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 #6. 부산퀴어행동

사업

우리 곁에는 다양한 현장의 활동가들이 힘껏 틔워내고 애써 일구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있습니다.

2022년부터 파랑이 <모여랑>과 <오늘의인권>을 통해 만난 인권의 자리들만 해도 도시빈민, 이주민, 장애인, 청소년, 퀴어, 노동, 기후환경 등 38곳에 이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질문과 방식으로 만들어온 인권의 자리들이, 같은 지역 안에서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운동을 만나 기록으로 잇는 네트워크 프로젝트 <연결되는 인권의 자리들>을 시작합니다. 활동가가 다른 활동가의 현장을 찾아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만남을 인터뷰 기사와 영상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소개될 이야기들에는 우리 곁에 인권의 자리, 그곳을 일구어온 사람들, 그리고 서로의 만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을 만나 귀 기울인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인권의 자리를 발견하고, 지역 인권운동을 함께 응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서로의 운동을 만나 새로운 연결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만나볼까요?

청소년인권운동, 경계를 넓히며
좌절하며 다시 도모하며 

‘부산퀴어행동’ 김찬 인터뷰 (기록: ‘새알미디어’ 강언주)

<아수나로>라는 청소년인권운동단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2011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 탈핵운동에서는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구호를 자주 사용했는데,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들로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 구호가 ‘아이들’을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탈핵운동, 환경운동에서 많이 써왔던 ‘미래세대’, ‘다음세대’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 역시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데, 기성세대가 이들을 어떤 운동의 결과에 영향을 받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 문제 제기가 합당한지 아닌지, 당시 탈핵운동의 구호가 옳았는지 아니었는지를 막론하고 당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이들과 주고받았던 일련의 논쟁과 토론이 나는 좋았다. 우리가 어떤 운동의 지향과 당위에 몰두할 때 미처 보지 못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음 아수나로와 만났다. 그 뒤 부산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을 하면서, 또 기후정의운동을 하면서 청소년인권운동과 종종 연결됐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김찬’이라는 활동가와 연결됐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2019년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했다. 부산에 없던 <아수나로> 지부를 만들었고, 서로 다른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캠페인도 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만나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고 연결됐다.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해산한 뒤에는 탄핵광장에서 만난 퀴어들과는 <부산퀴어행동>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연결되는 순간이 “영광이었다”고 말할 만큼 좋았지만, 운동 안에서 갈등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지금은 잠시 활동을 멈추고,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운동하며 보낸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고 있다.

경계를 넓히며, 좌절하며, 그럼에도 무언가를 계속 도모해왔던 찬 님의 청소년인권운동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활동으로 보냈고, 사회화나 성장 과정도 활동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우리는 이 의제를 할 거야’라기 보다는 ‘할 수 있는 게 뭘까, 해보자’ 하는 식으로, 약간 동아리처럼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강언주: 우선 찬 님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처음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도 궁금해요.

김찬: 저는 2019년 중학교 2학년 때 활동을 시작했어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그냥 활동으로 보냈고, 사회화나 성장 과정도 활동하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고민하고 있고요.  🙂 처음에는 학생인권으로 시작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정체화하면서 성소수자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지역의 성소수자 모임에 갔어요. 거기서 처음 활동가를 만나고 캠페인이나 집회도 따라갔죠. 그러다가 노동당에 가입했는데, 청소년 활동을 하고 싶으면 ‘아수나로’에 가보라고 해서 가입했어요.

