼭 쓰시는 말이 있어요. 캠페인 당일에 쓰지 못하신 분들은 SNS에 댓글로 남겨주시기도 하고요.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이런 걸 열어줘서 감사합니다”라고요.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려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죠. 앞으로는 지역에서 퀴어 행사가 지금보다 더 많이 열릴 거라고 생각해요. 부산에서도 몇 년 만에 퀴어퍼레이드가 열렸고, 퀴어 영화제도 새로 열렸으니까요. 더 다양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어, 우리 지역에도 퀴어 활동가들이 오네”, “어, 우리 지역에도 퀴어가 있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해운대 벡스코 전시장 앞에서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 메리퀴어스마스, 부산퀴어퍼레이드… 더 많은 문화 행사가 열렸으면

2025년 11월 23일, 전포동 일대에서 부울경퀴어웨이브 등의 주최로 ‘부산 퀴어퍼레이드 2025’가 열렸다. 2017년과 2018년 ‘부산퀴어문화축제’가 두 차례 개최되었지만 해운대구청과 기독교 혐오세력의 방해로 중단된 이후, 오랜만에 열린 퀴어들을 위한 “큰” 축제였다. 영남퀴어는 이 행사에 공동주최 단체로 함께했고, 민준 씨는 퍼레이드 트럭에 올라 사회를 보며 행진을 이끌었다.

민준 씨는 부산퀴어퍼레이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그 직전 겨울에 열렸던 ‘메리퀴어스마스’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메리퀴어스마스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 영남퀴어의 전신인 YQAY 주최로 열린 행사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2024년, 부산 지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로 다시 한번 열리게 됐다.

“퀴어 커플도 크리스마스를 당당히 즐기며 데이트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퀴어이면서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텐데, 퀴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메리퀴어스마스

김찬: 2018년에 메리퀴어스마스를 시작했을 때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김민준: 메리퀴어스마스는 코로나19 이전에 영남퀴어의 전신인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모임 영남권 YQAY’에서 시작한 행사였죠. 크리스마스 하면 보통 교회나 연인과의 데이트를 떠올리는데, 거기에 퀴어를 얹어보고 싶었어요. 퀴어 커플도 크리스마스를 당당히 즐기며 데이트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퀴어이면서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텐데, 퀴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거예요.

2018년과 2019년의 메리퀴어스마스는 토크쇼, 지역 예술인들의 다채로운 공연, 연대 발언, 그리고 서면 한 바퀴를 도는 행진까지, 작지만 알찬 구성으로 진행됐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를 비롯한 여러 청소년이 그곳에서 웃고 즐겼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김민준: 2018년과 2019년에 열었을 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공연하러 오신 분들도 다양했고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분이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영화 《주토피아》의 경찰관 ‘주디 홉스’ 코스프레를 하고 오셔서 축제를 즐기셨죠. 다들 크리스마스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지역에 퀴어 행사가 부족해서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겠지만, 크리스마스에 퀴어 행사를 연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해서 더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코로나19로 행사를 열지 못했을 때 아쉬움이 컸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동안 열리지 못했던 메리퀴어스마스. 하지만 ‘다시 한번 열어보자’는 마음으로 민준 씨는 지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에 공동주최 제안서를 보냈다. 16개 단체가 뜻을 모아 이름을 올렸고, 지역 퀴어단체를 중심으로 행사 준비가 시작됐다.

김민준: 메리퀴어스마스는 계속 해보고 싶은 행사였어요. 코로나 때문에 못 했던 것뿐이고요. 그래서 여유가 되자마자 다시 열려고 했죠. 열어보니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100명 정도가 참여했고, 심지어 반대 집회도 열렸고요. 반대 집회가 열렸다는 건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때 혐오세력들도 얼마나 놀랐겠어요. “크리스마스, 헤헤헤. 올해도 열심히 준비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얘들아, 동성애자들이 서면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연단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 사람들은 딱 봐도 남포동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사실 처음 메리퀴어스마스를 준비할 때부터 그런 상상을 했거든요. 혐오세력들이 얼마나 놀랄까 하고요.

실제로 맞은편에서는 혐오세력의 반대 집회가 열렸다. 메리퀴어스마스가 문화행사의 탈을 쓰고 동성애를 일반화·합법화하려 하며, 이러한 반(反)성경적 행사가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애초에 메리퀴어스마스의 목적은 크리스마스에 함께 모여 즐겁게 노는 것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퀴어는 크리스마스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맞서는 성격도 띠게 됐다.

