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파친코 23화 / 박석진

지금 파랑은

[파친코] 4월의 화인(火印)으로 살다 – 박석진 파친님🕯️

다시, 4월입니다.🎗️ 부쩍 다사로운 봄의 한가운데, 그래서 더욱 시린 우리들의 4월. 여전히 시린 까닭은 그날의 원인과 책임자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서 원인과 책임자를 밝힌 경험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차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잊지 ‘않’겠다는 다짐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 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자기 자리에서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4월의 파친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의 박석진 활동가입니다.

#1. “파친님, 스스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이하 열군)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석진입니다. 열군은 우리 사회에서 군대라는 조직에 주목해, 군대의 여러 정책과 문제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적 제언을 하는 단체인데요, 2014년에 창립했습니다. 한국군이라는 조직이 워낙 크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 다양해서 여러 가지 일을 잡다하게 하고 있네요.😅

#2. “파랑은 어떻게 알고 연을 맺게 되셨어요?”

2023년 5월에 파랑에서 주관한 부산인권아카데미에서 ‘한국전쟁 70년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며 파랑 분들을 뵙게 되었어요. 파랑이 부산지역의 인권운동과 더불어 지역 인권단체 및 활동가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려는 지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서울지역에 있는 몇몇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에, 부산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파랑이라는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졌고 강의하는 날 바로 회원으로 가입했답니다.😀

#3. “파친님이 열군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듣고 싶어요.”

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일 텐데요. 열군 이전의 제 사회운동의 시작점은 군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요. 1990년 대학 1학년 때 입대를 했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투경찰에 배치되었어요. 당시는 1987년 민주화운동이 미완으로 귀결되며 노태우라는 사람이 정권을 잡고 있던 때인데,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도 격렬했고 또 그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도 대단히 폭력적이었어요. 전투경찰로 복무하며 수많은 집회 및 시위 진압명령을 수행해야 했고, 그 과정은 저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했어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군에 입대했는데 왜 나는 국민들과 싸우고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끊이질 않았고, 학생과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진압해야 하는 현실의 제 모습에 많은 자괴감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1991년 4월 강경대라는 한 학생이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제가 한 일은 아니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구나’라는 자각이 일었고 더 이상 전투경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지요. 그래서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양심선언을 했고 수배와 수감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 군대라는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국민을 지키는 조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국민을 학살한 역사를 갖고 있고, 꽤 오랜 기간 정치권력의 전면에 나서 국민을 지배하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또 평화를 지킨다고 하지만 오히려 반평화적인 정책으로 국민을 위기에 내몰기도 하는 한국군의 모순들에 대해서. 그 고민들의 자락을 풀어보고자 이런저런 활동(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나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을 해왔는데, 좀 더 집중할 필요성을 느껴 2014년 4월 26일, 강경대 열사 기일에 열군을 창립하였습니다.🌱

#4. “열군은 파친님 삶의 필연같아요. 열군이 그동안 해온 일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올해는 열군이 창립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예요. 창립 10주년을 맞아 열군의 지향과 활동 방향에 대해 운영위원들과 진지하게 짚어봤어요. 그것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열군은 ‘역사🐾’•‘시민👫’•‘평화☮️’에 열린 군대를 지향해요. 한국군의 역사를 바로잡고 군의 민주화를 위해 제주 4·3, 광주 5·18, 여순항쟁 기행🌹을 했고, 한국전쟁 다크투어 가이드북📕을 만들었어요. 상시적으로 ‘전쟁기념관 다시보기’를 진행하고 있고요. 그리고 주요 군사안보 사안을 함께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강좌를 열었고, 반전·평화 활동에 연대하고 있어요.

최근에 기존의 국방정책이 집대성된 국방백서를 분석하는 작업📝을 했어요. 군대가 만든 국방정책의 문제점을 시민과 함께 짚어보고✔️ 나아가 시민이 바라는 국방정책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올해는 시민의 입장이 담긴 <시민국방백서>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국방백서 분석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열군 자료실에서 내려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watchmilitary/223317147983)

처음에는 20명도 안 되는 회원들과 시작하여 지금은 430여 명의 회원이 함께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2명의 상근활동가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군사안보 문제에 대해서라면 열군을 떠올릴 만큼, 전문성을 갖춘 단체로 나아가려는 목적과 희망을 품고 있답니다!🍀

#5. “이미 그런 존재가 된 듯한데요?😄 마지막으로 파랑의 친구로서 파랑에 바라는 한 말씀!”

아마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그럴 것 같은데, 모두를 위해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활은 잘 못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가능한’ 운동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단체의 현실을 부정하기 어려워요. 그런 점에서 부산 지역에서 단체와 활동가들의 삶을 고민하는 파랑의 존재는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파랑의 활동을 응원하며 부산의 언니(또는 형)같이 언제나 기대어 응원 받고 때론 하소연도 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해주시길 바라봅니다.

열군이 창립하던 그해 4월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와중에 열군이 태어났다는 소식은 ‘가만있지 않겠다’는 다짐의 실천처럼 들려 한편, 반가웠습니다. 기억은 힘이 세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기일을 자신의 슬픔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모두 모여 축하하는 자리로 기어코 빚어낸 파친님의 화인(火印)처럼.🕯️

4월의 끝자락에 우리, 다사롭게 만나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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