그런데 부산에는 <아수나로> 지부가 없었어요. 회원 가입할 때 선택지가 두 개가 있었거든요. ‘지부를 만드시겠어요?’랑 ‘지부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시겠어요?’였는데 지부를 뭔가 조직적으로 계획해서 만든다기보다는 만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좀 지원해주고, 찾아가서 교육해주고, 프로그램을 어떻게 돌리는지 알려주는 형태였어요. 저는 그냥 간단한 모임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서울에서 활동가들이 내려와 교육해주고, 어찌저찌 사람들을 모았더니 부산지부가 시작된 거죠. 처음부터 ‘우리는 이 의제를 할 거야’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뭘까, 해보자’ 하는 식으로, 약간 동아리처럼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부산시교육청에서 학생 성소수자 현안 관련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장면

강언주: 코로나 시기에 학생인권운동을 한거잖아요. 그때 활동하면서 경험하거나 느낀 바가 좀 있을까요? 제 생각에 코로나 시기에는 우리가 학교가 걱정이라고 했지만 의료현장이나 다른 노동현장보다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나 변화에 대해서 깊이 있는 사회적 논의는 없었던 거 같아요.

김찬: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 학교 풍토가 되게 많이 바뀌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요. 온라인 수업을 하고 휴교도 하면서 학교 내 공동체가 많이 무너지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도 많이 변화한 느낌이에요. 저도 정확하게 분석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학교 안에서 사람들이 파편화되고 교사와 학생 사이도 그냥 출결 체크해주고 성적 매겨주고 수업하고 끝나는 관계로 바뀌면서 학생인권이라는 의제도 설 자리를 잃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놓아버린 느낌’도 강했어요.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안전망이 사라진 것처럼 학교라는 공간이 만들어줬던 울타리 자체가 무너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학생인권을 외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학생인권운동에서 했던 주장들이 필요 없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휴대폰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두발·복장 규제도 없어져야 하고, 가능하다면 교복도 없어지면 좋겠고요. 학생들이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지, 학교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교육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학생인권운동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예요.

“‘학생들도 학생인권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인권운동이 틀렸다고 할 게 아니라, 학생들이 더 같이 외칠 수 있는 언어와 구호를 만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언주: 어떤 측면으로는 학생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학생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학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거죠. 교권이냐 학생인권이냐 이런 식으로 대립하는 형태로 구분짓기도 하고요. 찬 님이 느끼기엔 좀 어때요?

김찬: 저는 이게 좀 뭔가 섞어서 잘못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학생인권운동에 대한 편견을 가지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들을 보면, 큰 근거에는 ‘학생들도 지지하지 않는다. 학생들도 편하게 학교 다닌다’라는, 어쩌면 운동으로서 대중적인 지지를 잃은 것을 이유로 삼아서 학생인권운동의 주장이 틀렸다고 얘기하는 게 있는데. 저는 아수나로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학생인권운동에서 했던 주장들은 여전히 필요한 것 같아요. ‘학생들도 학생인권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인권운동이 틀렸다고 할 게 아니라, 학생들이 더 같이 외칠 수 있는 언어와 구호를 만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운동이 제기하는 언어라든지 주장하는 요구라든지 이런 것들이 바뀌어야 될 문제, 학생들이 좀 더 같이 외칠 수 있는 구호들을 만들고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될 문제로 봐야 하는 거죠.

“저는 ‘사회운동이 실패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요. 이 사람들이 뭔가 답답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포인트들이 있고, 그게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나 여성혐오적이거나, 요즘은 더 넓어져서 그냥 ‘좌파’라는 것에 대한 혐오까지 넓혀졌을 때, 좀 이 사람들이 원하는 부분을 못 긁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강언주: 요즘 청소년·청년이 극우화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느껴요?