민준 씨에게 이 경험은 부산에서 더 다양하고 규모 있는 퀴어 문화 행사가 열리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부산 퀴어퍼레이드 2025’를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김찬: 작년에 부울경퀴어웨이브와 함께 열었던 축제가 부산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열린 행사였잖아요. 그 의미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민준: 부산퀴어퍼레이드가 열리기 직전 겨울에 메리퀴어스마스를 했잖아요. 그때 난 기사를 보니 “5년 만에 열린 부산의 성소수자 광장”이라는 헤드라인이 실려 있더라고요. 사실 개최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 다음 해에 부산퀴어퍼레이드가 열린 거죠. 이런 행사가 어떻게 보면 시작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2026년에도 이어지고, 2027년에도 열리고, 그렇게 꾸준히 지속된다면, 혐오세력과 해운대구청에 의해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예전 퀴어문화축제만큼의 규모로도 열릴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조금씩 규모를 키워가면서요. 작년에는 부울경퀴어웨이브가 중심이 되고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이 돕고 지역 단체들이 부스로 참여하는 형태였는데, 지역 단체들과 더 힘을 모아 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더 많은 퀴어 문화행사가 부산에서 열리지 않을까 싶고요.

김찬: 퀴어 문화를 키워서 지역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계신 게 있나요?

김민준: 일단 퀴어 문화행사가 더 많이 열린다면 부산이라는 지역에도 분명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하나도 확정된 건 없지만요. (웃음) 이를테면 휴가철에 맞춰 퀴어 행사를 열어보고 싶어요. 도심 속 도로나 광장보다는, 부산이니까 해변가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축제를 해보는 거죠. 8월이면 휴가철이잖아요. 물론 활동가들은 힘들겠지만요.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시기에 우리도 퀴어영화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봐요. 부산국제영화제가 2주 정도로 길게 열리는데, 우리도 첫째 주는 퀴어 단편 영화, 둘째 주는 동성혼이나 트랜스젠더 관련 영화를 잡고 토요일마다 여는 거죠. 국제영화제 주간에 맞춰서요.

📽️ ‘오늘의 인권’ 지원사업을 통해 열린 ‘2025부산퀴어영화제’

“일상에서 퀴어 문화를 문턱 없이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많아져야겠다고 느꼈어요.”

2025 부산퀴어영화제 메인포스터

민준 씨는 ‘축제’를 여는 사업을 여럿 경험하며 고민이 확장됐다고 한다. 지역을 바꾸는 방법으로서, 퀴어문화가 지역에서 확산되고 공유되는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 고민은 실제 사업으로 이어졌다. 2025년 8월 30일과 31일 이틀간 열린 ‘2025 부산퀴어영화제’다. 첫날에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을 함께 보고 퀴어 예술가를 초청해 토크쇼를 했고, 이튿날에는 〈럭키, 아파트〉를 관람한 뒤 감독을 불러 대담을 나눴다. 퀴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영화 속 명대사와 명장면의 물건들을 바탕으로 만든 스티커도 배포했다. 2020년 이음영화제 내 팀 사업으로 진행됐던 ‘부퀴영화제(부산퀴어영화제)’ 이후 5년 만에 열린 퀴어 영화제였다.

김찬: 2025 부산퀴어영화제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민준: 2025 부산퀴어영화제는 파랑에서 하는 오늘의인권 지원사업을 받아 진행됐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퀴어문화축제는 물론이고 퀴어영화제 같은 문화행사도 급격히 줄었잖아요. 그래서 부산에서 가장 쉽게, 먼저 열어볼 수 있는 퀴어 행사가 뭘까 고민했어요. 마침 부산퀴어퍼레이드가 준비되고 있던 참이라, 퍼레이드와 영화제를 비슷한 시기에 열면 어떨까 싶었죠. 또 한편으로는 진입장벽이 가장 낮아 보이는 사업이었어요. 물론 해보고 나니 전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요. 😅

김찬: 준비 과정이 궁금하네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김민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다들 영화제를 처음 해보는 활동가들이다 보니 영화관을 어떻게 대관하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의 공간이나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교육관처럼 독립적인 대관기관을 통해 장소를 마련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아무튼 CGV, 메가박스, 영화의전당, 무사이극장 같은 영화관을 알아본 끝에 영화의전당과 메가박스를 선정해 진행하게 됐어요. 그런데 리클라이너석*이라는 걸 몰랐고, 단차가 커서 아쉬웠어요.

*리클라이너석: 종아리 받침대가 펴지고 등받이가 눕혀지는 좌석

GV 때 섭외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목표로 정해둔 분들이 참여를 못 하게 돼서, 그분들이 추천해 주신 분들을 모셔오는 과정이 있었죠. 조금 더 다양한 분들을 모시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어요. 또 제가 다른 영화제 준비에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알게 된 건데, 영화 선정 기준을 세우는 방식부터 이미 틀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스크리너’라고, 미리 영화를 보고 선정할 수 있도록 작품을 제공해 주는 게 있는데 그게 작은 영화제에도 제공되는 줄 몰랐고요. 그래서 이런 실무가 필요하다는 걸 활동가들이 깨닫는 계기가 된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찬: 아쉬웠던 점 말고, 좋았던 점도 있었나요?

김민준: 활동하면서 평소 본 적 없는 분들이 영화제에 많이 오셨어요. ‘어, 이분이 왜 오셨지?’ 싶을 정도였죠. 흔히 인권운동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퀴어 당사자분들이나, 범일동*에서 주로 노실 법한 분들도 오셨거든요.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영화제를 통해 문화사업이 생각보다 접근성이 좋다는 걸 알게 됐죠. 범일동에 놀러 가기 전에 ‘퀴어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가볍게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일상에서 퀴어 문화를 문턱 없이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많아져야겠다고 느꼈어요.

*범일동: 게이를 위한 클럽, 바 등 업소가 모여 있다. 지역에서 게이들이 모이고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색동투어 in 부산 관람회 진행 모습

지원사업을 받아 영화제를 열어본 경험을 통해, 지역에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영화의전당 대관료가 생각보다 저렴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색동영화판’이라고, 성소수자 관련 단편 영화를 찍는 분들이나 영화계에서 일하는 퀴어들이 모여 퀴어영화제나 프라이드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분들이 부산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하셨을 때 도움을 드릴 수 있었어요. 대관을 도와드리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지역의 인프라도 알게 되고 새로운 관계도 다질 수 있었던 사업이었던 것 같아요.

김찬: 준비 과정이 궁금하네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김민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다들 영화제를 처음 해보는 활동가들이다 보니 영화관을 어떻게 대관하는지도 몰랐죠. 그래서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의 공간이나 부산인권플랫폼 파랑 교육관처럼 독립적인 대관기관을 통해 장소를 마련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아무튼 CGV, 메가박스, 영화의전당, 무사이극장 같은 영화관을 알아본 끝에 영화의전당과 메가박스를 선정해 진행하게 됐어요. 그런데 리클라이너석*이라는 걸 몰랐고, 단차가 커서 아쉬웠어요.

확장을 위한 고민 🤔

“영남 지역을 떠나고 싶은 이유, 혹은 떠난 이유를 물었을 때 1위가 일자리와 학업 문제로 나왔어요. 지역이 소외되면서 생기는 문제에서 퀴어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

13개 지역을 누빈 캠페인은 대도시 바깥의 사람들과 만나는 통로가 되었고, 문화사업은 그동안 인권운동에 무심했던 이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더 넓고 다양한 퀴어들과 만나고자 하는 민준 씨의 고민은 사업 곳곳에 깊이 녹아 있다. 이러한 확장을 향한 고민의 일환으로 영남퀴어가 진행한 사업이 <영남지역 성소수자 실태 및 필요 의제 발굴 조사>다. 이 조사는 지역에서 퀴어인 ‘나’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향을 떠난 이들과 남아 있는 이들은 저마다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김찬: 트위터에서 설문조사 소식을 접했던 것 같은데, 결과가 어땠나요?