김찬: 저는 ‘사회운동이 실패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요. 제가 <파랑>의 <오늘의 인권> 지원사업으로 <넓어지는 청소년인권운동 프로젝트>를 했어요. 주민운동 교육을 받고, 조직과 교육을 받고, 실제로 청소년도 인터뷰해보고 이런 활동이었어요. 당사자를 만날 때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만나야 하는지, 내가 당사자를 일방적으로 계몽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점검하는지, 그 사람의 욕구를 알아가기 위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같은 걸 <부산주민운동교육원> 임기헌 선생님으로 부터 8회 정도 교육 받았어요. 그때 실제 청소년들을 만나오는 게 과제였는데 저는 학교에 있던 남자애들을 인터뷰했었어요. 그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느꼈던 거는 이 사람들이 뭔가 답답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포인트들이 있고, 그게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나 여성혐오적이거나, 요즘은 더 넓어져서 그냥 ‘좌파’라는 것에 대한 혐오까지 넓혀졌을 때, 좀 이 사람들이 원하는 부분을 못 긁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활동하면서는 사실 그런 친구들을 거리 두고 있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은 운동에 함께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직접 만나보면서 그런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드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 들어 청소년들이 극우화됐다’는 말도 좀 이상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일베를 하고 여자애들을 성희롱하고 언어성폭력을 하는 애들이 있었어요. 지금 청소년 세대에게는 이런 문화가 너무 당연한 일상처럼 있었는데, 마치 윤석열 때쯤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는 건 안일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기억하는 시대의 서사도 너무 달라요. 제가 기억하는 시대에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들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여성가족부, 군가산점제 폐지, 페미니즘, 혜화역 시위, 미러링 같은 사건들을 드문드문 기억해요. 결국 모두 ‘극우화된 청소년·청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강언주: 그럼 이제 <파랑>과 함께 했던 활동들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찬님은 2019년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했는데, <부산인권플랫폼 파랑>과는 어떤 활동을 했나요?

김찬: 2022년에 <모여랑> 지원사업으로 청소년인권 활동가 소모임 <권리 찾는 청소년>이라고 청소년들을 좀 모아보고 싶어서 <아수나로 부산지부>에서 진행했던 사업이 있어요. 페미니즘, 장애인권, 학생인권, 기후위기, 비거니즘 같은 주제로 한 10명에서 13명 정도가 모여서 같이 인권 공부를 하고 캠페인도 했어요. 차별금지법을 공부하고 각자 발언문을 써서 캠페인에서 읽기도 했고요.

모인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어요. 저랑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군복 입고 총 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울증이 심해서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던 사람도 있었고, 청소년상담에 관심이 있어서 온 대학생도 있었어요. 학교에서 두발 규제로 교사에게 폭언을 들었던 일을 계기로 같이 교육청에서 시위했던 학생도 들어왔고요. 정치적 지향이나 스펙트럼이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공부하고 캠페인하는 것뿐 아니라 같이 밥을 먹고 교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당시 <아수나로> 지부에 내려오는 지원비는 얼마 안됐거든요. <모여랑> 지원을 받으면서 취미활동을 하는 소모임, 독서모임, 비거니즘 소모임, 성적 취향이나 성별정체성을 탐구하는 모임도 할 수 있었어요. <쉬어갈 결심>이라고 해서 2년 정도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들이 집단 심리상담도 받고 TCI 검사도 하고 여행도 가고 독서모임도 했고요. 어쨌든 그걸 계기로 사람들이 좀 친해졌던 것 같아요.

퀴어운 영남 청소년 모임 구성원들과 같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놀고 있는 사진

“탈학교 청소년인 트랜스젠더,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트랜스젠더처럼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렇게 교차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위치에 있는 퀴어들을 만나다 보니까 되게 재밌는 얘기들이 많았어요.”

강언주: 아까 2022년에는 <넓어지는 청소년인권운동 프로젝트>를 하셨다고 했고 2024년 <오늘의 인권>으로는 어떤 사업을 했어요?

김찬: <부산어린퀴어센터>요. 2023년 말에 <아수나로 부산지부>에서 성소수자 학생 실태조사를 했고,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퀴어운 청소년 수다회’를 열었어요. 수다회에 30명 정도가 왔고 실태조사에는 200명 정도가 응답했어요.