김민준: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사실 퀴어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영남 지역을 떠나고 싶은 이유, 혹은 떠난 이유를 물었을 때 1위가 일자리와 학업 문제로 나왔어요. 지역이 소외되면서 생기는 문제에서 퀴어도 다르지 않다는 거죠. 2위가 퀴어 커뮤니티 문제였어요. 커뮤니티라고 하면 단체들이 여는 모임과 행사도 있고, 지역에서 퀴어를 만날 수 있는 업소나 관계망도 있을 텐데, 그걸 다 통틀어 퀴어 커뮤니티라고 했을 때, 그게 부족해서 떠나고 싶거나 떠났다는 응답이 뒤를 잇는 거죠. 그래서 작은 규모부터 시작해 큰 퀴어행사까지 차근차근 늘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영남 지역에서 거주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가족구성권이나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답이 나왔어요. 사실 이 두 가지는 지역에서 우리가 하기 힘든, 국회에서 이뤄져야 하는 문제니까요. 그래서 그다음으로 필요하다고 응답해 주신 항목들에 주목했는데요, 의료 지원에 대한 욕구가 많았어요. 성소수자가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나 심리상담소가 필요하다는 응답이었죠. 이를테면 청소년이 탈가정을 하게 됐을 때, 청소년이면서 퀴어인 당사자가 안심하고 찾아갈 수 있는 쉼터나 복지시설을 발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거예요. 이런 욕구가 구체적인 요구로 모인 것이 ‘의료지도’였는데요. 예전에 퀴어 친화적인 병의원을 발굴해 지도를 만들었던 <성소수자알권리보장지원 노스웨스트 호>가 있었어요. 그런 의료지도를 만드는 것을 포함해, 성소수자 친화적인 상담소와 병의원, 문화기관 등을 찾아 조사하고 연락이 오면 연결해 주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어요.

김찬: 조사를 통해 또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계시군요. 방점을 두고 계신 부분이나 고민이 있으신가요?

김민준: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에서 잘해 주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지역 퀴어 모임들을 보면 청소년 참여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에서는 광주퀴어문화축제나 서울퀴어문화축제 같은 데 가면 행사 부스도 운영하지만, 청소년들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대관하신대요. 수요가 엄청 많대요. 50명, 70명씩 모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부스보다 따로 운영하는 모임 공간에 사람이 더 많이 와서 활동가들이 거기에 더 집중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청소년들과 이야기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요. 그런 사업을 한번 기획해 보고 싶어요. 같은 맥락에서 탈가정 청소년이나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지도 사업도 고민하고 있고요.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 :https://hydbusan.com/

김민준 개인에 관한 이야기 💬

“예전만큼 활동을 못 하고 예전만큼 뜨겁지도 않은데 인권운동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 계속했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이 있어요. 힘든 건 당연하다. 힘든 건 당연한데, 중요한 건 그 힘듦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품는 거라고 생각해요. 품고서 ‘아, 힘드네’ 하고 다른 걸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단체와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나니, 자연스레 화제는 민준 씨 개인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매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들었지만 민준 씨 개인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개인적인 안부를 물어본 적도 많지 않았다.

김찬: 이제 ‘나’의 이야기로 넘어가봅시다. 활동을 처음 시작하신 계기부터 기억나는 대로 편하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민준: 제가 퀴어 활동가인 이유는 결국 퀴어 당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게이’라는 단어는 몰랐어요.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알게 됐고, 커밍아웃을 한 것도 있고 아웃팅을 당한 것도 있고. 그때 든 생각이 ‘내가 왜 내 마음을 숨겨야 되지?’였어요. 억울해서 못 참겠는 거예요. 이놈의 새끼들은 맨날 여자친구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숨겨야 한다는 게 답답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를 했죠. 그러다 트위터라는 신문물을 알게 됐어요. 코로나 이전까지는 트위터에서 인권 논의와 논쟁이 엄청나게 활성화돼 있었잖아요. 그런 걸 하나하나 읽어보다가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됐고요.

김찬: 혼자서 트위터를 찾아볼 때는 어떤 느낌이셨어요?

김민준: 그냥 신세계였어요. 트위터가 정상적이냐 비정상적이냐를 따지는 건 좀 이상하지만, 정상적인? 제대로 된 인권 이야기도 있고, 지금 말로 하면 꼰대나 극우 같은 분들도 있고, 흔히 ‘섹계’라고 하는 19금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퀴어 분들도 계시고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신세계였어요. 공부할 것도 있고 공부하면 안 되는 것도 있었는데, 그때는 하나하나 다 봤어요. 궁금해서요. 나 같은 존재들은 어떻게 사는지가요.

김찬: 그렇게 보면서 정리된 생각이나 깨달음이 있었나요?

김민준: 중학교 때 트위터를 시작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깨달은 게 있어요.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이 많구나. 그런데 그 이상한 사람이 동성애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뉴스를 보면 이성애자들도 문제 많잖아요. 성범죄부터 연애 문제까지. 성별과 성적 지향만 바꾸면 똑같이 있는 거예요. 어쨌든 ‘동성애자는 이상하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거기서 탈피한 거죠. 딱 그 정도.

그렇게 그는 활동을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나와 비슷한 존재들을 만나고, 우리가 딱히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지모임 영남권 YQAY를 만들어 사람들과 만났고, 메리퀴어스마스를 열었고, 여러 지역을 돌며 성소수자 가시화 캠페인을 이어갔다.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활동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인권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시간적 여유라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청소년이었고, 저는 대입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청소년들보다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시간적 여유를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여유가 계속 사라지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인권운동에 쏟아부은 만큼, 13개 지역을 다닌 만큼은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렇게 해도 되나?’, ‘계속 인권운동을 할 거면 차라리 누군가에게 넘기고 나는 후원자로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되기도 했고요.

김찬: 그래서 그런 고민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계시나요?

김민준: 방금 말한 것처럼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면서, 예전만큼 활동을 못 하고 예전만큼 뜨겁지도 않은데 인권운동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 계속했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이 있어요. 힘든 건 당연하다. 힘든 건 당연한데, 중요한 건 그 힘듦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품는 거라고 생각해요. 품고서 ‘아, 힘드네’ 하고 다른 걸 하면 되는 것 같아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요즘 좋은 판례들*이 계속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제 일상에 와닿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인권운동을 조금 줄이고 내가 하고 싶던 걸 하는 거죠. 게임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고,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며 바다를 구경하거나 책을 읽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 시간을 늘리면 결국 회복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니까요. 인권운동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2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런 쉼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동성 파트너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판례, 비수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한 판례 등

친구 목록을 딱 봤거든요. 게임 친구 한 열 명 빼고 다 활동가인 거예요. 저는 대학을 안 갔으니까 대학 동기도 없고, 직장에서 생긴 동료는 어디다 쓰겠어요. 쓸 일이 없거든요. 활동가 친구를 빼면 친구가 없는 거예요. 진짜 활동을 100으로 살았구나, 이 미련 곰탱이 같으니, 그런 생각이 들죠.

김찬: 오늘 되게 중요한 얘기를 해 주신 것 같은데요. 그럼 민준 씨한테는 하고 싶은 게 뭐였어요?

김민준: 찾고 있어요. 🙂 제가 게임을 좋아했는데 권태기가 와서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지금 찾는 중이에요.

김찬: 그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를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정리해도 될까요?

김민준: 범죄가 아닌 이상,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

지속하게 하는 마음 ♥️

“실제로 저희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후원해 주시는 분이 계세요.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그냥 강점인 것 같아요. 타지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니까요.”

윤석열 파면 기념 집회에서 영남지역 성소수자 지지모임 구성원들과 대구 무지개인권연대 활동가들이 함께 찍은 사진

김찬: 그러면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게 한 힘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김민준: 역설적이게도,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차별금지법은 제정을 예고해 놓고도 아직 되지 않았고요. 동성혼 법제화는 조금 희망이 보이긴 해도 아직이고, 청소년 쪽도 학생인권조례를 넘어 학교 밖 청소년까지 포용하는 청소년인권법이라든지 지역 조례라도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의견을 내왔는데 오히려 탄압받고 있잖아요. 이렇게 변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저를 계속 활동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건, 그런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만날 때 돌아오는 마음이에요. “이런 거 있어서 감사했다”는 말들. 그 두 가지가 합쳐져서 계속 인권운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돌아오는 마음’은 대개 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의 것이었다. 민준 씨는 영남에서 퀴어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곁에 나란히 놓인 자원을 이야기했다. 오래 살아온 곳에 쌓인 관계, 말하자면 고향이라는 자원이다.