부산지역 학생 성소수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사진

사실 그때 저는 활동을 그만두려고 했었거든요. 여러 곳에서 문제 제기도 많이 받았던 때였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 너무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들어온 회원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거예요. 그런데 수다회와 실태조사가 잘되면서 계속하게 된 거죠. 이후에 <부산어린퀴어센터>를 만들었고, 파랑 지원사업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모임을 하고, 참여자들을 인터뷰하고, 만들어진 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서울의 다른 단체 활동가들에게 보내 자문을 받았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11명을 인터뷰했는데 학교를 다니는 퀴어만 만난 건 아니었어요. 탈학교 청소년인 트랜스젠더,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트랜스젠더처럼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렇게 되게 교차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학교를 다니는 퀴어만 만나지는 않았던 거죠. 그래서 되게 다양한 위치에 있는 퀴어들을 만나다 보니까 되게 재밌는 얘기들이 많았어요.

청소년 성소수자 수다회 [퀴어운 수다회] 사진

“사람들이 많이 와서 놀아주고, 놀아주고, 놀아주고. 얘기도 많이 하고 거기서 다시 친구가 된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거기서 시너지가 나는 걸 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저한테는 활동하면서 영광이었던 것 같아요.”

강언주: 찬님이 청소년 인권운동, 또 청소년 퀴어운동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기억과 반대로 너무 힘들었던 경험은 뭐예요?

김찬: 좋았던 건 청소년 성소수자 수다회를 했을 때예요. 사실 재미없는 걸 준비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놀아주고, 놀아주고, 놀아주고. 얘기도 많이 하고 거기서 다시 친구가 된 사람도 있었어요.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거기서 시너지가 나는 걸 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저한테는 활동하면서 영광이었던 것 같아요. 같이 퀴어문화축제에 가고 밥도 먹고. 그런 걸 같이할 수 있었던 게 되게 좋았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대책위를 했던 일이에요. <아수나로> 내에 여러 문제들이 있었고 그래서 대책위들이 만들어졌고 문서도 제가 쓰고, 보고서도 쓰고, 조사도 많이 했어요. 제가 연루돼 있거나 저한테 문제 제기가 온 사건에서도 제가 저를 비판하는 글을 써야 했던 적도 있었고요. 그때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많이 무너지고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어요.

강언주: 찬님이 오래 활동해온 <아수나로 부산지부>가 2025년 해산했잖아요? 그리고 <부산퀴어행동>에서 활동을 이어왔는데 <부산퀴어행동>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활동을 하려고 했어요?

김찬: 윤석열 퇴진 집회 때 무지개존이 되게 컸어요. 무지개 깃발을 든 사람들이 많았고, 그 사람들이 잘 뭉치고 뒤풀이도 많이 했어요. <아수나로>에서 ’10대 청소년과 퀴어 집회 뒤풀이’를 기획하기도 했어요. 퀴어 청소년이 집회에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모아보자는 거였는데, 정작 10대는 한 명도 안 왔어요. 대신 10대부터 40대까지 퀴어들이 모였죠. 집회가 끝나면 같이 비빔밥도 만들어 먹고, 마라탕이나 카레도 끓여 먹고 밤새 놀기도 했어요. 그런 관계들이 쌓이면서 무지개존도 계속 운영됐고, 그때 무지개 깃발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이 <부산퀴어행동>에 많이 들어왔어요.

<부산퀴어행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사람들이 윤석열 퇴진과 계엄을 계기로 각자가 가지고 있던 일상의 문제를 광장으로 끌고 나왔기 때문이에요. 그런 문제들을 끌고 나온 사람들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들이 잘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2016년, 2017년 촛불 때도 페미니스트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후 다시 흩어지고 깨졌잖아요. 그런 흐름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상시적인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1년 한번 해보자’고 만든 거예요.

처음에는 노동하는 직장인들이 많으니까 퀴어노동자 모임도 하고, 대학생들이 있으니까 퀴어대학생 모임도 해보자고 했어요. 그런데 잘 안 됐죠. 탄핵 이후 사람들의 참여도가 낮아지고 다들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처음에 생각했던 구상이 계속 무너지면서 지금은 방향을 조금 잃은 거 같아요.