김민준: 성소수자로서 영남 지역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무래도 고향에 있잖아요. 그런 걸 활용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고등학교 때 커밍아웃하고 인권운동 하는 걸 온 학교가 아니까, 한창 경남학생인권조례 이야기가 나올 때 학부모회에서 저를 데리고 갔어요. 많지는 않고 열 몇 분 정도를 상대로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인지,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강의할 자리를 만들어 주셨거든요.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그분들이 퀴어 지지자가 되고, 혹시 주변에 퀴어인 학생의 학부모가 생기면 전문적인 상담은 아니더라도 “이렇더라, 괜찮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분들이 결국 영남퀴어의 후원자가 되셨어요. 실제로 저희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후원해 주시는 분이 계세요.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그냥 강점인 것 같아요. 타지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들이니까요.

김찬: 사람들이 떠났더라도 부산이 고향이라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씀이 조금 아리송했는데요. 고향 의식 같은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김민준: 저는 고향 의식이 좀 있거든요. ‘그래도 내 나와바리, 내 홈그라운드인데, 내 고향인데’ 하면서 그런 향수를 이끌어내는 활동들이요. 저는 부산에 살고 싶어요.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고, 가끔 가면 좋긴 한데 치여 살고, 최저임금을 받으면 여가 생활은 꿈도 못 꾸고, 적정 임금을 받아도 여가 생활이 조금 힘든 그런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요.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다들 있으니까요. 그걸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찬: 그럼에도 영남이라는 지역에 남아 활동하려고 할 때, 느껴지는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민준: 사람이 줄어드는 거요. 사람이 줄면 자연스럽게 퀴어 인구도 줄고 퀴어 활동가도 줄어요. 그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가고, 인력이 점점 줄어드는 거죠. 그러다 보면 ‘지역이란 무엇인가, 지역 운동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생기거든요. 지역에서 하면 무조건 지역 운동인가? 서울 활동가가 내려와서 MT를 하면 그건 지역 운동인가? 지역 활동은 점점 줄어드는데 우리는 지역민으로서 이 운동을 어쨌든 지켜내며 계속해야 하잖아요. 서울과 수도권에 올라가 거기 적응해 버리면 지역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사실 저라도 서울로 가면 지역은 뒷전이 될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그걸 해결하려면 우리 혼자서 되는 게 아니라 지역 소외 문제가 풀려야 하잖아요. 그 부분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데, 이건 지역 소외의 문제이고, 지역 소외를 해결하려면 결국 우리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거죠.

그런 어려움이 느껴질 때 어떻게 하는지 묻자, 민준 씨는 다시 사람 이야기로 돌아왔다.

김민준: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래도 희망이 있구나’를 느낄 수 있거든요.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고요. 그리고 이야기하다 보면 “저쪽 저 사업 아이템 괜찮은데” 하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제가 파랑에서 모금 워크숍을 듣고 있는데, “저희가 모금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아이디어를 내면 상근활동가분들이 실무적으로도, 아이템 측면에서도 계속 피드백을 해주세요. 그러면 점점 보완해 나갈 수 있죠. 그런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김찬: 선배 활동가, 지역 활동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좋은 인사이트가 되는 것 같아요.

김민준: 그렇죠. 부산에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파랑이라는 멋진 곳이 있잖아요. 파랑에 오면 파랑 뿐 아니라 선배 활동가들, 이주민과함께도 있고 홍예당도 있고, 환경단체든 노동단체든 여성단체든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찾아가서 “저 힘들어요” 하고 이야기하면 다 들어주세요. 대구만 올라가도 직접 찾아가거나 “우리 만나요” 하고 약속을 잡아야 하는데, 파랑은 일단 가면 되거든요. 그래서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좀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찬: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연결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김민준: 일단 만나자. 🙂

멀리서 지켜본 민준 씨는 꾸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활동에 대한 열의가 늘 뜨거운 사람일 거라고, 활동이 버겁고 지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일 거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이번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거나 덜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힘들 때일수록 놓치기 쉬운 주변의 소소하고 소중한 자원들을 잊지 않았고, 도움을 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고 연결되는 데서 힘을 얻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민준 씨에게서 활동하며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힘듦과 소진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지나갈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냥 두고 품어내는 것. 단단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에게 쓰는 말이겠구나 싶었다.

 

 

부산퀴어행동 김찬 활동가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에서 활동하며 파랑을 만났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 학생인권 등을 주제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만난 퀴어들과 부산퀴어행동이라는 모임을 꾸려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2사업아카이브지금 파랑은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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