“운동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서 벌어진 문제 아닐까 생각해요. 실제로 뭔가를 책임져보고 우리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이만큼은 지킬 수 있지만 이것까지는 어렵다’고 조율해본 경험이 부족하니까 당위적인 문제 제기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강언주: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이유는 단체 내의 갈등 때문이었을까요?

김찬: 유지하기 어려웠던 건 갈등도 있지만 저의 끈기 부족이 크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밀고 나가고 고민을 이어나가는 힘들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정해져 있지 않고 불안한 상태에서 긴 시간을 쓰겠다, 장기적으로 보고 가겠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길게 내다보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했구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해요. 운동 내부의 갈등도 있었어요. 누군가에게 역할과 권력이 너무 많이 쏠린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들이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오기도 했고요. 운동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서 벌어진 문제 아닐까 생각해요. 실제로 뭔가를 책임져보고 우리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이만큼은 지킬 수 있지만 이것까지는 어렵다’고 조율해본 경험이 부족하니까 당위적인 문제 제기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강언주: 지금은 활동을 쉬고 있는데, 찬님은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게 될까요?

김찬: 올해 초부터 활동을 좀 쉬고 있어요. 많이 쉬었는데도 마음이 계속 정리가 잘 안 돼요. 후회가 많이 들어요. 청소년일 때 활동만 한 것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 공부를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진로를 찾기 위해서 시간을 더 썼어야 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활동하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도 크게 밀려오니까 어려웠어요. 그런데 아직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는 과정을 제대로 밟아보는 경험을 하기에.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평범하게 생활해보고 싶은 것 같아요.

“구체적인 대상을 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돈이 없고 사람의 힘이 없는 상태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런 조건들을 좀 더 제대로 직면하고 바라보며 활동하고 싶어요.”

강언주: 저는 부산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청소년인권활동가’라고 규정되는 분들을 찬님 말고는 잘 몰라요. 제 기준에서는 ‘없다’라는 느낌이 좀 더 강하죠. 누군가가 청소년인권활동을 하고 싶다, 아니면 지금 하고 있다고 했을 때 찬 님이 그런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김찬:‘청소년’은 너무 달라요. 구체적인 대상을 정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인 대상이 없으면 모호해지기 쉬운 것 같아서요. 그리고 돈이 없고 사람의 힘이 없는 상태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걸 제대로 직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정도 돈이 들어가는 일이고, 이 정도 사람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걸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런 조건들을 좀 더 제대로 직면하고 바라보며 활동하고 싶어요.

찬님이 소개해준 물만골역 경양식 맛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

그의 활동은 ‘서로 다른 청소년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이나 ‘학생’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쉽게 묶이지 않는 사람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과 학교 밖의 청소년, 성소수자 청소년, 서로 다른 정치적 생각을 가진 청소년, 청소년인권운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이들과 조금은 거리를 두었던 이들까지.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청소년인권운동의 경계도 조금씩 넓어졌다.

그 과정이 늘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람 때문에 힘을 얻기도 했고,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활동을 이어갈 힘이 생기는 순간도 있었고, 좌절하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아수나로 부산지부>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수다회를 열고, <부산어린퀴어센터>를 만들고,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시 <부산퀴어행동>을 도모했던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지금의 김찬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잠시 활동을 쉬며 자신의 다음 시간을 고민하고 있지만, 또 어디선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무언가를 도모하는 자리에서 찬 님을 만나게 된다면 너무나 반가울 것 같다.

새알미디어의 강언주/누리달 활동가는

기후·환경정의 새알미디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알권리운동을 이어가던 중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를 계기로 탈핵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탈핵과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을 주제로 만나고 배우고 연결되고 있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6살 어린이로 인해 네모가 동그라미가 되는 기적을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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